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천국 - 6

약속 2 – 갑과 을, 그 불변의 관계

by 김영근

다시 모세오경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모세오경을 모세가 썼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이미 에둘러 드렸습니다. 모세오경은 대략 기원전 7-8세기경에 쓰인 것이라는 게 학문적인 주장이랍니다.

애굽탈출이 기원전 15세기경 정도였으니 대략 사건이 일어난 지 칠, 팔백 년이 지난 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들을 모아 만들어진 책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가 썼고, 언제 썼느냐를 알아보려는 까닭은 바로 “약속”에 대한 바른 이해와 믿음을 위해서랍니다.


이 모든 말씀은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하느님이다.” (출애굽기 20: 1, 공동번역)



무릇 모든 약속이나 계약은 상대방이 있게 마련입니다. 물론 자기 스스로 혼자 하는 약속도 있고 계약도 있겠습니다만 이 경우는 그 결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거나 판단할 방법은 없는 것이지요. 다만 이 경우에도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능력 여부에 따라 그 약속이나 계약 이행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은 여러 과학적 검증들이 확인시켜 주고 있지요.


3500여 년 전 시내산에서 맺어진 야웨신과 히브리족 간에 약속 곧 계약은 오늘날 모든 계약이나 조약 또는 일반적 약속들과 마찬가지로 “갑(甲)”과 “을(乙)”의 정의로 시작됩니다.

계약과 약속의 한 축인 갑(甲)이 된 야훼 하나님에 대한 정의(定義)와 또 다른 한 축인 을(乙)이 된 히브리족의 정의가 계약의 시작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갑인 야훼 하나님에 대한 정의는 히브리족을 해방시킨 해방자이고요, 을인 히브리족은 노예였다가 갑에 의해 해방된 자유인이라는 것입니다.


이 갑, 을 관계의 정의에 따라 맺어진 계약이 바로 십계명을 비롯한 하위의 율법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너희의 조상은 노예였다. 그리고 내가 해방시켰다.”는 이 명제는 지난 3500여 년 동안 유태인들을 지탱시켜 준 지주인 것입니다.

“내 뿌리는 노예였다. 하지만 야훼 하나님께서 나를 해방시켜 자유인이 되게 하셨다.”는 고백은 우리들이 오늘 누릴 수 있고, 죽어서 가게 될 천국 곧 하늘나라에 이르는 구원(救援) 역사의 원형이 되는 고백입니다.


유태인들이 자그마치 이천여 년 동안을 남의 나라에 둥지를 틀고 살면서도 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요인은 바로 “을”이었던 자신들의 역사적 경험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즈음의 이스라엘 국가 공동체는 한참 엇나간 기억 속에 살고 있지만 말입니다.


디아스포라 곧 흩어지고 나누어지고 퍼져 나가는 자신의 고향 땅을 등지고 삶을 찾아 나서야만 하는 의미의 이 말이 유태인들과 연결된 역사는 정말 오래된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시대부터 따진다면 자그마치 2600여 년이 넘은 일입니다.


성서 속에 나타나는 신(神)과 인간 사이의 관계, 바로 이 바로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한 바른 이해는 천국으로 향하는 걸음걸이의 시작일 것입니다. 이 관계는 변치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그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나다.’ 하고 말씀하시는 그분이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일러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선조들의 하느님 야훼이시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시다.’ 이것이 영원히 나의 이름이 되리라. 대대로 이 이름을 불러 나를 기리게 되리라. (출애굽기 3: 13-15, 공동번역)


세상이 바뀌는 속도는 해가 갈수록 빨라집니다. 특히나 지난 몇십여 년간 컴퓨터와 스마트폰, 그리고 이즈음의 AI가 바꾸어 놓은 사람들의 일상은 가히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불통이었던 세대 간의 소통은 바뀐 언어 습관으로 인해 이젠 같은 말을 사용하면서도 서로 통하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반대로 세상 모든 다른 언어들이 AI라는 신형 문물에 의해 하나가 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우리 세대들도 젊었던 시절엔 아버지 세대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만 이즈음 젊은 세대들이 갖고 있는 생각에 비하면 그 간격이 그리 넓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제가 이제는 이즈음 젊은 세대들의 사고와 생활행태를 이해하기 힘든 늙은이가 되어 버렸다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이런 21세기 문명의 시대에 느끼는 제 감정은 그대로 3000여 년 전에 살았던 노인들에게도 그대로 통하는 것이었답니다. 그 당시의 노인들이 그즈음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세상은 바뀌어 가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거의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사람의 본성입니다.


몇 가지 기록들을 함께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우르남무의 법전(法典, Code of Ur-Nammu)이라는 현재 알려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법전입니다. 기원전 2100년에서 2050년 사이에 수메르어로 기록된 문서입니다. 1952년에 발견된 이 법전은 총 57개 항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입니다.

1.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사형되어야 한다.

2. 절도를 하면 사형될 것이다.

3. 어린이를 납치하면 그는 수감되고 은 15 세겔을 치러야 한다.

4. 또 다른 이의 권리를 침해하고, 젊은이의 처녀 아내를 겁탈하면 그들은 그 남자를 죽일 것이다.

5. 남의 아내가 다른 이를 따르고 동침하면, 그들은 그녀를 처형하지만 그 남자는 놓아줄 것이다.

6. 다른 이의 눈을 상해하면 은 1/2 미나를 물어야 한다.

7. 다른 이의 이빨을 부러뜨리면 은 2세겔을 지불해야 한다.

8. 증인이 위증을 하면 은 15 세겔을 지불해야 한다.


두 번째는 제가 어렸을 적 학교에서 인류 최초의 성문법이라고 배운 함무라비 법전입니다. 함무라비왕(1792∼1750 B.C.)이 만들었다는 법전입니다. 나중에 발견된 수메르의 우르남무의 법전보다 300여 년 정도 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 세대가 학교에서 배운 게 사실이 아닌 것이지요. 아무튼 그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것 몇 가지 보시지요.


1. 도둑이 소나 양, 당나귀, 돼지, 염소중 하나라도 훔쳤더라도 그 값의 열 배로 보상해 주어야 한다. 도둑이 보상해 줄 돈이 없다면 사형당할 것이다.

2.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멀게 했다면 그 자신의 눈알을 뺄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의 이빨을 부러뜨렸다면 그의 이도 부러뜨릴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의 뼈를 부러뜨렸다면 그의 뼈도 부러뜨릴 것이다.

3. 의사가 환자를 수술하다가 환자가 죽게 되었다면 의사의 손은 잘릴 것이다.

4. 강도가 어떤 집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물건을 훔쳤다면 그 구멍 앞에서 죽음을 당할 것이다.

5. 만약 어떤 사람을 사형에 처할 만하다고 하여 고소하고도 이것을 입증할 수 없다면, 고소한 자를 사형에 처한다.

6. 농민이 과수원을 소작하면 수확의 2/3를 주인에게 바친다. 만약 수확고가 줄어들면 그 책임을 농민에게 돌려 소작지 주변의 수확고 표준에 따라 농민에게 소작료를 바치게 한다.


세 번 째는 우리나라 고조선 시대에 법률이었던 팔조지교(八條之敎)입니다. 팔조법금(八條法禁)이라고도 불리는 여덟 개로 된 법률인데 그중 세 가지 조항만 중국의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 세 가지 항목입니다.


1.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2. 남에게 상해(傷害)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한다.

3.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데려다 노비로 삼는다. 단, 자속(自贖)하려는 자는 1인당 50만 전을 내야 한다.


기원전 1000여 년 전후부터 내려온 법률로 알려져 있는데 고조선 후기시대에 이르러서는 그 법률 조항들이 60여 개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기적으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살인, 절도, 강도, 강간, 위증 등의 죄는 단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법령 등이 예나 지금이나 그 규제 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여전히 유효한 까닭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에서 늘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들이 알아보려고 하는 야훼 하나님과 히브리족 간에 시내산에서 맺은 약속들 곧 계약과 율법들 역시 이런 고대 법전들과 얼핏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고대의 법전들과 히브리족의 율법 사이에 확연히 다른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계약의 당사자들 즉 율법 제정자와 그 규율의 제재 아래 놓인 사람들의 정의가 다르다는 것이고, 두 번 째는 그 율법 제정의 밑바탕 정신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본성을 규제하는 똑같은 법률이지만 그 제정자와 그 제정 정신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그 다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가겠습니다..


** 야훼 : 하나님이 모세에게 처음 나타나셔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장면이 출애굽기 3장에 나옵니다.(위에서 인용한 성경구절) “나는 곧 나다”라는 선언이지요. 그리고 이어서 “야훼”라는 이름을 알려 줍니다.

야훼 또는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에 대해서는 많은 학설들이 구구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아주 좋아하는 해석은 “ 지금 나(우리)와 함께 있는 그가 함께 하시고 도우신다.”라는 것입니다.

하여 개인적으로 제가 드리는 기도의 첫 문장은 늘 “여호와, 오늘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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