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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Apr 12. 2023

구차

1. 구차타임이 다시 돌아왔다.

흥에 겨워 이거 하자 저거 하자

의욕이 하늘을 뚫으며 이거 할까 저거 할까

신나 하다가 어느 순간 그런 나의 행동들이 구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상대방은 덤덤하거나 아니면 아니면 귀찮아하는지도 모르는데 나 혼자만 눈치 없고 물색없이 덩실덩실 깨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시기가 한 번씩 찾아오는데, 결국, 참으로, 오랜만에, 그 시기가 왔다.


에너지의 고갈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봐 달라는 어리광이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왜 신나게 동조해 주지 않아요?

라는 마음과 비슷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나만이 그들을 향해 일방적인 애정공세를 펼치는 것 같아 한없이 서글퍼지는 마음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슬프고 구차해진 마음을 안고 슬그머니 멀찍이 떨어져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나의 소중함을 알게 되지 않을까?

나는 아직도 이렇게 어리고 유치하다.

그런데 이런 시기가 오면 한 번씩 인간관계가 정리되어 좋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지만 관계에 집착하는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얹는 것.

나도 그런 시간을 잠시 가져볼 예정이다.


고갈되어 버린 에너지가 다시 충전될 때까지는 내 마음에 생채기를 만드는 일을 당분간은 하지 말아야겠다... 지그시 이를 물고 다짐해 본다



2. 그래서 지그시 이를 악무는 인생을 살아온 결과 오늘 치과 의자에 2시간이 넘게, 머리가 심장보다 낮은 자세로 묶여(?) 있어야 했다.

오랜 시간 머리가 낮은 데로 향하니 기도가 막히는 것 같은 공포에 숨을 헐떡였고, 10년 넘게 다닌 치과에서 10년 넘게 나를 진료해 주는 선생님 앞에서 공포에 질린 추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아주 오랫동안 나의 치아를 돌보아주고 계신 선생님은

- 뼈가 아주 단단하고 튼튼하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보통 이 정도면 이가 쓰러지거든요. 근데 치아가 부분파절되는 정도로 마무리 됐다니 좋게 좋게 생각하세요

라고 하셨다.


잇몸을 밀어내고 치아가 쓰러지지 않게 지지대를 세웠다.

- 몇 주 시리고 아프겠지만 곳 잇몸이 다시 자라 치아를 예쁘게 덮어줄 거예요


나는 내가 쓰러지는 대신, 치아가 쓰러질 정도로 이를 악물고 시간을 버텨왔다.

이를 악물지 않고 살기 위해 생각이 많아졌다



3. 그래서 또 생각이 많아진 결과 인생이 구차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

이 모든 것이 계속 돌고 돈다.


마음이 쓰러지지 않게 버팀목을 세워본다.

그리고 그것이 굳어지고 또 다른 마음이 새살처럼 돋아나 세상과 거침없이 마주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보려 한다.

상처 입은 마음을 덮어줄 시간이 쌓일 때까지 차분하게, 나를 지켜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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