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러닝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끈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는 AI의 잠재력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많이 해왔다. 2016년에는 한 컨퍼런스에서 5년 안에 딥러닝이 방사선 전문가들보다 일을 더 잘할 것이라는 대담한 전망을 공유했다.
MRI나 CT 스캔 이미지를 읽는 능력은 딥러닝이 사람보다 낫기 때문에, 방사선 전문가를 교육하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는 논리까지 펼쳤다. 물론 그의 대담한 전망은 아직은 현실화됐다고 보기는 많이 어렵다.
제프리 힌턴이 AI 발전에 대해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일부 기술들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도 보인다. 회의적이었다가 긍정론으로 생각을 바꾼 기술도 있다. 강화학습이 대표적이다.
제프리 힌턴은 처음에는 강화학습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회의적이었지만 이후 로봇 개발 스타트업 코베리언트를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뉴욕타임스 기자 케이드 메츠가 쓴 AI 메이커스에 이와 관련한 스토리가 담겨 있다.
"한 달 뒤 튜링상 수상 기념으로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한 강연회에서 힌턴은 머신러닝의 등장 및 미래를 설명했다. 힌턴은 머신러닝이 작동되는 다양한 방식을 소개하면서 2가지 학습 알고리즘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3가지인데, 세 번째 방식은 효과가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어서요. 바로 강화학습입니다."라고 말했다. 힌턴은 나아가서 "강화학습에 목숨을 건 곳이 있어요. 바로 딥마인드입니다."라고 말했다. 힌턴은 데미스 하사미스와 딥마인드가 인공일반지능(AGI)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은 강화학습을 신뢰하지 않았다. 현실 속 작업 수행을 하는데 지나치게 방대한 데이터와 처리 성능이 필요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은 피터 어빌이 설립한 코베리언트로 인해 바뀌게 되는데 내막은 대충 아래와 같다. 코베리언트는 강화학습 기술을 활용해 로봇이 하는 작업 정확도를 크게 끌어올린 것 같다.
피터 어빌이 힌턴에게 코베리언트에 대한 투자를 요청한 때가 바로 그해였다. 강화학습으로 개발된 어빌의 로봇을 목격한 힌턴은 인공지능 연구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바꿨다. 베를린의 물류 창고에서 코베리언트가 개발한 시스템을 도입했을 때는 로봇 공학 분야에서 "알파고 사건에 맞먹는 순간"이라고 표현하며 "난 늘 강화학습에 회의적이었어요.그 방식은 엄청난 양의 연산을 요하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우리가 이제 그런 능력을 갖춘 것 같군요"라고 말했다.
수많은 연구자와 사업가가 아마존과 같은 소매 업체의 물류센터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한 2019년, 시장은 피킹 로봇 스타트업이 넘쳐났다. 그중 일부는 구글 브레인이나 오픈AI에서 개발 중인 딥러닝 기술을 받아들였다. 어빌의 회사 코베리언트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이 회사는 훨씬 광범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 중이었다. 그런데 아마존 로봇 경진 대회 이후 2년 만에 로봇 제조 업체 ABB에서 또 하나의 경진대회를 개최했다. 원래 어빌과 그의 동료들은 실제 피킹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대회 참가가 가능할 것인지 의문을 품었었다. 하지만 그들의 새 시스템은 학습능력이 있었다. 그들은 며칠에 걸쳐 시스템에 방대한 새 데이터 훈련을 실시했다. ABB측이 버클리에 있는 코베리언트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는 그들의 로봇 팔이 어떤 과제든 해결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인간보다 더 능숙한 수준에 도달했다. 어쩌다 곰 젤리 봉지를 단 1회 떨어뜨린 게 유일한 실수였다.
그해 가을 한 독일 전자제품 소매 업체가 어빌의 기술을 베를린 교외 자사 물류 창고에 도입했다. 그곳에서 어빌의 로봇은 파란 상자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그 상장에 담긴 스위치, 콘센트 등 전자제품을 골라내고 분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코베리언트의 로봇은 1만 종이 넘은 부품을 99% 이상의 정확도로 골라내서 분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베리언트 때문에 힌턴이 AGI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까지 바꾼 건 아니었다. 이후에도 그는 AGI에 대한 회의론을 계속 유지했다. 와이어드 초대 편집장이자 미래학자인 케빈 켈리가 AGI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점도 엿보인다.
힌턴은 AGI가 너무 거창한 과업이라 가까운 장래에 문제가 해결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저한테 로봇 외과 의사가 있다고 해보죠. 제 로봇이 엄청난 양의 의학 및 수술 지식에 통달해야 한다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제 로봇 의사가 어째서 야구 점수까지 알아야 하는지 전 잘 모르겠어요 왜 제 로봇이 범용 지식을 갖춰야 합니까? 우리를 도울 기계를 만드는 것 아닌가요? 전 구덩이를 잘 파는 기계가 필요할 때 안드로이드보다 굴착기를 선택할 겁니다. 마찬가지로 돈을 내놓는 기계가 필요하면 전 ATM이면 충분합니다. 우리가 과연 범용 안드로이드를 원하게 될까요? 전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힌턴은 "현재의 발전은 AGI를 구축하기 보다는 퀴즈 풀이, 문장 번역 등 개별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어요"라고 말하며 AGI 구축 가능성을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