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3 - 계약
십계명과 율법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언제 기록되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실제 모세가 기록을 한 것이든 후대에 편집된 것이든 제가 지닌 생각과 믿음에는 어떤 변화는 없습니다. 다만 보다 크게 일하시고 제 머릿속 능력으로는 가늠할 수 없이 큰 것을 품으시는 신의 세계를 이해하면서 믿으려면, 제 생각이 보다 합리적인 게 옳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리면서, 모세 오경 및 십계명을 비롯한 초기 율법에 대한 기록은 이야기(설화)와 몇 가지(주로 J, E, D, P라고 이름 지어진 네 개의 문서를 위주로 한) 문서들로 따로 전해 오다가, 출애굽 이후 약 6-7백 년 뒤에 문서 곧 모세오경으로 틀을 잡았다는 것이 오늘날 많은 성서학자들의 일반적인 이야기라는 말씀을 소개합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십계명은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야훼 하나님과 히브리족 사이에 맺은 약속의 원형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기타 제사, 사제들의 법규, 사회경제적인 관습법, 여러 가지의 종교적 법률들은 시내산 광야에서 맺어진 것이라기보다 그 후 수 백 년간의 경험들을 토대로 후대에 그 민족이 약속으로 고백한 것이라는 게 제대로 된 이해일 것입니다.
자! 이제 지난 글에서 말씀드린 그 무렵의 유사한 법전이나 규율(우르남무와 함무라비법전)과 십계명의 근본적인 차이 곧 완연히 다른 모습 두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첫째는 탈애굽시대를 전후한 일반적인 고대사회의 법전이나 규율들은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는 법이었습니다. 이미 지난 글에서 우리들이 읽어 보았듯이 “어떤 나쁜 짓을 하면 어떤 벌을 받게 된다.”는 형벌의 원칙이 세워져 있답니다.
그런데 히브리족과 야훼사이에 맺은 것은 법전이나 규율이 아닌 계약이라는 점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아닌 신과 사람 사이에 조정 가능한 계약이라는 것이지요. 또한 형벌의 원칙이 없습니다.
십계명을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이웃집을 탐내지 말라. 등의 “말라” 하는 규정은 있지만 “하면 이런 벌을 받는다”는 규정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차이인지 아직 모르시겠는 분들은 제 바로 전 글 “불변”을 참조하시길)
두 번째 일반적 율법 정신 바탕입니다. 이른바 신명기 법정신입니다. 철저히 약자 보호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예였던 히브리족을 해방시켜 주신 야훼의 줄기찬 선포이자 신의 법정신입니다.
노예였던 히브리족을 해방시킨 야훼 하나님은 히브리족을 향하여 줄기차게 너희 가운데 약한 사람들을 살피고 돌보라는 명령을 내리신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의 기초라는 것입니다. 이 율법정신의 바탕에는 강자인 신 곧 야훼가 약자인 히브리족 곧 사람인 나에게 베풀어준 은혜를 사람 사이에서 통하게 하라는 명령이 깔린 것이지요.
신께서 사람이 된 세상이 아니라 사람을 신으로 끌어올리려는 세상을 꿈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지요.
저는 이것을 밥상으로 해석해 봅니다. 광야시대는 하나님께서 히브리족을 직접 통치하는 기간이었고, 누구나 차별 없이 똑같은 질과 양의 먹을 것을 공짜로 나누는 밥상을 마주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시대를 끝내고 가나안 시대로 들어가는 히브리족에게 더 이상 이런 밥상은 누릴 수 없었습니다. 다만 선조들이 누렸던 ‘밥상정신’만 남게 된 것이지요.
3500여 년 전 히브리 노예족이 만난 신이었답니다. 그렇게 그들이 신과 맺은 계약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이제 광야시대를 마치고 히브리족의 이름이 바뀌는 가나안시대로 들어갑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왕국을 세우고, 분열과 멸망, 포로와 귀환을 거치며 긴 역사를 지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사로 다른 역사적 경험을 하면서 똑같은 “하나님 나라”라는 말이라도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시점인 모세의 광야시대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지금 그들을 인도하는 오늘이라는 시점과 가나안이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살아 숨 쉬며 사는 하루하루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의 연장을 맞는 것은 자신들의 아들 딸이었습니다. 삼대, 사대에 걸친 축복의 약속이었습니다. 자신의 죽음 후의 천당의 모습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를 일컬어 히브리적 사고라고도 말합니다.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는 이해입니다.
구약의 상당 부분은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해야만 나중에 이어지는 예수가 말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를 설명하는 바울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쉽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모세시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나아가 모세 이야기가 주된 신앙의 조건인 유태교와 오늘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한국계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며 한 가지 아주 중요한 모세와 그 시대 히브리족의 생각을 말씀드립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는 인류 역사상 그 누구와 비교해도 모자랄 게 없는 뛰어난 지도자였습니다.
모세는 백성을 이끌었고, 율법을 전했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잇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주변의 대다수 나라들이 왕을 세우고 있었지만 모세는 결코 왕이 아니었습니다. 왕은 야훼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족의 이러한 하나님 이해는 가나안에 들어가 다윗왕권이 세워질 때까지 이어진답니다. 하나님의 직접 통치시대인 셈입니다.
저는 이 시대를 우리들이 누리고 가야 할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의 첫 번째 모형의 시대라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절대 복지가 이루어지는 사회, 공평이 정의가 되는 사회, 사회적 약자가 이해되고 거두어지는 사회 바로 그런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런 나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역사가 바로 하나님의 역사라는 믿음입니다.
모세 시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죽은 뒤의 나라가 아니라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삶의 자리였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그 땅, 가나안으로 이어집니다.
***(제 이야기는 앞으로 가나안의 이스라엘 부족동맹, 왕국시대 또는 예언자시대, 포로시대, 귀환시대, 신구약 중간시대, 예수시대, 성령시대 – 바울, 초기 교회, 교회시대, 한국교회, 우리들 그리고 나와 천국의 순으로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