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1 (권유)
아직도 징병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으로 자란 사내들이라면 누구나 군복무를 마치게 마련입니다. 군복무에 적응할 수 없을 정도의 심신허약자이거나 사회부적응 경험이나 판단으로 징역형을 받았거나 국가가 면제하는 조치에 해당되는 자가 아닌 정상적인 젊은이라면 누구나 일정기간의 군복무를 해야만 하지요. 물론 군복무를 직업으로 선택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내로라하고 이름이 알려진 이들 가운데 제법 많은 이들이 군복무 경험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들을 종종 듣는답니다. 왈 특권층이지요. 아마 그런 사람들은 이런 꿈을 꾸어 본 경험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어떤 꿈이냐고요?
징병제도 아래서 군대를 다녀온 이들이 꾸는 아주 전형적인 악몽은 군대 다시 끌려가는 꿈이랍니다. 분명히 제대를 했는데 어떤 이해하지 못할 이유로 하여 다시 새롭게 군복무를 해야만 하는 꿈을 꾸는 것이지요. 이런 꿈을 꾸다가 깨고 나면 정말 기분이 좋지 않답니다.
아무튼 제가 군대생활을 할 때의 만기는 약 3년이었습니다. 당시 저 같은 졸병들이 힘들 때면 자조 섞인 이런 위로의 말을 뱉곤 했답니다. “뭣으로 뭉개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라는 말이죠.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가 살아서 분명히 그 끝을 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끝이란 제대라고 하는 군복무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이게 종말의 역사관에 대한 제 나름의 아주 쉬운 이해입니다. “끝이 있다는 것’ 이야말로 성서가 이야기하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자! 다시 3500여 년 전 이집트로 돌아가 봅니다.
출애굽기 3장 첫 부분을 보면 야훼신이 모세를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가 야훼신을 찾은 것이 아니고 야훼신이 모세를 먼저 부른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바로 출애굽기 3장 7, 8절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야훼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그 땅에서 이끌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 가나안족과 헷족과 아모리족과 브리즈족과 이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너희들이 지금 겪고 있는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 슬픔, 두려움 등등 사람으로서 피하고 싶은 모든 일들을 겪고 있는 모습을 내가 보고 듣고 알고 충분히 이해했다. 이제 내가 너희들을 구원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보내주마라는 말이지요.
바로 약속입니다.
다시 군대이야기. 징병제도 아래서 징집기간이 정해지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일테면 일단 징집이 되면 죽기 전엔 나올 수 없다면 말입니다. 아마 징병제가 제대로 실시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징병제는 끝이 보이는 약속이 가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3500여 년 전 모세에게 야훼가 한 약속은 분명 징집기간처럼 정해 놓은 약속이었답니다. 바로 가나안이라고 하는 확정된 땅을 약속했다는 말입니다. 넉넉잡아 한 달이나 달 포 반 정도면 끝낼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약속이었다는 말씀이지요. 물론 사람 입장에서의 생각이었지만요.
그 약속을 믿고 애굽의 노예상태보다는 훨씬 나은 삶이 보장될 것 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모세와 히브리족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이 떨어져 배가 고팠고, 목도 말랐던 가운데 약속의 신이 이런 아픔과 어려움들을 해결해 주는 경험을 했다고 고백을 합니다.
탈애급 한지도 달 포를 넘어 삼 개월이 되었을 무렵, “이제부터 시작하는 계약서를 쓰자”라는 야훼신의 요구(십계명 사건)를 히브리무리들이 이것만이 오직 살 길이라고 고백하는 것도, 이제 바로 도달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달 포는커녕 일 년이 지나 사십 년이 흐른 후 다다른 땅, 가나안은 결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답니다. 다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고대하며 걸어온 사십 년의 세월과 그 시간 속에서 맺었던 약속들만이 남아있었을 뿐이지요.
이제 너희가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준 계약을 지킨다면, 너희야말로 뭇 민족 가운데서 내 것이 되리라. 온 세계가 나의 것이 아니냐? 너희야말로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내 나라, 거룩한 내 백성이 되리라.(출애굽기 19: 5-6)
백성들은 일제히 “야훼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그대로 실천하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출애굽기 19:8)
구약 성서 전체의 내용을 정말 짧게 요약한다면 위에 인용한 두 성경 구절이 될 것입니다.
야훼 신과 히브리 민족 간에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잘 이행되던 때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에 히브리족들이 겪는 일들과 그 겪고 경험한 일들에 대해 어떻게 고백했느냐에 대한 기록이 바로 구약 성서입니다.
노예 처지에서 꿈도 없이 갖은 고생을 하던 히브리족들은 야훼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모세의 말을 믿고 애굽을 탈출했습니다.
이후 사십 년 동안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비록 모세가 대행을 했을망정 이들을 다스린 이는 야훼 하나님이셨습니다. 모세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제일 마지막인 신명기 마지막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 이스라엘에는 두 번 다시 모세와 같은 예언자, 야훼와 얼굴을 마주 보면서 사귀는 사람은 태어나지 않았다. 모세가 야훼의 사명을 띠고 이집트 땅으로 가서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과 그의 온 땅에 행한 것과 같은 온갖 기적과 표적을 행한 사람은 다시없었다. 모세처럼 강한 손으로 그토록 크고 두려운 일을 온 이스라엘 백성의 눈앞에서 이루어 보인 사람은 다시없었다.”
성서 속 모세는 곧 야훼 하나님의 대행자였던 것입니다.
애급 탈출 후 석 달째 되는 초하룻날, 탈출무리들은 시내 광야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야훼 하나님과 히브리 민족 간에 계약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십계명을 비롯하여 이른바 율법이라는 약속이 신과 인간들 사이에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약 3,500여 년이 지난 지금, 오늘 여기(지구상 어디에 있거나 간에 )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연관되는 약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물론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이 예수를 통해 구원을 받았다고 믿거나 그렇게 되기를 바라거나 또는 지금 오늘이 천국이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고 있거나 죽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싶다는 소망이 있는 분이라면 분명 연관이 된 약속입니다. 상관없는 분에게는 상관없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이 부분은 옳고 그름의 차이가 아니라 다름의 차이입니다. – 요거 굉장히 중요한 말이라 고딕처리합니다. 따로 상당 부분 이야기 할 것입니다.)
자! 간단하게 요약하면 “개고생 하던 너희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 세상천지에서 제일 잘 살고 멋진 무리로 만들어 주려고 하는데… 그곳으로 데려가기는 데려가지만… 그렇게 되려면 요것만큼은 나하고 약속해야 되거든…. 이제 어쩔래?”하고 묻는 신에게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했다는 말이지요. “당근이지요. 그걸 우리들이 왜 약속하지 않겠어요? 손가락 걸고 약속할게요!”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약속들을 했을까요? 바로 모세 오경이라고 일컫는 성경의 다섯 책 가운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 네 권의 책들이 바로 그 약속들에 대한 기록이랍니다. 한 번들 시간 내서 읽어들 보시길 권합니다. 천국 같은 삶을 살려거나 죽어 천국을 가려면 말입니다.(필요충분조건은 아니랍니다.)
저는 그 약속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과 왜 그런 약속을 해야 했는지라는 원인, 그리고 그 약속들과 하나님 나라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이야기를 진전시키기 전에 단 한분이라도 읽는 이들을 위해 권유와 당부의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읽는 이들의 시간과 생각을 절약시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제가 남의 시간 도둑놈이 되기는 싫기 때문입니다.
왈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민수기, 레위기, 신명기)을 살아생전 모세가 기록했다고 철석같이 믿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어지는 제 글을 읽지 마시기를 권합니다. 그렇게 교육되고 믿는 환경에서 그렇게 믿는 분들은 그렇게 믿다가 믿는 천국으로 가시는 것이 훨씬 편하고 바람직하다는 제 생각 때문입니다.(이건 조금이라도 제가 비틀어 말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일흔 해 넘게 살아오며 굳은 제 확신으로 제 믿음 안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또한 길이기에 그렇습니다.)
성서의 무오성(성서는 한 점도 오류가 없다는 믿음), 문자적 영감(성서의 문자 하나하나 모두가 신이 주신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믿음)에서부터 모세 오경의 모세 저작설, 더 크게 나가자면 동정녀 탄생, 예수의 기적, 육체의 부활 등등을 문자 그대로 믿는 분들에게는 제 이야기보다는 그 믿음대로 믿고 기쁨으로 사시는 것이 천국에 가까울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믿기는 하는데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에 대한 확신, 오늘 지금 여기에서 믿는 구원의 확신, 나아가 오늘 하루 사는 기쁨이 없는 분들이시라면 조금 거슬리더라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시기 바라는 마음으로 제 글을 이어갑니다.
제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까닭은 바로 누군가 단 한 사람만이라도 오늘 하루 누리는 참 기쁨과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게 하고자 함이요 나아가 죽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확실한 믿음으로 삶의 마지막 순간조차 기쁨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자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단 한 사람만이라도’라는 말은 제 삶과 이런 잡글을 이어가는 가장 큰 힘이랍니다.)
* 갈 길이 멀어 이야기가 좀 길어졌습니다.
* 두려움 - 뭐 저도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성서에 수많은 신의 명령들이 나오지요. 일테면 ‘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에서부터 ‘원수를 사랑하라’까지 무수한 신의 명령들이 있다는 말씀인데 그중에 제일 많이 나오는 신의 명령은 바로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것이랍니다. 뭐 약 360번 정도가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360번 – 바로 일 년 365일에 대응하는 숫자랍니다. 사람이란 매일매일 두려움의 연속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고나 할까요. 이즈음 제가 사는 미국의 내일에 대한 두려움도 그중 하나일 터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