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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light Dec 17. 2016

혁신을 찬양하는 시대,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의 경고

인텔: 끝나지 않은 도전과 혁신을 읽고

'끝나지 않은 도전과 혁신'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인텔'


회사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40년 넘는 인텔 성장사를 다룬다  요약본과는 거리가 멀다. 


600페이지 넘는 부피다. 다 읽기까지 품은 좀 들었지만 기자 생활 시작부터 지금까지 보고 듣고 느껴왔던 인텔이라는 회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인텔 공동 창업자인 밥 노이스와 고든 무어에 대해서는 사실 아는게 별로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많은 디테일을 얻게 됐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인텔의 벤처 정신을 부각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저자는 많은 역경에도 인텔이 쓰러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를 밥 노이스, 고든 무어, 앤디 그로브로 대표되는 창업 3인방의 인물평에 담아 공유한다. 


오늘의 인텔은 밥 노이스가 세우고 고든 무어가 가꾸고, 앤디 그로브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웠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이중 고든 무어는 무어의 법칙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인텔의 역사는 밥도체 집적 회로의 성능은 18개월마다 2배 늘어나고 가격은 거꾸로 반으로 떨어진다는 무어의 법칙을 따르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것으로 요약된다. 책을 읽고 나니 무어의 법칙은 인텔의 철학을 상징하는 것 같다. 


하다보니 무어의 법칙대로 굴러가더라가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만  먹고 사는 것을 넘어 혁신 기업으로서의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인텔의 절박함이 무어의 법칙에는 담겨 있다.


무어의 법칙에서 벗어나면 인텔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무어의 법칙에서 뒤쳐지면 인텔은 고만고만한 회사가 될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어의 법칙보다 앞서 달리는 것은 괜찮을까? 너무 앞서려는 것은 뒤쳐지는 것보다 위험한 일일 수 있다.



책에 따르면  고든 무어가 자신이 발견한 무어의 법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배운 교훈은 뒤쳐지는 것보다 위험한 것이 너무 앞서가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최근 벌어진 갤럭시노트7 사태도 애플과의 경쟁에서 판을 뒤집으려는 삼성전자의 지나친 의욕이 부른 결과라는 해석이 많은 것을 보면 고든 무어의 메시지는 혁신이 찬양받는 요즘,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인텔'의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혁신의 속도에서 뒤쳐진다고 해도 여전히 규모가 작은 사업을 벌이는 틈새 시장이나 고성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응용 제품에 오래된 기술을 사용한다. 반면에 경쟁자를 따돌리려고 한번에 무어의 법칙을 넘어서 너무 많은 것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는 엄청난 비용이 들었고 결과는 언제나 재앙이었다.  애플이 아이팟에 기존에 쓰인 작은 크기의 디스크 드라이브를 플래시 메모리로 교체하려 했던 시도가 가장 성공에 가까운 사례일 것이다. 

아마도 자만 때문에 무어의 법칙을 한번에 뛰어넘으려던 시도 중 가장 유명한 사례가 트릴로지시스템즈일 것이다. 이 회사는 정통성이 있었다. 이 회사는 유명한 컴퓨터 과학자 진 앰더힐이 세웠다. 진 앰더힐은 IBM에 재직 시 컴퓨터 역사에서 가장 성공이었던 360 모델을 설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진 앰더힐은 IBM을 떠나 앰더힐 코퍼레이션을 세우고 혁신 방식인 플러그가 호환되는 메인컴퓨터를 개발하여  IBM의 370 모델을 대체한다. 이 방식은 지금도 여전히 주변 기기와 소프트웨어에 사용되는 방식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이후 진 앰더힐은 마이크로 프로세서 개발에 뛰어든다. 여기서 사단이 벌어진다.


그리스 신화의 비극과 같이 신은 거만해 보이며 무어의 법칙을 무시한 앰더힐의 시도에 인과응보처럼 벌을 내리려는 듯 했다. 트릴로지 칩을 자동하면 냉각 장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엄청난 집적을 보이던 트랜지스터는 너무 많은 열을 냈다. 회사가 사라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트릴로지 건물은 실리콘밸리의 자만심에 보내는 잊혀지지 않는 경고장이 된다.

고든 무어가 인텔을 이끌던 시절, 인텔 역시 과유불급의 덫에 걸려든다.  iAPX  432이라는 혁신적인 마이크로 프로세서 기술 개발과 관련해서였다.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시점에서 경쟁에 뛰어드는 회사가 옴몸에 힘을 가득 주고 기술에 자신감이 지나치게 넘쳤다는 사실은 분명히 이 회사가 아킬레스건을 가졌음을 뜻했다.인텔은 진 앰더힐이 했듯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공상을 쫓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 세상에 iPAX 432와 같은 성능의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만들려면 십여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 iPAX 432 사업은 1974년말에 시작되었고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 칩의 전체 설계는 훌륭했다.그러나 당시 인텔의 실리콘 제조 기술 수준으로 생산하기에는 속도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렸다.


마흔을 훌쩍 넘은 인텔은 많은 이들에게 실리콘밸리의 아이콘과는 거리가 있는 회사로 비춰진다. 아이돌이 아니라 '아재'에 가까워 보인다.


PC가 IT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윈텔 제국으로 불리우며 생태계를 들었다놨다 했던 위상도 약해졌다. 모바일 세상에서 인텔이라는 이름이 주는 중량감은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혁신 기업으로 존재해왔던 인텔의 역사를 감안하면 지금 인텔이 갖는 존재감은 무어의 법칙을 세운 고든무어에게는 무척이나 불편하게 보일 것이다.


지금의 인텔에게 무어의 법칙이 어떤 의미로 통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변하지 않은 건 인텔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경쟁상대들이다. 


과거에는 IBM이나 페어차일드, TI 등이 인텔을 공격했다면 지금은 삼성전자나 ARM이 반도체의 황제 인텔의 자리를 여기저기에서 흔들고 있다. 인텔의 미래는 두 회사와의 싸움에 따른 결과에 의해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PC 시대까지는 속도와 가격을 중시하는 무어의 법칙은 필승카드였을 수 있다. 하지만 전력 소모량 등 PC와는 다른 다른 가치가 중요시되는 모바일 환경에서 무어의 법칙은 거꾸로 걸림돌일 수 있다. 


인텔에게는 오리지널이 아니라 21세기에 맞춰 개정된 무어의 법칙이 필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게 무엇인지 600페이지가 넘는 책 인텔에선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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