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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light Apr 15. 2018

'그날바다'를 보고 전문가들의 위기를 묻다

[북앤톡]전문가들을 둘러싼 신뢰의 위기

얼마전 세월호 침몰의 미스터리를 다룬 그날 바다를 보신 분들은 비슷하게 느꼈겠지만 세월호는 왜 평소와 다른 항로를 선택했고, 정부는 왜 이런 내용을 의도적으로 감추려 한 듯한 행동을 했으냐는 것이다.


이건 사고가 났는데 제대로 수습을 하지 못해 정부가 욕을 먹었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날바다를 만든 김지영 감독은 수치과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사고 배경에 대한 정부 발표가 조작됐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다른 전문가들이 여기에 대해 제대로 반박할 수 있을런지...


전문가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라 하지만 지금도 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것 같다. 전문가로 불리는 이들이 사실관계가 아니라 이해관계에 복무하거나 두려움에 침묵하지 않고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을 포함해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로 불리는 이들이 많은 이들로부터 사실관계가 아니라 이해관계에 복무하거나 두려움에 침묵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 하루이틀된 일도 아닌데, 왠 호들갑이냐할지도 모르겠다. 


전문가들도 사람임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에는 100에 한두명이 이해관계를 거부하거나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나 아닌건 아니라고 했는데, 지금은 '지록위마'의 위력이 전문가들도 확실하게 접수한 것이 아닐까? 


지금보다 권력의 서슬이 훨씬 더 파랬던 80년대에도 아닌걸 아니라고 하는 전문가들과 소시민들의 명맥은 유지됐다. 박종철 사건이 세상이 제대로 알려진 것도 사실관계에 목을 맨 전문가와 평범한 공무원 덕분이었다. 

김형민 SBS PD가 쓴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에 있는 내용을 공유해 본다.


박종철의 사인을 확실히 밝혀야 하는 곳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였어. 치안본부장 이하 경찰의 고위 간부들이 국과수로 총출동했단다. 심상 쇼크사로 하자거나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하자는 등 각가지 사악한 시나리오들이 제시됐어. 심지어 치안본부장이 목욕이나 하라며 100만원 현금 다발을 담당자에게 건네기도 했지. 이 절체 절명의 순간, 박종철의 사인을 밝히는 임무를 맡은 이는 황적준이라는 법의학자였던다. 그 역시 고민을 거듭해, 눈질끈 감고 원래 폐에 병이 있었으며, 사인은 그것임이라고 써놓고 서명 한번 해버리면 상황이 정리될수 있었어. 부검이 끝나면 곧바로 시신을 화장터로 옮기도록 만반의 태세가 갖춰져 있었으니, 다른 의사가 시시늘 볼 틈도 없었지. 하지만 황적준 박사는 깊이 잠든 자기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역사적 결단을 하게돼. 정의의 편에 서서 감정서를 작성하겠다. 대한민국 역사는 이 결연한 의사의 증언으로 서서히 태풍권에 진입하기 시작했단다. 경찰이 물고문으로 한 대학생을 죽여버렸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진 거야.


영화 1987에서 유해진이 연기한 안유라는 교도관도 결정적 순간의 주역이다.


경찰들이 눈앞에서 경찰들이 무슨 영화속 조직 폭력배처럼 1억줄게, 입다물어 따위의 대사를 연출할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교도관들을 우리 식구로 믿었기 때문이었을거야. 그런데 교도관은 너무도 억울하게 죽어 간 대학생의 죽음 앞에서 그야말로 영웅적으로 경찰의 믿음을 배신해. 이 사실을 구치소에 갇혀 있던 재야 인사에게 털어놓은 거야. 자신이 감시하는 수용자에게 자신이 속한 국가기관으로부터 얻은 비밀을 털어놓는 교도관을 상상해보자. 그 마음은 어땠을까? 만약 발각이라도 된다면 자신에게 어떤일이 불어닥칠지 당연히 고민했을거야. 교도소 침투 간첩단의 일원으로 조작되어 대공분실에 끌려가 욕조에 머리 담근채 버그적 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분명히 그려보았을거야. 가족들에게 해가 미치면 어쩌니 하고 이맛살도 찌푸렸을 거야. 그러나 안유 보안 계정은 용기를 냈단다. 이럴수는 없어. 안유는 양심의 소리에 화답했고 스스로를 파멸시킬수도 있는 비밀을 누설함으로써, 역사의 물꼬를 텄어. 


 '4차산업혁명시대, 전문직의 미래'라는 책을 보면 전문가라는 타이틀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붙는다. 


"우리 사회는 전문직이 비용을 감당할만 하고, 접근 가능하며 최신 정보에 근거하고 확신을 주며 신뢰할만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그리고 이때 적용되어야할 전문성, 경험, 판단력을 지녔다고 인정한다. 또한 전문직이 자기 지식과 방식을 관리하고 갱신하며 구성원을 훈련시키고 자기 업무의 질을 관장하는 기준을 설정하고 적용할 것이며, 자격을 적절하게 충족하는 사람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언제나 정직하고 성실하게 자기 이익보다는 고객의 이익을 우선하여 행동할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 대가로 우리는 전문직이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광범위한 서비스와 행위를 독점할 권리를 부여하고, 높은 보수를 지불하며, 독립성, 자율권, 자기결정권을 수여하고 존경을 보내고 지위를 부여하며 전문직에게 신뢰를 표한다."


30년전과 비교해 지금 전문가 집단에 대한 신뢰는 강화됐다고 볼 수 있을까?  정확한 수치로 제시할 수 없지만 주변을 보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인공지능의 시대, 전문가들의 일자리도 위기라는 말이 넘쳐나지만, 전문가들이 직면한 진짜 위기는 인공지능에 의해 존재감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말을 대중이 믿어주지 않는 신뢰의 위기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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