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끝에서, 나는 다음 세계를 조금 두려워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나는 많이 울었다.
지금도 그날 사진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담임선생님 옆에서 함께 찍은 사진 속
내 안경은 눈물로 얼룩져 있고,
눈시울은 벌겋게 올라와 있다.
선생님은 교탁 앞에 서 계셨고,
교실 앞과 뒤로는 학부모들이 많이 와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그날은
졸업과 새로운 시작을 축하받는 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의 나는 이상할 만큼 많이 울었다.
돌이켜 보면 그건 더 낯설다.
유치원 졸업식 사진 속 나는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졸업은 기쁘고 들뜬 일이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졸업식은 전혀 달랐다.
같은 졸업인데도
한쪽은 웃는 얼굴이고
다른 한쪽은 젖은 안경과 붉어진 눈이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슬펐는지 정확히 몰랐다.
선생님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였는지,
익숙한 교실과 친구들을 떠나야 해서였는지,
아니면 그냥 그날 분위기에 마음이 움직였던 것인지
어린 나는 잘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그 울음은 단순한 이별의 슬픔만이 아닌것 같다
내 삶에서 가장 밝고 행복했던 시절 하나가
끝나고 있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아차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시절의 나는
참 많이 웃고, 많이 뛰고, 많이 좋아하던 아이였다.
미니카를 조립했고, 레고를 만들었고,
방패연을 날렸고, 활자책 속 세계를 여행했다.
문방구 뒤뜰의 트랙은 내 경기장이었고,
동네 형 집 책상 밑은 내 작은 도서관이었다.
방학이면 시골 할머니 집에서 들과 산을 뛰어다녔고,
주말이면 모임에 갔다가 바다나 계곡으로 향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은
내 삶에서 가장 환하고 충만한 기억들이
많이 모여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니 졸업식 날의 울음은
단순히 한 학년을 마치는 감정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이미
행복한 시절이 끝나가는 감각을
깊이 느끼는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그 무렵 내게 중학교는 꽤 무서운 곳이었다.
초등학교 바로 옆에 중학교가 붙어 있었는데,
그곳의 형들은 유난히 커 보였고,
거칠어 보였고, 무섭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머리를 아주 짧게 깎아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그때의 나는 그게 왜 그렇게까지 싫은지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단순히 머리카락의 길이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짧은 머리는 내게
한 시절이 끝났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더 이상 지금의 내가 아니게 될 것 같은 예감.
마음껏 뛰놀고, 좋아하는 것에 빠지고,
어딘가 보호받고 있다는 감각 속에서 살던 시절이
조금 더 엄격하고 낯선 세계로 넘어가려 한다는 예감.
아마 나는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변화는 기대보다 먼저 상실로 다가온다.
그리고 어떤 아이들은
그 감각을 또래보다 조금 더 깊게 느낀다.
나는 그런 아이였던 것 같다.
끝나는 것, 떠나는 것, 달라지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 먼저 받아들이는 아이.
생각해 보면
그건 나쁜 감수성이 아니었다.
그만큼 그 시절을 사랑했다는 뜻이었을 테니까.
행복한 시절은 늘 끝날 때 먼저 울게 한다.
많이 사랑한 시간일수록
끝에서 더 크게 흔들리는 법이니까.
그래서 지금 나는
초등학교 졸업식 날의 내 울음을 조금 다르게 본다.
그건 유난스럽거나 약한 아이의 눈물이 아니었다.
좋았던 시절이 지나가는 것을
있는 그대로 슬퍼할 줄 알던 아이의 울음이었다.
어쩌면 그날의 나는
교실 하나와 선생님 한 분, 친구 몇 명과 헤어지는 것 이상을
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 시절 전체와 작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치원 졸업식 사진 속의 나는
꽃다발을 들고 웃고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 속의 나는
안경을 눈물로 적시고 있었다.
그 두 장의 사진 사이에는
같은 ‘졸업’이라는 말로 묶기엔
너무 다른 마음의 날씨가 들어 있다.
그리고 나는 가끔 생각난다.
아마 내 안의 어떤 부분은
그날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다음 세계로 가는 일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 일이 아니라,
한 번 사랑했던 세계를
뒤에 남겨두는 일이라는 것을.
초등학교 졸업식 날, 나는 많이 울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끝나는 것을 먼저 알아차린 아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문 앞에서 남긴,
아주 정직한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