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가 길수록 연은 안정적이었다

나를 붙잡는 줄 알았던 것들이, 결국 나를 흔들리지 않게 했다

by 루츠



초등학교 겨울방학,

연을 만들어 날려보라는 숙제가 있었다.


엄마에게 문방구가서 연을 사야한다며

용돈을 달라고 졸랐다

문방구 앞에는 가오리연이 진열되 있었고

난 그걸 가지고 쉽게 연날리기를 할 생각이었다


아버지가 그 말을 듣더니

가오리연은 진짜 연이 아니라며

같이 연을 만들어보자고 하셨다.

그리고는 몇일 뒤

아버지는 어디선가 대나무를 구해오셨다.

안방 바닥에 신문지를 넓게 깔고,

그 위에 앉아 조금 큰 칼로

대나무를 세로로 여러 번 쪼개셨다.


점점 얇아진 대나무 살을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비슷한 것 네 개를 고르셨다.


나는 문방구에서 사 온 한지를 직사각형으로 자르고,

가위로 중앙을 동그랗게 오려냈다.


아버지는 대나무 살을 X자로 대고,

가운데를 가로지르게 하나를 더 얹고,

맨 위에도 하나를 덧대셨다.


물풀 뚜껑을 열어 작은 그릇에 담고,

붓으로 한지 위에 살을 감싼 부분에

조심스럽게 발랐다.


물풀 특유의 약간 시큼한 냄새가 방 안에 퍼졌다.


특히 맨 위의 살은 더 두껍고 단단하게 만드셨다.

연이 떨어질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곳이라서

더 튼튼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한지를 길게 잘라 이어 붙이며

아주 긴 꼬리를 만들기 시작하셨다.


왜 이렇게 길게 만드냐고 묻자,

아버지는 말했다.


“지금은 길고 귀찮아 보여도,

하늘에 올라가면 흔들리지 않게 잡아준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 긴 꼬리가 조금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졌다.




연을 다 만들고 나니

벌써 오후가 거의 다 지나 있었다.


그래도 한 번 날려보자며

우리는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연을 바람에 띄우는 것조차 잘 되지 않았고,

긴 꼬리는 더 방해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제대로 날려보지 못하고

그날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연을 보니

맨 위 대나무 살을 감싼 한지가 다 헤져 있었다.


왜 아버지가 그 부분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는지

그제야 알게 됐다.


그날 저녁,

나는 자투리 한지를 다시 잘라

그 부분을 덧대어 붙였다.




그 이후로 매일 점심을 먹고 나면

운동장에 나가 연을 띄웠다.


부산의 2월 바람은

봄이 가까워질수록 더 거세졌다.


나는 몸으로 배웠다.

바람을 등지는 게 아니라,

바람을 향해 달려야 연이 뜬다는 것을.


실이 풀려나가기만 하면

연은 오히려 힘없이 내려앉았다.


그때 더 세게 바람을 향해 뛰어가면

연은 다시 높이 올라갔다.


한 번 몸으로 배운 감각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연을 띄우는 게 어렵지 않게 되었다.


실의 텐션을 유지하면서

연을 더 높이, 더 멀리 올릴 수 있게 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실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그때

외할머니의 미싱 위에 올려진

실타래가 눈에 들어왔다.


‘저거다.’


몰래 실타래를 들고 운동장으로 나가던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늘은 얼마나 더 높이 날릴 수 있을까.


그날 바람은 매서웠고,

실타래는 빠르게 풀려나갔다.


이전에는 한 번도 올려보지 못했던 높이에

연이 닿았을 즈음이었다.


손에 쥔 실이

묵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그렇게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던 긴 꼬리가

하늘 위에서는

연의 균형을 잡아주는

묵직한 추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햇살이 방패연과 함께 빛나고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번쩍이는 느낌이 들었다.


실타래가 거의 다 풀렸을 때,

연은 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져 있었다.


하지만

팽팽하게 당겨지는 손끝에는

분명히 연결되어 있었다.




손잡이도 없는 실타래를

다시 감아 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끝까지 다 감아 들였을 때,

나는 스스로가 아주 자랑스러웠다.


엉망이 된 실타래를

외할머니 몰래 다시 미싱 위에 올려놓았지만,


그날 저녁

나는 결국 등짝을 맞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살다가 문득

그날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꼬리가 길수록, 연은 안정적이다.”


어린 나는 그 말을

그저 연을 날리는 방법으로만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들린다.


살다 보면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때로

거추장스럽고 버겁게 느껴진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들 때문에

나는 더 멀리, 더 높이 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꼬리가 길다는 것은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흔들리지 않게

버텨주는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