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할머니 집에서 혼자 집으로 걸어갔다

어릴 때 나는 외할머니 집에서 혼자 우리 집까지 걸어온 적이 있다.

by 루츠




지금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일이다.

버스로도 한참을 가야 하는 거리였고,

어른 걸음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걸음으로는

훨씬 더 멀고 오래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길을 걸었다.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았고,

누구에게 허락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느 순간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정말로 길 위에 내 몸을 올려놓았다.


엄마는 지금도 가끔 그 이야기를 하신다.

그러면 늘 내가 똑똑한 아이였다고 하신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그건 똑똑함이라기보다,

답답하고 무서운 상황 앞에서

일단 움직이고 보는 어떤 기질,

가보지 않은 길이라도 해볼 만하다고 느끼면

먼저

몸을 던져보는 성향에 더 가까웠던 것 아닐까 하고.


그날 나는 외할머니 집에 있었다.

외할머니 집은 내게 꽤 익숙한 공간이었다.

엄마는 동생들을 돌보느라 바빴고,

나는 종종 그 집에 맡겨지곤 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와 단둘이 남아 있는 시간은

조금 달랐다.


엄마의 회상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지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이북 황해도 분들이셨다.

전쟁 때 피난을 와 부산에 정착했고,

전포동 판잣집에서 여섯 남매를 키우며

맨손으로 집안을 일으키신 분들이었다.

외할아버지는 그 시절에도 키가 180이 넘는,

기골이 장대한 분이었다.

손자가 된 내 눈에도 그분은 늘 거대하게 보였다.


하지만 어린 내게 그 거대함은

든든함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웠다.

외할아버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텔레비전 앞에 누워 보내셨다.

내 눈에는 늘 재미없는 뉴스만 보고 계신 것 같았다.

주무시는 줄 알고 리모컨을 슬쩍 가져오려 하면,

가래가 잔뜩 낀 목소리로


“안 돼.”


하고 말씀하시곤 했다.

특별히 다정한 모습이나

즐거운 표정을 본 기억은 많지 않다.

그래서 외할아버지와 단둘이 있는 시간은

재미없고, 답답하고, 조금 무서웠다.


그날도 그랬던 것 같다.

외할머니가 잠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자

집 안의 공기는 점점 더 조용하고 답답하게 느껴졌고,

어느 순간 나는 그냥 집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가 겨울이었다.

나는 외투를 챙겨 입었는데

지퍼를 끝까지 올리진 못했던 것 같다.

신발은 제대로 신었겠지.

그리고 외할머니 집 3층에서

혼자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혼자 내려가는 계단은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더 가파르게 느껴졌다.

아마 그때의 나는 무서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멈추지는 않았다.


1층 세탁소 아주머니가 내 모습을 보고는

다 올라가지 않은 외투 지퍼를 끝까지 올려주셨다.

나는 그대로 길을 따라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길모퉁이에는 과일가게가 있었는데,

그 집 아저씨가 내게 작은 사과 하나를 주셨다.

나는 그 사과를 외투 주머니에 넣고 계속 걸었다.


지금도 그 사과의 존재감이 기억난다.

손에 쥐고 있던 것도 아닌데,

걷는 내내

외투 주머니 안에서 둥글게 느껴지던 그 무게.

그 길은 멀고 낯설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내 기억 속에는

그 사과가 주머니 안에 들어 있다는 감각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어쩌면 어린아이에게 안심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크고 확실한 보호가 아니라,

주머니 속 작은 사과 하나의 존재로도

조금은 견딜 수 있는 마음.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오히려 마음이 조금 놓였던 것 같다.

집으로 가는 길이 더 쉬워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버스를 타고 다니며 창밖으로 보던 풍경을 기억하며

그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린 내게 길은 지도나 주소가 아니었다.

모퉁이와 간판, 버스정류장과 건물의 모양,

창밖으로 여러 번 지나쳐 보았던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 장면들을 따라 걸었다.

그 길을 안다기보다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거의 집에 다 왔을 때

가장 큰 장애물이 나타났다.


이정표 삼아 걸어오던 큰길이

이제는 내가 넘어야 할 마지막 장벽이 되어 있었다.

왕복 4차선의 도로는

어린 내 눈에 너무 넓고 거대하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곳에는 횡단보도조차 없었다.

나는 아마 한참 동안 길가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집은 거의 다 왔는데,

마지막 한 번을 건너지 못해 멈춰 서 있던 아이.


그러다 어떤 아주머니가

내 손을 잡고 함께 길을 건너주셨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 한쪽이 묘하게 따뜻해진다.

세상은 낯설고 무서울 수 있었지만,

완전히 차갑지만은 않았다는 기억이

그 안에 함께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퍼를 올려준 세탁소 아주머니,

사과를 쥐여준 과일가게 아저씨,

마지막 큰길을 건너게 해준 이름 모를 아주머니.

나는 혼자 걸었지만,

완전히 혼자였던 것은 아니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다림질을 하고 계셨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선 나를 보자

놀라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안도하기도 하셨을 것이다.

그 표정을 나는 지금도 상상할 수 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외할머니는 친구들 모임에 잠깐 다녀왔다가

집에 돌아와 내가 없어진 걸 알고

외할아버지를 몹시 나무라셨다고 한다.

애 하나 못 보고 집을 나설 때까지 뭐 했냐고.

그리고는 미안해서 엄마에게 바로 말도 못 한 채

밖으로 나가 한참을 나를 찾아다니셨다고 했다.


엄마에게 전화가 간 것은

내가 집을 나서고도 한참 지난 뒤였을 것이다.

버스로 20분 걸리는 길을 어린아이의 걸음으로 걸어왔으니,

두 시간이 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때쯤 나는 이미,

내가 기억하던 풍경들을 따라

거의 끝까지 와 있었던 셈이다.


엄마는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하며

내가 참 똑똑한 아이였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동의하진 않는다

그 아이는 똑똑했다기보다

답답한 곳에 가만히 머무는 대신,

무섭더라도 움직여 보기로 하는 아이였던 것 같다고.

가보지 않은 길이라도

한 번은 해볼 만하다고 느끼면

몸을 먼저 던져보는 아이였다고.


생각해 보면 그런 기질은

내 삶의 여러 장면에서 반복되어 온 것 같기도 하다.

낯선 환경, 새로운 일, 익숙하지 않은 세계 앞에서

완벽하게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일단 한 걸음 내디뎌 보는 태도.

어쩌면 그 첫 번째 모습이

외할머니 집에서 혼자 집으로 걸어가던

그 아이 안에 이미 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서웠지만 멈춰 있지 않았고,

집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


돌아보면 나는

길을 기억하던 아이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먼저 불안하면 주저앉기보다

움직이는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아이는

버스로 20분 걸리던 길을

두 시간이 넘게 걸어서라도

끝내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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