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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강 Jun 25. 2020

사회화, 노화

조세핀과 저녁에 대화하다가 내 제자 중 한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나에게 7세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서 현재는 9세인데, 성격이 예민하고 학습에 집중도가 낮은 편이다. 7세 시절에는 예민함의 폭발로 선생인 내게 도를 넘는 언행을 하여 나에게 혼이 나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도 예민한 기질은 여전하지만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조금 더 커다란 사회에 발을 딛고, 또래집단을 만나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덕과 예의범절을 배우면서 아이의 예민함은 많이 깎여나갔다. 이 아이 이야기를 하다가 밤늦게 퇴근하면서 나의 사회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마음이 여리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대범하지 못하고 수줍음과 쑥스러움이 많아서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기 어려워하고 수업시간에 발표도 못했다. 겁도 많고 조심성도 많아서 늘 주변을 살피면서 걸었다. 나의 이런 점을 아버지는 걱정스러워 하셨는데, 세상을 살아가려면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그래서 일부러 반장 선거에 나가기도 했다. 나는 능동적이고 용감하진 않았지만 친구 관계가 좋고 선생님에게 신뢰받는 학생이었으므로 반장 선거에 나가면 대부분 반장으로 뽑혔고, 중학교 때는 전교학생회장까지 했다. 대학 때는 음대 학생회장까지 했으니 이만하면 나는 명예직을 통하여 소심함이 많이 깎였다고 해야할까.


나는 평범하고 무던한 사람이나, 감수성은 예민한 편이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시절을 생각하면, 그 시절을 터널처럼 통과한 내 스스로에게 박수 쳐주고 싶다. 이렇게 견뎌내어 30대가 되었구나 하고 말이다. 내리는 빗방울에 살갗이 아프던 저녁, 침대에 잠식해버린 것 같던 아침, 베개를 적시던 새벽은 30대가 되고 나서는 겪어본 바가 드물다. 나는 사회화가 된걸까? 그저 노화가 되어버린 것 같다. 20대의 감정 소모는 줄었고, 감정 소모를 할 것 같은 관계는 대부분 시작 조차 하지 않는다. 피곤한 육체를 감당하기엔 나는 언제나 같은 시간에 기상해야 하기 때문에 규칙적인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한다. 평일에 온힘을 다해 생업에 종사해야 하기 때문에 주말엔 온전히 휴식하려고 한다. 주말에는 움직임이 거의 없이 쇼파 붙박이기 때문에 열량 소모마저 거의 안한다고 보면 된다.


나는 이렇게 사회화 과정을 지나 노화에 진입했다.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돌아가기에 나는 그 시절이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30대라고 특별히 안정된 기분인지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불안하고 긴장하며, 한치 앞을 모르겠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여전히 나를 제압하고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은 청년 시절. 나의 중년은 어떨까? 또 어떤 방식의 노화가 나를 중년으로 이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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