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까지 세계 휴대폰 시장을 들었다 놨다 했던 노키아의 몰락은 한편의 드라마다.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고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내세워 생태계를 키워가는 것을 알면서도 당한 케이스다.
노키아는 처음에는 아이폰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판이 바뀌는 것을 보고 나름 진지하게 대응책을 마련했지만 아무 힘을 쓸 수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심비안과 미고 등 자체 플랫폼을 앞세워 애플과 구글에 맞설 생태계를 구축해 보려 했지만 헛수고일 뿐이었다.
결국 자체 플랫폼을 전략을 포기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 윈도폰으로 승부수를 던졌지만 그것 마저도 헛스윙이었다. 노키아 휴대폰 사업부는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에 헐값(?)에 매각되는 운명을 맺었다.
당시 관련 노키아 이슈를 보면서 돼지도 않은 자체 플랫폼 전략을 계속 고수했는지, 또 왜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윈도폰으로 분위기 반전 카드로 뽑아 들었는지가 궁금했는데, 노키아 이사회 의장인 리스토 실라스마가 쓴 책 '노키아의 변신'에 관련 내용이 담겨 있어 일부를 공유해 볼까 한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노키아 CEO인 스티븐 엘롭이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이라 노키아가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책을 보니 스티븐 엘롭의 출신 성분이 아예 영향을 안 미쳤다고 볼 수는 없지만 결정적인 키는 아니었던 것 같다. 저자에 따르면 노키아는 안드로이드를 우선 순위로 놓고 나름 검토 및 구글과 논의도 진행한 뒤, 안드로이드 보다는 윈도폰이 노키아가 취할 전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안드로이드는 노키아를 대신할 미래로서 분명한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구글과 파트너십을 맺으면 안드로이드 생태계 전반으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다. 자체 운영체제를 구축하는데 깊이 빠져 허우적거리기 보다 기능 및 제품의 통합과 분화에 더욱 초점을 맞추도록 도와주면 기술적 능력을 향상하고 경영진에게 시간적, 금전적 여력을 제공할 수 있다. 우리는 심지어 안드로이드 로드맵에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우리의 전문 지식 및 기술을 활용하고 우리 자신을 다른 제조 업체와 차별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터무니 없는 상황만은 아니었다.
마지막이지만 앞에 열거한 것보다 결코 중요성이 덜하지 않은 것으로 구글과 협력하면 새로운 수입원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만약 우리가 구글의 광고 수입을 확실하게 늘려주는 어떤 일을 도모한다면 그 일부를 우리 몫으로 챙길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노키아가 모종의 재정적 여력을 확보하는데 유용할 것이다. 얼마나 고무적인 구상인가.
현실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보다 마신 꼴이었다.
구글은 상황을 우리처럼 보지 않았다. 미고 포트폴리오 재앙이 모습을 드러낸 2011년 1월 열린 이사회 회의에서 스티븐 엘롭(당시 노키아 CEO)은 노키아가 이전 몇달 동안 구글을 수차례 접촉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켰다. 구글의 반응을 보면 알수 있었다. 그들이 자기네 사업이 현재 탄력을 받고 있음을 느끼고 증가 일로인 시장 점유율을 보면서 안드로이드가 최대 규모의 플랫폼 자리를 차지할게 분명하다고 믿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그들은 이미 승리한 만큼 노키아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안드로이드 생태계에 합류할 경우 노키아 입장에서 바라본 향후 전망 역시 암울했다. 우리는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 그저 여러 가신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는 다수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할 뿐 아니라 그 플랫폼에서 가장 경험이 적은 참가자 신세다. 안드로이드폰의 최대 제조 업체 삼성은 안드로이드 플랫폼에 그때까지 2년간 공을 들여왔다. 우리는 2011년 말이나 2012년 초가 되어야 안드로이드 기기를 출시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되면 삼성은 저만큼 훌쩍 앞서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물량 면에서도 삼성에 크게 뒤질 터였다. 우리는 별도의 안드로이드 로엔드 버전에 참여하는데 특히 관심이 많았다. 그 프로젝트에서 독점적으로 유리한 출발을 하는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구글은 우리를 약간이라도 유리하게 대접하는데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구글은 이미 구글 맵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나브텍을 매각해야 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페이스북을 비롯한 다른 유력 주자들이 나브텍의 미래 고객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따라서 그처럼 소중한 자산을 매각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우리도 구글도 시간이 구글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논의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구글은 더욱 강해지고 우리는 점점 더 약해질 것이다. 그들은 그 어떤 것도 양보하지 않았으며 우리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다. 미고는 난관에 부딪쳤다. 물론 심비안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안드로이드 옵션 역시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그들의 윈도폰이 남았다.
결과적으로 윈도폰에 풀베팅한 카드 역시 헛발질이었다.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 간 윈도폰 동맹은 적지 않은 우여 곡절을 겪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에 별도의 글로 정리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