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이름 좀 있다고 하는 기업들 보도자료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사회에 좋은 일을 하겠다는 메시지가 많은데, 기존에 있던 CSR(기업의사회적 책임)과 구체적으로 뭐가 다른지 구경하는 입장에선 헷갈리는 게 사실이다.
조신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가 쓴 넥스트 자본주의, ESG에 따르면 ESG는 출발 지점과 추구하는 목표가 CSR과는 차이가 있다.
ESG는 투자자로부터 시작된다. 기후 변화 등 지구 차원의 문제들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이대로 가면 위기를 피할 수 없다고 보는 글로벌 대형 투자사들 늘고 있고, 지속적인 투자와 수익을 위해 기업들과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ESG가 화두로 부상했다는 게 저자 설명이다.
단기 수익 위주 경영과는 충돌할 수 있지만 ESG는 궁극적으로 전 지구적 위기에 직면한 지금 시대를 맞아 투자자들이 꺼내놓은 중장기 수익 극대화 전략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하지만 CSR은 다르다.
저자에 따르면 CSR과 ESG의 차이는 5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CSR은 투자자가 아닌 기업 행동에 초점을 둔다. 즉 투자자가 경영자에게 CSR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 단체, 소비자 단체, 노조 등 이해관계자들이 기업 시민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인격체로서의 기업을 설정하고 사회적 책무를 부여하며 생겼다. ESG 투자는 투자자가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기업의 ESG 활동을 장려하면서 시작된다. 그에 비해 CSR에는 투자자의 역할이 없다.
둘째 CSR 활동을 수행하면 일반적으로 비용이 증가하고 그에 상응해 이윤이 감소한다. 물론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CSR 활동을 한다면 단기 이윤이 증가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는 공부를 잘하면 성적이 좋을 것이다는 식의 하나 마나 한 이야기나 다름 없다.
셋째 CSR 활동은 장기적인 수익률 달성을 명시적 목표로 삼고 있는 것도 아니다. ESG 투자의 경우 장기적인 수익률 상승을 가져온다고 투자자들이 믿고 기업 ESG 활동을 의도적으로 장려하는데 비해 CSR 활동에서는 이해관계자, 정부, 기업 등 관련자들이 장기적 이윤 증가를 궁극적 목표로 삼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단기 이윤을 희생하면서까지 CSR 활동을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넷째 최근 CSR보다 지속 가능 경영을 강조하고 그 활동을 정리한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CSR에서 지속 가능 경영으로의 변화가 단순히 용어 변화인지, 아니면 기업 활동의 본질적인 변화인지는 기업마다 사정이 다를 것이고 쉽게 판단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만약 단순한 용어 변화라면 이는 CSR과 다를 게 없고 본질적인 변화라면 지속 가능 경영 대신 ESG 활동 또는 ESG 경영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다섯째 사회학에서는 CSR을 사회적 경제의 한 범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경제 체제로서 시장과 정부가 아닌 제3 섹터로서의 사회적 경제에 관심이 있다. 시장 경제체제가 지금까지 사회적 가치를 소홀히 했다고 보기 때문에 기업이나 시장이 사회적 가치 달성에 핵심적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기업들이여, 지금까지 나쁜 짓을 많이 해왔으니 이제부터라도 좀 착하게 살아라라고 주문하는 차원에서 CSR이나 사회 공헌 활동을 강조할 뿐이다.
ESG를 둘러싼 오해에 대해 저자의 지적은 계속된다.
ESG투자에 대해 착한 투자자와 선한 기업의 만남이라는 식으로 설명한 글을 종종 보게 되는데, 이는 본질을 오도하는 표현이다. 흔히 착한이라는 수식어는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남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그런데 ESG 투자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 물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뿐 아니라 가능하면 남에게도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하려고 애를 쓴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무엇보다 ESG 투자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현명하다거나 똑똑하다고는 할 수 있을 지언정 착하다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사회 제도의 차원이라면 개인적인 선의는 그리 순순히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그 선의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그들의 인센티브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인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ESG 투자는 자기 이익을 챙기는 똑똑한 투자자와 기업의 만남이라고 설명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 듯 하다.
요즘 국내 기업들은 ESG 관련 보도자료를 많이 배포한다. 하지만 아직은 말은 많은데, 실행 파일은 많지 않아 보인다.
최근에 ESG 경영을 도입하는 기업들은 대개 이사회에 ESG 위원회를 신설하고 기존의 CSR 경영실을 ESG 경영실로 개편하고 있다. 기업에 따라서는 환경 또는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몇가지 실행 계획을 발표하기도 하다. 그러나 ESG 경영 도입을 계기로 기업 목표를 ESG 원칙에 맞춰 바꾸고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마련했다는 이야기를 별로 들리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ESG 활동에 돌입한 기업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개는 아직 무늬만 ESG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