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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light May 24. 2018

1명이 10만 먹인다? 기초과학에 천재론의 자리는 없다

[북앤톡]공부논쟁에 나온 김대식 교수의 주장-3

천재 한명이 10만명을 먹여살린다는 누구의 말은  IT세상에선 여전히 의미있는 메시지로 통한다.


정부가 산업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어중이 떠중이 말고 '될만한 회사'를 확실하게 밀어주는게 효율적이라는 훈수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에 초점을 맞춘 이같는 논리는 기초과학 분야에선 얼토당토 않고, 허무맹랑한 얘기라는 것이 서울대 물리학과 김대식 교수의 주장이다.



김대식 교수와 그의 동생인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공부를 주제로 한국 사회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는 책 공부 논쟁을 보면 과학계의 천재론은 엘리트주의에서 나온 비정상적인 결과물일 뿐이다.


일본은 노벨상 많이 받는데, 한국은 못받는 이유, 이공계 위기론은 허구다와 마찬가지로 김대식 교수는 과학계의 엘리트주의에 대해서도 특유의 직격탄을 날린다.

천재들이 과학계를 이끈다는건 증명이 안된 신화에요. 뭔가 엄청난걸 발명한 사람 중에서 학교에서 1등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시험 잘 보는 학생은 남들이 주는 문제를 푸는데까지는 해낼수가 없어요. 그러나 새로운 발견 혹은 발명을 하거나 새로운 이론을 만든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라나는 지금까지 시험 잘 치는 사람들에게만 과학을 맡겼어요. 그 결과로 새로운 이론, 새로운 발견 하나를 만들어내지 못했어요. 지금이라도 거대한 전환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계속 망하는 거에요.

그는  엘리트 위주의 R&D 비용 지원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엘리트주의가 과학기술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주장까지 폈다.


과학은 소수 엘리트들이 이끌어간다고 누가 그래요? 근거없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과학은 엘리트주의 때문에 발전을 못해요. 예를 들면 이공계 연구비를 지원하는 데도 엘리트주의가 작동됩니다. 잘하는 사람에게 매년 수십억을 몰아줍니다. 그돈은 이미 대개 연구비를 너무 많이 받아서 배가 터질 지경인 몇몇 대학 연구팀에 집중돼요. BK사업을 하면 물리 분야에서 여섯개 학교가 선정이 돼요.서울대, 연대, 고대, 포항공대, 카이스트까지 다섯 학교가 하나씩 가져가고 여기에 한양대, 성균관대, 서강대에서 하나쯤이 추가되는게 보통이죠. 정확히 우리 학벌 서열 구조를 따라가는 겁니다. 이게 잘못하면 돈낭비가 되기 쉽습니다. 자기 집도 짓지 못하면서 돈만 쓰는 거에요. 기초 연구 분야는 미국이든 유럽이든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평준화이고, 나눠 먹기에요. 독일의 경우 정교수든 부교수든 상관없이 누가 어떤 프로포절을 써도 1년에 1억 정도 씩은 배정 받아요. 10억짜리 연구를 한개 돌리는 대신에 1억짜리 연구를 열개 돌리는게 낫다는걸 알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연구원처럼 어떤 연구팀에 100억씩 10년간 천억을 주는 나라는 별로 없습니다. 물론 저도 지금 그걸 받으려고 엄청 노력중입니다만...

그가 이같이 주장하는 이유는 기초과학과 선택과 집중은 어울리지 않는 궁합이라는 판단에서다. 사업과 마찬가지로 이동네도 운칠기삼의 법칙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으로는 안되는게 기초과학이기 때문이에요. 기초과학은 일종의 운싸움입니다. 좋은 발견을 하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운이 필요해요. 이건 마치 복권을 사는 것과 비슷해요. 복권은 무조건 많이 사는게 유리해요.
기초과학에서는 뛰어난 학자 한명에게 100억을 준다고 해서 반드시 엄청난 결과가 나오리란 보장이 없어요. 100억을 받아도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100배로 늘어나는게 아니거든요. 그보다는 1억을 100명에게 나눠주는 것이 결과를 내는데 유리합니다. 확률상 최소한 수십배가 높아지는거죠. 1년에 1억 정도면 누구라도 실험실을 나름대로 운용해볼 수 있는 규모입니다. 이렇게 실험실을 운용하게 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누군가가 로또에 당첨되기를 기다리는 거죠. 기초 과학은 그 방향이 맞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자꾸 한명에게 돈이 집중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엘리트주의의 산물입니다.
한명의 천재를 만들려면 먼저 만명을 굶어 죽지 않게 해야 하는 겁니다. 기초과학 분야는 만명이 굶어죽지 않고 각자 열심히 하는 가운데 뭔가 큰게 터져 나와요. 그게 저의 믿음입니다. 공부 잘하는 애들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고 그 한명에게 몰아줘야 한다는게 엘리트주의자들의 믿음이고요. 엘리트주의자들은 그런 잘못된 믿음의 기초 위에 제도를 만들어요. 스티브 잡스를 만들고 싶다면서 공부 잘하는 애들 중에서 잡스를 찾으려면 그게 되겠습니까? 뭐가 문제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수천억씩 돈을 굴리며 나라를 망쳐머고 있어요
기초과학은 운좋은 사람을 아무도 따라가지 못하는 특성이 있어요. 기초과학의 특성 자체가 세런디피티에 있기 때문입니다. 발견의 반 이상이 세런디피티에 의한 거에요. 통계적으로 입증되기는 어렵지만 우연을 통해 발견한게 80% 되고, 똑똑해서 발견한게 20% 정도 될 겁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연성에 투자를 해야죠. 우연성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들수도 있겠지만 우연성에 투자하면 부수적인 효과를 노리게 됩니다.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것은 교육에 투자하는 겁니다. 기초과학에서는 놀라운 발견을 할 확률 못지 않게 교육 자체가 중요하니까요. 독일도 일본도 그래서 기초과학분야에 폭넓은 투자를 하는 겁니다. 한두명에게 돈을 쏟아붓는 엘리트 과학이 아니라요. 그런 엘리티주의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평준화 이전의 경기고 출신들이에요. 자기만 망하지 않고 잘못된 믿음으로 나라 전체를 망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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