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의 진격은 노동자에게 기회일까, 위기일까, 당최

by 당최서생

현대자동차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쏘아 올린 공은 자본시장에 거대한 축포를 터뜨렸고, 그 덕분에 현대차의 시가총액은 100조 원을 돌파하며 국내 주식 시장을 뒤흔들었지요. 하지만 저는 이 화려한 숫자의 잔치 너머에서 기계의 관절 소리에 묻힌 사람들의 숨소리를 듣습니다. 과연 이 기술의 진보가 우리 모두의 풍요를 약속하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자리를 지워내는 매끄러운 지우개인지 한번 고민해 봤습니다.


우리는 흔히 인공지능이 도구가 되어 우리를 도울 것이라 믿어왔지만, 제조업 현장에서 마주한 피지컬 AI의 실체는 그보다 훨씬 서늘합니다. IT나 게임 업계에서는 AI가 업무 효율을 높이는 보조 수단으로 쓰이며 고용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늘리는 결과도 낳았지만, 공장 라인에 선 아틀라스는 다릅니다. 연간 1억 3,000만 원에 달하는 사람 인건비와 비교해 유지비가 1,400만 원에 불과하고, 24시간 내내 지치지 않고 일하는 로봇의 등장은 노동자들에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당혹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로봇 1대가 3교대 근무 인원 3명의 몫을 해내며 생산성을 3배나 높인다는 분석은 자본가에겐 축복이겠지만, 현장의 노동자에겐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신호탄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거대한 물결을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 19세기 영국에서 기계를 파괴하며 저항했던 러다이트 운동이 결국 산업화의 파도를 막지 못했듯, 지금의 기술 혁신 역시 멈출 수 없는 흐름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로봇 도입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반값 자동차 시대를 열고, 이것이 새로운 수요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긍정적인 전망도 분명 존재합니다. 로봇 밀도가 높아질 때 고용률이 소폭 상승했다는 통계적 수치들은 우리의 막연한 공포가 과장된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결국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이 빚어낸 부의 편중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있습니다. 유럽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로봇세는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면서 줄어든 세수를 보완하고, 그 재원을 노동자의 재취업과 생계유지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으로 쓰자는 사려 깊은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기본사회 역시 생산 수단을 독점한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양극화의 위험을 직시하고, 대다수 국민이 일자리를 잃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가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절박한 호소로 읽힙니다. 인공지능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며 지치지 않고 일하는 세상은 피할 수 없는 미래이기에, 우리는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구명조끼를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합니다.


당최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다시 한번 묻습니다. 기술이 인간을 능가하는 성과를 낼 때, 우리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가치를 지켜내야 할까요? 기업의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그 혁신의 끝에 사람이 소외되지 않도록 로봇과 인간이 어떻게 공존의 길을 걸어갈지 고민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마주한 가장 시급한 숙제일 것입니다.


이런 변화의 파고 속에서, 여러분은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합의해야 할 공존의 규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