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집은 불안했고 좁은 방은 따뜻했다.
일곱살 무렵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그런데 나는 그 집이 무서웠다.
그전까지 살던 집들은 대체로 좁았다.
달동네 꼭대기 집도, 국민주택도
넉넉한 공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아파트는 달랐다.
내 어린 눈에는 집이 너무 커 보였다.
방도 있었고, 거실도 있었고,
문을 열면 또 다른 공간이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큰 집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는 충분히 넓었고,
그래서 조금 무서웠다.
이상한 일이다.
사람들은 넓은 집을 더 좋다고 말하지만,
어린 나는
넓어진 집에서 허전함을 먼저 느꼈다.
집이 좋아졌다기보다,
내가 혼자 남겨질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 무렵
나는 막 세 살쯤 된 동생과 함께 2층 침대를 썼다.
동생은 아래층, 나는 위층.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때마다
삐걱거리던 소리가 이상하게 무서웠다.
어떤 날은 위층에 혼자 누워 있는 게 싫어서
아래로 내려가 동생 옆에 붙어 자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단순한 잠자리가 아니라,
혼자 있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었던 것 같다.
밤이 되면 집 안은 더 넓어졌다.
불이 꺼진 거실과 문틈 너머의 어두운 공간들은
낮보다 훨씬 멀고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무서워서 불을 켜고 자기도 했던 것 같다.
그 시절의 나는 몸도 썩 강한 아이는 아니었다.
겨울이면 늘 감기와 고열로 고생했고,
폐렴으로 일주일씩 입원하곤 했다.
어느 겨울밤이었다.
열이 떨어지지 않아 몹시 힘들었던 날
엄마는 내 옷을 벗기고,
체온을 낮춰야 한다며
차가운 베란다에 나를 세워두셨다.
어린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너무 차갑고 무섭다는 감각만
또렷하게 남아 있다.
안 그래도
넓고 허전하게 느껴지던 집이었는데,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집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졌고,
우리는 외할머니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막내가 태어나며, 다섯식구가
작은 방 하나에서 함께 지냈다.
옷장을 넣고 TV를 들여놓으니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서로 닿지 않을 수가 없는 공간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훨씬 어려운 형편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저귀와 분유를 살 돈도
빠듯했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기억 속 그 방은
답답함보다 따뜻함으로 남아 있다.
누우면 서로의 팔과 다리가 자연스럽게 닿았다.
숨소리도, 체온도 가까웠다.
어떤 날은
아버지에게서 매캐한 냄새가 나기도 했는데,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 품에 기대어 있는 게 좋았다.
동생들은 먼저 잠들고,
엄마와 나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TV를 보았다.
그때 함께 보던 프로그램이 ‘포청천’이었다.
마지막에 '작두'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엄마가 내 눈을 가리면,
나는 일부러 더 엄마 품으로 파고들었다.
방이 작아서였는지
아니면 사람이 가까워서였는지
그 공간은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었다.
방문을 열면
거실에는 외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계셨다.
집 안 어디를 가도 가족이 있었고,
그 집은 늘 가득 차 있는 느낌이었다.
어린 나에게 그곳은
정말 ‘집 같은 곳’이었다.
나는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며
넓음과 좁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파트는 분명
더 나은 조건의 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내게 그 집은
조금 무섭고 허전한 곳이었다.
반대로 외할머니 집의 작은 방은
객관적으로는
훨씬 불편하고 빠듯한 공간이었겠지만,
내게는 더 따뜻하고 안심되는 곳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왜 넓은 집에서는 무섭고,
좁은 방에서는 안심이 되는지를.
어린아이에게 중요한 건
공간의 넓이가 아니라
그 안에서
누구와 얼마나 가까이 있냐였다는 것을.
넓은 방보다 사람의 체온이,
고요한 거실보다 익숙한 숨소리가,
더 큰 위로였다는 것을.
어쩌면 나는 아주 일찍부터
안전이라는 것이 벽의 크기가 아니라
사람의 거리에서 온다는 걸
몸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은 생각한다.
내 유년기를 따뜻하게 지켜준 것은
넓고 좋은 집이 아니라,
서로 붙어 자던
좁은 방의 체온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넓은 집은 무서웠고,
좁은 방은 따뜻했다.
어린 나에게 집은
평수가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주는
온도의 이름이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집이라는 건 크기가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의 온도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넓은 공간보다,
사람을 더 필요로 했던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