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신 속 햇살과 함께 잠들던, 내 유년의 가장 작은 별에 대하여
외할머니 집 1층에는 세탁소가 있었다.
세탁소 뒤뜰에는 아저씨가 키우던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는데,
체구가 작고 흰색 바탕에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개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개가
새끼를 여러 마리 낳았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곧장 내려가 보았다.
과일박스로 만든 집 안에서
다섯 마리쯤 되는 새끼들이 꼬물거리고 있었다.
너무 작고, 너무 귀엽고, 너무 따뜻해 보였다.
그 작은 몸들이 한데 엉켜 움직이는 장면을 본 순간
나는 이미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다.
얼마 뒤 그 강아지들을 시장에 데려가
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외할머니를 졸랐다.
한 마리만 키우자고, 한 마리만 데려오자고.
마침 세탁소 아저씨가 그 말을 듣고 계셨고,
결국 “한 마리 줄 테니 가져가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얼른 뒤뜰로 가서
강아지들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중 한쪽 귀가 접혀 있고,
흰색 바탕에 얼굴 반쪽이 노랗고,
몸에도 노란 얼룩이 있는 한 마리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너무 귀여웠다.
나는 그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처음 안아 들었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너무 작았고, 너무 따뜻했고,
조금 추웠는지 작은 몸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 떨림이 내 품으로 그대로 전해졌다.
어쩌면 그 순간 이미 쫑쫑이는 내게 강아지가 아니라
내가 돌보아야 할 작은 생명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외할머니 집 3층 베란다에 두었다.
그런데 집 안으로 들어오고 싶었던지
낑낑대며 한참을 울어댔다.
거실 창으로 내다보니
그 작은 몸으로 어떻게 올라갔는지
베란다 난간 위를 위태롭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외할머니 집은 3층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장면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그 아이를 집 안으로 들였고,
현관 신발장 옆에 잠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쫑쫑이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쫑쫑이는 가만히 있는 법이 없는 아이였다.
한시도 멈춰 있지 못하는, 꼭 비글 같은 성격이었다.
두루마리 휴지를 물어뜯어
거실 바닥에 길게 펼쳐놓고,
카펫 모서리를 뜯어먹고,
소파를 긁어놓았다.
사고뭉치라는 말이 꼭 맞았다.
특히 외할머니 신발을 그렇게 물어뜯어 놓았다.
종류별로 골라가며 망가뜨린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외할아버지 털신은 또 달랐다.
그 큰 신발 안에 자기 몸이 쏙 들어가니 편했는지,
한낮의 햇살이 드는 시간에는 그 안에서 놀다가
어느새 털신 속에 몸을 묻고 잠들곤 했다.
그 장면은 지금 떠올려도 너무 귀엽다.
작은 몸 하나가 큰 털신 안에 반쯤 숨겨진 채
햇빛을 받으며 졸고 있는 모습.
그런 광경 앞에서는
웬만한 잘못도 다 용서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른들 눈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외할머니와 엄마는 쫑쫑이를 보며 종종
“저거 진짜 별종이다”
라고 말했다.
그 말은 어른들에겐 타박이었겠지만,
내게는 이상하게 다르게 들렸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쫑쫑이가 별나라에서 온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별종’의 앞글자만 따서
혼자 마음속으로 ‘별나라에서 온 쫑쫑’이라고 불렀다.
아마 그래서 이름도 쫑쫑이가 되었던 것 같다.
남들이 별종이라 부르던 그 아이는
내게는 가장 사랑스럽고 좋은 친구였다.
한창 뛰어놀기 좋아하던 어린 내게
쫑쫑이는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동료였다.
사고를 치고, 혼나고,
또 금세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그 생기가 좋았다.
세상이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나이의 내게
쫑쫑이는 늘 움직이고 늘 살아 있는 존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쫑쫑이는 엄마 손에 이끌려
옆 동네로 보내지고 말았다.
나는 그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쫑쫑이가 없었다.
그래서 물었더니 다른 데 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고 억울해서
왜 갔냐고, 다시 데려오라고 울었다.
내게는 그게
단순히 강아지 한 마리가 사라진 일이 아니었다.
내 친구가, 내 편이, 내 작은 세계의 일부가
말도 없이 사라져버린 일이었다.
그런데 하루 뒤,
쫑쫑이는 다시 돌아왔다.
얼굴이 거뭇거뭇해진 채였다.
어디를 어떻게 헤매고 돌아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작은 몸으로 다시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다.
나는 너무 기뻐서 쫑쫑이를 꼭 안아주었다.
짧고 얇은 꼬리를 빠질 듯 흔들어대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 반가움 앞에서 엄마도 차마 다시 돌려보내지는
못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오래 함께 살 수는 없었다.
결국 그해 여름방학,
쫑쫑이는 친할머니 집으로 가게 되었다.
나는 마지못해 동의했지만,
쫑쫑이를 예뻐해주지 않는 어른들이 밉기도 했다.
내 눈에는 그저 장난 많고 귀여운 강아지였는데,
왜 어른들 눈에는 늘 사고만 치는
문제아처럼 보였는지
어린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차를 타고 친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나는 트렁크에 탄 쫑쫑이가 걱정되었다.
길도 좋지 않았고,
멀미를 한 쫑쫑이가 트렁크 바닥에
토해 놓은 자국이아직도 생각난다.
그 흔적을 보면서도
나는 그저 쫑쫑이가 불쌍하다는 생각만 했다.
함께 도착해 주말을 보내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방학 때 다시 시골에 갔을 때,
쫑쫑이는 없었다.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누가 데려갔는지,
정확한 끝은 기억나지 않는다.
쫑쫑이는 그렇게 어느 순간
내 기억 밖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
쫑쫑이는 늘 또렷하게 돌아온다.
털신 속에서 졸던 모습,
짧은 꼬리를 흔들던 모습,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날 집에 없어서 울던 마음,
그리고 하루 뒤 얼굴이 거뭇해져서
다시 나타났던 장면까지.
생각해 보면 쫑쫑이는
내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동물이자,
처음으로
내 뜻대로 지킬 수 없었던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별종이라고 불렀지만,
내게 쫑쫑이는 정말 별나라에서 온 친구 같았다.
잠깐 우리 곁에 머물다,
다시 자기 별로 돌아간 것 같은.
그래서 지금도 유년 시절을 떠올릴 때면
쫑쫑이는 늘 그 시절의 한가운데서
짧은 꼬리를 흔들며 다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