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로 일본 도쿄를 며칠 다녀왔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도쿄행이었는데, 혼자 이동하다 보니 도시 이곳저곳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예전보다 많았더랬다. 골목길의 디테일을 찬찬히 보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돌아 다니던 중 눈길이 많이 간것 중 하나가 우체통이다.
도쿄 같은 메가 시티에 큼지막하게 서 있는 우체통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이걸 사람들이 얼마나 쓰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길거리에 이런 우체통이 있는 건 서울에선 보기 쉽지 않은 장면이다.
우체통은 큰 전시회장이 있는 지하철 역 근처에 있었는데, 가게에서 뭐 좀 사면서 보니 잠깐 사이였지만 여러 명이 우체통에 우편물을 넣는 것을 봤다.
솔직히 많이 놀랐다.
대도시에, 그것도 주변에는 테크 관련 대규모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장소에 서 있는 우체통이 사람들에 의해 여전히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니…. 내가 우체통을 마지막으로 써본 것이 언제였더라? 기억하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좀 더 지켜 보고 있으니 우체통은 전시회에 참가하는 이들을 위한 만남의 장소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우체통은 일본 사람들 일상에서 아직도 많이 활용되는 듯 보였다.
일본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분께 들으니 일본에선 코로나 19 백신 접종 관련한 메시지도 한국처럼 문자나 카카오톡이 아니라 우편물로 받는다고 한다. 설마요 했더니 진짜란다. 코로나 19 백신 맞으라는 메시지를 우편물로 받는 것은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익숙해진 나로선 놀랍고도 낯설다.
일본에서는 우편물 외에 복합기도 기업들에서 여전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 혹시나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복합기는 복사기와 팩스, 그리고 프린터가 결합된 사무용 기기다. 한국 기업들도 복합기를 쓰는 곳들이 많지만 활용 빈도는 많이 줄었다. 개인적으로 인쇄 외에 복사나 팩스 전송은 요즘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은 많이 다르다고 한다. 사무실에선 팩스도 여전히 많이 주고 받는다고. 때문에 업무용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들 사이에서도 복합기를 잘 지원하느냐는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디지털화 측면에서 보면 한국과 일본은 다른 점이 많은 것 같다. 요즘 같은 세상에 우체통과 복합기가 웬 말이냐고 할 한국 사람들도 많지 싶다. 하지만 일본에선 우체통과 복합기는 여전히 현실에서 상당한 존재감이 있다. 많은 이들에게 생활과 일의 일부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까? 일본 기업들도 요즘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하니, 한국처럼 일본에서도 우체통과 복합기는 점점 과거, 잊힌 존재가 될 수 있다.
한국처럼 일본에서도 우체통은 점점 추억이 되고 복잡기는 쓰지 않은 존재가 될까? 하나 마나 한 대답이지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일본을 좀 아는 분들 사이에선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된다고 해도, 복합기와 우체통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도 많이 들린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복합기는 몰라도 우체통은 디지털 전환이라는 격변 속에서도 서바이벌 했으면 좋겠다.
디지털이 주는 효율성은 승리의 키워드처럼 보이지만, 효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디지털로 커뮤니케이션의 양은 확실히 늘었고 속도는 빨라졌지만 커뮤니케이션의 밀도가 높아지고 질량도 늘었는지는 글쎄다. 오히려 디지털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은 차갑고 가벼워졌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명절 전후로 카카오톡을 통해 쏟아지는 디지털카드가 과거, 종이로 된 성탄카드와 연하장 같은 느낌을 주는가? 개인적인 경험은 그렇지 않다.
일본에서 사람들이 우체통에 우편물을 넣는 것을 보고 우체통에 편지를 넣던 그때 그시절이 떠오른 것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에 담긴 차가움과 가벼움에 대한 불편함, 그리고 한국에선 우체통은 너무 빨리 과거의 유물이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조금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래서다.
복합기는 몰라도 우체통 만큼은 일본에서 계속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