세발자전거와 초록병 사이다

세상이 처음 무서울 수 있다는 걸 배운 날, 내 머리맡에는 초록병 하나가

by 루츠




어린 시절의 기억은 종종 이야기보다 색으로 남는다.

내게는 초록병 사이다의 색이 그렇다.


그건 어쩌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이른 시절의 장면 중 하나다.

부산의 한 달동네,

그중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던 우리 집.

대문을 나서면 동네가 모두 내 발밑에 있었다.

앞집의 지붕 기왓장들은

계단처럼 아래로 펼쳐져 있었고,

집 옆에는 작은 공터가 있었다.

그 공터는 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와 이어져 있었고,

나는 거기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어린아이에게 높은 곳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알지 못하는 위험이다.


그날도 나는 공터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집 앞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공터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좁아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거기서 세발자전거의 뒷바퀴 한쪽이

비탈길 쪽으로 빠졌다.


그 순간은 지금도 이상하게 또렷하다.

아직 몸이 완전히 기울지도 않았는데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먼저 알아차렸던

그 짧은 순간.

그리고 곧 세상이 뒤집어지는 듯한 감각.


그 뒤의 기억은 흐릿하다.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크게 다쳤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주 크게 놀랐다는 감각만 남아 있다.


나중에 엄마에게

그날 이야기를 다시 들은 적이 있다.

엄마는 그때 부엌에서 빨래를 삶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울음소리가 들렸고,

놀라서 밖으로 뛰어나가 보니

아이는 보이지 않고 울음소리만 들리더라는 것이다.

길가로 가보니 비탈 아래,

뒤집어진 세발자전거 옆에

내가 쓰러져 울고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너무 놀라

얼른 나를 업어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고,

한참 울고 있는 나를 살펴보았다고 했다.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놀란 탓인지 쉽게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품에 안고 오래 토닥였고,

집에 있던 사이다를 컵에 따라

조금씩 먹였다고 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내가 울음을 그쳤고,

그제야 잠이 들었다고 했다.


그날에 대한 내 기억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익숙하고 포근한 이불 냄새,

엄마의 냄새,

그리고 품에 안겨 있다는 안도감.


눈을 떠보니

나는 이불 속에서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조금 들어 머리맡을 보니

처음 보는 초록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저 낯선 색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

오히려 굴러떨어진 뒤에 찾아온

아주 깊은 안도의 장면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나는

그날 얼마나 아팠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세상이 갑자기 기울던 감각과,

그 뒤에 찾아온 엄마 품의 감촉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어쩌면 어린아이에게 기억된다는 것은

사건의 크기보다

그 사건 끝에서

자기를 감싸준 온도를 기억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이 장면은

내 유년기의 첫 문장처럼 느껴진다.

세상이 처음 무서울 수 있다는 걸 배운 날,

나는 동시에 그 무서움 뒤에

누군가의 품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함께 배웠다.


높은 곳의 집,

좁아지는 길,

뒤집어진 세발자전거,

큰 울음소리,

그리고 머리맡의 초록병 사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의 세계는

어쩌면 그 다섯 가지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세발자전거는 나를

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지게 했지만,

초록병 사이다는 그 기억의 끝에 남아

이상하게도 그날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


그래서일까

내 유년기의 첫 기억은

세상이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보다,

그 위험 뒤에도 여전히

집과 엄마의 품이 주는 안도의 감각으로

더 진하게 남아

결국 나의 일부가 되었으리라


내게 초록병 사이다는

오래도록 음료가 아니라

놀란 아이에게 건네진 위로의 색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