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방 한 칸을 가득 채우던 에니악의 덩치가 이제는 내 손 안의 컴퓨터, 스마트폰 한 대의 크기로 압축되었습니다. 초당 5천 번의 덧셈을 겨우 하던 진공관의 뭉치가 수십억 번의 연산을 해내는 칩셋으로 진화했습니다. 이토록 압도적인 성능 개량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화면 속의 로딩 바를 보며 입술을 깨물고, 최신형 스마트폰이 느리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곤 합니다. 당최 왜 이런 것일까요? 우리가 만족을 모르기 때문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가 기계에게 준 숙제가 기계의 성장 속도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일단 처리해야 할 데이터의 양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했습니다. 과거의 에니악이 수행하던 연산이 포탄의 궤적을 그리는 종이 한 장 분량의 숫자였다면, 오늘날 우리 손 안의 스마트폰이 소화해야 할 데이터는 고화질 영상과 고해상도 이미지, 그리고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전 세계의 정보들입니다. 파이프가 굵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안을 흐르는 데이터의 양이 이 보다 더 폭발적으로 증가했기에, 우리는 여전히 갈증을 느낍니다. 우리가 무심코 누르는 검색창 하나, SNS의 스크롤 한 번에도 에니악은 평생을 걸쳐도 다 하지 못할 막대한 양의 데이터가 핸드폰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소프트웨어의 복잡성이라는 굴레가 더해집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더 쉽고 빠르게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었지만, 그 대가로 소프트웨어는 점점 더 무겁고 방대해졌습니다. 한정된 자원을 쥐어짜며 최적화에 매달리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개발의 편의를 위해 수많은 기능을 덧대고 화려한 시각 효과를 입히는 데 집중합니다. 하드웨어가 열 배 빨라질 때 소프트웨어는 백 배 더 무거워진다는 워스의 법칙처럼, 우리의 기계는 그 무거워진 몸집을 지탱하느라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헉헉대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우리는 과거 보다 수억 배 빨라진 기계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속도는 우리가 만든 거대한 데이터와 복잡한 시스템에 의해 상쇄됩니다.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이 속도의 역설은 어쩌면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더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짊어지는 우리 인류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기계의 속도를 탓하기 전에 우리가 그 기계에 지운 짐이 과연 우리 삶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만들고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