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포스와 슬랙이 합쳐진다. 자연스럽게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경쟁에 관심이 모아진다. 인물 측면에서 봐도 세일즈포스의 슬랙 인수는 흥미로운 케이스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CEO와 스튜어트 버터필드 슬랙 CEO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버터필드의 경우 내놓고 마이크로소프트를 까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개인적으로는 특유의 말발 소유자인 마크 베니오프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어떤 수사학을 사용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제대로 말발을 보여준다면 매체들에서도 외면하기 어렵지 싶다.
마크 베니오프는 창업이후 말발을 마케팅에 절묘하게 활용한 경영자다. 앨 라마단, 데이브 피터슨, 크리스토퍼 록헤드, 케빈 매이나가 함께 쓴 카테고리 킹을 보면 마크 베니오프가 말로 어떻게 경쟁사를 요리했는지 볼 수 있다.
카테고리 킹은 조금 더 나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새로운 카테고리를 찾는 회사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고, 고수익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하는 책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새로운 카테고리의 발굴은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찾는 데서 시작된다.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짚어내는 기업이 그 카테고리를 정의하고 지배하는 기업이 된다. 오늘날 경쟁에서 승리하는 기업은 해결 방안만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무엇인지도 홍보하는 기업이다. 카테고리는 잠재 고객의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문제를 입력한다. 고객은 기업이 정의한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한 다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찾는다.
카테고리를 발굴했다는 것만으로 판을 흔들기는 쉽지 않다. 카테고리의 존재감을 키우는 마케팅적인 역량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클라우드 기반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 세일즈포스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베니오프는 새로운 카테고리 마케팅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마크 베니오프는 글로벌 IT업계 CEO들 중에서 특유의 입담을 자랑하고 필요에 따라 독설도 서슴치 않는데, 저자들은 나름 전략적인 결과로도 보는 모습이다.
베니오프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운명에 맡기지 않았다. 새로운 제품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저절로 팔릴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투자자를 유치하고 인재를 채용하고 고객을 얻기 위해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즉 시장을 컨디셔닝 해야 했다.
1999년 베니오프는 여전히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몇몇의 코딩 전문가만 데리고 사업을 운영했다. 어느 날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 돈 클라크를 자신의 아파트로 초대한 베니오프는 세일즈포스의 문제 해결책이 무엇인가 보다는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인터뷰를 나눴다. 1999년 7월 21일 월스트리트저널은 클라크의 기사 소프트웨어의 온라인화가 IT산업을 뒤흔들다를 전면에 실었다.
베니오프는 이렇게 시장 컨디셔닝의 첫 단추를 끼웠다. 그는 이후 각종 언론 인터뷰 및 소프트웨어어의 종말이라는 주제 아래 런칭 파티를 개최하며 홍보 활동을 이어갔다. 소프트웨어의 종말은 세일즈포스의 좌우명이 되다시피 했고 영화 고스트버스터즈의 유령 금지 표시를 본뜬 소프트웨어는 필요 없다라는 회사 로고도 등장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좌우명이나 로고에 세일즈포스라는 기업명은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베니오프의 우선순위는 신규 카테고리를 창조하는 것으로 오직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정의하는데 모든 것의 초점을 맞췄다.
그는 창의력을 발휘해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 수단으로 시벨을 선택했다. 베니오프가 정의하고자 하는 문제를 가장 극명에서 드러내는 것이 시벨의 소프트웨어였으므로 세일즈포스를 반 시벨 입장으로 포지셔닝했다. 그는 세일즈포스가 시벨의 요새를 침공하는 해적으로 여겨지기를 원했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시 당국으로부터 소프트웨어 반대 시위에 대한 허가를 얻어냈습니다." 베니오프는 몇 년 후 뉴욕타임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소프트웨어가 미국 경제를 망치고 있으며, 버려지는 CD-ROM으로 인해 쓰레기가 늘고 있다고 주장했고 시 당국은 우리의 시위를 허가했지요.
말 한마디가 정치적이고 조심스러운 다른 기업 CEO들과 달리 베니오프는 세일즈포스보다 몇 배 더 큰 경쟁기업, 특히 시벨시스템과 SAP를 공공연한 조롱거리로 삼았다. 이 모든 움직임은 새로운 카테고리의 기반을 닦고 세일즈포스를 문제 해결사이자 세상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로 포지셔닝하려는 베니오프의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베니오프의 행동과 말에 시벨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판은 베니오프가 짠 프레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셈이다.
시벨은 비록 세일즈포스가 시장 점유율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아도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베니오프는 이렇게 말했다. "시벨은 스스로를 방어하고 세일즈포스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언론은 두 회사의 대립을 흥미로운 사건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세일즈포스에 더 큰 정당성을 부여했지요. 이쯤되면 우리가 이긴 거나 다름 없었죠. 세일즈포스가 이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일단 사람들은 한번 문제를 인식하면 그 문제를 다시 모르는 척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벨은 순식간에 문젯거리로 여겨졌고 세일즈포스만이 유일한 카테고리 킹이라는 인식을 만들어냈다.
베니오프는 세일즈포스에 강력한 이미지와 페르소나를 부여하는데에도 성공했다. 세일즈포스는는 해적, 급진적인 선지자, 아웃사이더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리고 고객과 개발자들이 세일즈포스의 관점에 공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 베니오프가 세일즈포스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종목 코드로 CRM을 선정한 것은 기존 CRM 업체를 향한 기발한 모욕이기도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일즈포스가 시벨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일즈포스는 시벨이 어울릴 수 없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을 뿐이었다. 새로운 카테고리가 기존 카테고리의 문제점을 부각시켰으므로 시벨의 고객은 새로운 카테고리로 이동했다. 2005년 9월 오라클은 만신창이가 된 시벨을 58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제 CRM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신 클라우드 기반의 기업 솔루션이 당연한 선택이 되었다. 베니오프는 낯설고 새로운 존재를 대세로 만들었다. 세일즈포스는 우리 시대의 가장 훌륭한 카테고리 킹으로 우뚝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