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가재걸음을 읽고
도날드 트럼프.
전례를 찾기 힘든 국가 수반이라는 평가들이 많지만 그대로 비슷한 사람을 꼽는다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도 유력한 후보가 아닐까 싶다.
미디어 재벌인데다 AC밀란 구단주이기도 한(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베를루스코니는 개인의 이익 관점에서 국가의 이익을 해석한 정치인이었다.
그가 이탈리아 총리가 되었을 때, 그리고 되고 난후 지식인들 사이에선 나라 걱정하는 소리들이 쏟아졌다.
지금은 고인된 움베르토 에코도 베블루스 코니의 등장을 우려와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지식인 중 하나였다.
그의 칼럼집 '가재걸음: 세계는 왜 뒷걸음치는 가'를 보면 베를루스코니는 유럽 선진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유형의 지도자였다. '돌아이'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이런 사람이 3번이나 이탈리아 총리를 역임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움베르토 에코는 그만 놔두면 알아서 몰락할 것이라는 앵글로 베를루스코니를 바라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베를루스코니는 정치가가 아니라 자기 진영의 불안정한 균형을 유지하려고만 하는 기업의 대표이기에 자신이 어제한 말과 오늘 한말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정치 외교적인 경험이 없기에 입을 다물어야할 때 말을 하고 그 다음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다른 나라 장관들에게 자신의 아내에 대해 저속한 농담을 할 정도로 대중의 관심과 자신의 사생활을 구별하지 못하는 등 말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이런식의 베를루스코니는 풍자거리에 한몫하고 있으며, 때때로 그의 반대자들은 그가 모든 균형 감각을 읽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파멸의 길로 치닫고 있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반면 나는 베를루스코니가 포스트모던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정치인이라는 시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베를루스코니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취하면서 고도의 정신력과 지능적인 통제력을 증명하는 빈틈없고 교묘하고, 복잡한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트럼프에 대해서도. 돌아이와 치밀한 장사꾼으로 보는 두가지 시선이 공조한다. 베를루스코니를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정치인으로 봤던 움베르토 에코가 트럼프는 어떻게 평가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엔 그는 트럼프도 베를루스코니과로 바라봤을 것 같다. 그가 분석한 베를루스코니 스타일은 트럼프와 대단히 유사해 보인다.
"그는 자기의 지지자들에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혹은 중립적인 것이든 자극적으로 보이는 약속들을 해야 한다. 그는 하루가 멀다하고 자극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을수록 좋다. 이것은 그가 신문의 1면을 장식하고 텔레비전의 첫 뉴스에 등장하게끔 해서 언제나 대중적인 관심의 중심에 있게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이러한 도발은 반대편이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으며,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매일 반대편의 극심한 반발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베를루스코니가 그의 유권자들에게 박해의 희생자로 보이게 한다.이러한 피해주의는 베를루스코니가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식인 승리주의에 모순되어 보이나, 핵심전략이 전략이다."
베를루스코니가 트럼프와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미디어를 정치에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다. 언론과 대립각을 세우는 트럼프와 달리 그는 주류 미디어 기업 오너라는 지위를 앞세워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변방에 묶어둘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이것이 그를 3번씩이나 총리에 오르게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베를루스코니가 가진 힘의 원천인 미디어 제국을 허물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칼럼을 통해 제안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해서도 뜻있는 이들의 불매운동이 약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언론과는 척을 지고 사는 듯한 트럼프에겐 움베르토 에코의 대안은 먹혀들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의 트럼프에 대해 어떤 글을 썼을까?
언론과 싸우고 있는데도 트럼프가 추진하려는 이민 정책을 45%나 지지한다는 사실앞에서 에코도 꽤나 답답해하지 않았을까? 45%를 비판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수 없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