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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light Dec 11. 2022

반도체 강국 일본이 무너진 3가지 이유

80~90년대만 해도 일본은 반도체 강국이었다. 세계 10대 반도체 업체들 중 6개가 일본 회사들인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일본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 한국, 대만에 주도권을 내준지 오래다.


최근 읽은 반도체 삼국지를 보면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번째는 과도한 기술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다. 기술에 대해 심하게 짐착하다 보니 시장이 돌아가는 분위기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 오랫동안 잘나가다 보니 일본 반도체 회사들이 자신감이 넘쳐 자만심에 빠진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예전에 읽었던 일본 반도체 패전'이라는 읽었던 메시지와 큰틀에서 비슷해 보인다.

  일본 반도체 산업의 여러 업체들이 쇠락하는 과정에서 보였던 가장 큰 공통점은 각 회사가 소중하게 추구하던 기술에 대한 집착이다. 일본의 반도체와 전자 산업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 차세대 반도체 기술이나 제품이 시장에 발표되면 일본 언론은 호들갑을 떨며 앞선 기술력을 앞다퉈 찬양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기업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기술에 스스로 취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 기술에 목을 매고 회사의 자원을 총동원해야 하는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더 나은 기술을 만들 여력이 있는데 굳이 전략적인 고려 때문에 스펙을 낮추거나 수율을 희생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문제는 기술의 발전 경로가 하나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 방향으로만 치우친 투자는 언제든 다른 방향에서 나타난 파괴적 기술에 의해 사장될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으로 히타치의 트랜치형 DRAM 집정 공정 기술, 후지쓰 그리고 스팬션이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을 투자하여 20년 넘게 포기하지 않았던 NOR 플래시 메모리, 95퍼센트 이상의 수율을 유지하기 위해 지나치게 높은 비용이 요구되는 OSAT를 포기할 수 없었던 엘피다 등의 사례를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의 반도체 회사들이 기술 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저질렀던 실착 중 하나는 연구개발 인력만을 우대하고 주요 의사 결정이 마케팅 인력보다 기술 개발 인력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경쟁 업체였던 인텔이나 삼성전자의 경우와 대비된다. 인텔은 개발 부서와 양산 부서를 동등하게 대했고 삼성전자는 개발과 양산을 아예 구분조차 하지 않았으며 연구개발과 마케팅 부서 간 인력을 순환 배치하며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시장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을 고려할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의 마케팅 인력은 회사 내에서 발언권이 크지 않았던 탓에 기술 개발 인력들과 다른 의견을 관철시킬 수 없었다.


반도체 시장에서 기술이 갖는 전략적 가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우 크지만 현실에서 너무 벗어난 기술 전략은 때로는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 


출시 시점을 늦추더라도 완성도를 끌어올리는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완성도에 집착하다 실기해 기회를 상실할 수도 있는 만큼, 완성도와 타이밍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일본 반도체 회사들은 과도하게 완성도에 무게를 둔 것 같다.


두 번째 패착은 혁신의 딜레마다. 시장을 압도하기 위해 과감하게 투자한 혁신 기술이 아이러니 하게도 오히려 수익률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해온것을 포기하기 보다는 개선해 승부를 보려 했던 전략이 결국은 패착이었다는 얘기다. 


  혁신 기업의 딜레마는 반도체 산업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DRAM 생산 공정에서도 과거 6인치 웨이퍼 기준의 공정은 일본 DRAM 업체들이 극한까지 공정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정작 생산 능력을 결정하는 것은 오히려 웨이퍼의 크기였고 그 과정에서 수율의 손해를 다소 감수하고서라도 발빠르게 8인치로 옮겨간 삼성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
  플래시 메모리에서도 역시 일본은 NAND 플래시 메모리가 장기적으로는 유리한 기술적 옵션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NOR 플래시 메모리의 기술적 스펙을 높임으로써 NOR 플래시 메모리 고유의 장점을 극대화하고자 하였다. 실제로 플래시 메모리 초창기에는 NOR형 메모리가 주종을 이뤘기에 일본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판단은 처음에는 유효한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곧 플래시메모리에 요구되는 읽기/쓰기 속도 이상으로 용량이 대두되면서 용량 확대에 훨씬 유리한 NAND형 플래시메모리 기술이 점점 비중을 높여갔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에는 오버스펙 제품과 평범한 스펙 제품 사이의 원가 격차는 더 심하다. 결과적으로 오버스펙 제품의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져 결국 이른바 가성비 측면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기술에 과도하게 투자하며 원가 경쟁력이 떨어진 일본 반도체 업계는 1980년대 중반 혜성처럼 등장한 삼성전자에게 시장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이건 일본 기업들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라고 해서 혁신 기업의 딜레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시장이 작아서 그런지, 지금까지는 일본보다는 한국 회사들이 글로벌 시장 변화에 대한 유연성은 뛰어나 보인다. 문화적인 요인도 영향을 미쳤지 싶다. 일본은 자기 스타일을 추구하는 스타일이 강하다. 이같은 성향은 기초 과학 분야에선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을지는 몰라도 테크 분야에선 갈라파고스식 접근으로 이어져 글로벌 시장과 따로 움직이는 결과로 이어졌을 수 있다.


저자는 정부 정책을 둘러싼 문제들도 지적한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 초창기에는 정부가 든든한 보호막이자 비용을 절감하고 정보 공유를 가능하게 해준 훌륭한 플랫폼으로 작용하였으나 업체들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며 경쟁하던 시점에서는 오히려 발목을 잡는 꼴이 되었다.
  당초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후발주자인데도 불구하고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정부의 개입 덕분이었다. 일본 경산성은 초LSI기술협의회라는 반관 협의체를 만들어 기술 노하우를 업체들 간에 공유하고 투자가 중복되지 않도록 조정하며 각자의 장점에 집중할 수 있게 유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1985년 미일 반도체 협정에 이어 1997년 동아시아발 금융위기를 거치며 일본 반도체 업계가 위기를 맞자 일본 정부가 다시 나섰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산업의 중흥을 목표로 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200억엔 규모 아스카 프로젝트, 80억엔 규모의 HALCA(차세대 반도체 개발) 프로젝트, 315억엔 규모의 ASPLA(첨단SoC기반기술개발) 같은 프로젝트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일본 정부의 기획은 이번에는 업계에 득이 되기 보다 부담을 안겨주었다. 우선 이 프로젝트를 규모가 애매했다. 정부가 대규모 자원을 배정하여 선행 원천 기술 개발 등을 지원했다면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규모가 커진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분기 매출액도 안 되는 규모의 정부 연구 개발 프로젝트가 오히려 번거로울 뿐이었다. 경산성은 과거의 관례대로 반강제적으로 업체들에게 참여를 요구했고 기업 입장에서는 이를 마냥 피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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