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인스티튜트 교수인 대런 아세모글루와 IMF 수석 경제학자 출신으로 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 사이먼 존슨인 '권력과 진보'는 기술에 의한 진보는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제도와 외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 다는 점을 강조하는 책이다.
책에 따르면 어떤 기술 혁신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해 기술로 인한 혜택이 가급적 많은 이들에게 돌아가는 반면 어떤 기술 혁신은 그렇지 않은데, 이건 국가와 사회가 기술 혁신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그런 만큼 저자들은 테크 기업 리더들이 알아서 기술로 좋은 혁신을 해줄 거라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을 견제할 수 있는 역량과 기술의 혜택이 가급적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는 제도 없이는 기술 혁신은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기술 전문가들이 알아서 사회에 좋은 기술 혁신을 이끌 거라 기대해서는 안되는 이유로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는데, 영국 역사학자이자 정치인인 액턴 경이 1887년에 했던 말도 그중 하나다.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위대한 인물을 거의 언제나 나쁜 인간입니다. 권한이 아니라 영향력만 행사할 때도 그렇다. 그러니 부패의 경향성 또는 확실성을 권한이 한층 더 강화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직위가 그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신선함을 부여한다는 개념보다 더 이단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액턴 경의 논점은 설득 권력에도 아무 잘 들어맞으며 여기에서 설득 권력은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힘도 포함된다. 사회적으로 강력한 사람들은 그들의 아이디어가(그리고 많은 경우에 그들의 이해관계도) 중요하다고 스스로를 확신시키고 다른 사람들의 견해와 고통을 합당하게 무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사회 심리학자 대거 켈트너의 연구도 인용한다.
지난 20년간의 연구에서 켈트너와 동료들은 권력이 강해질 수록 사람들이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실증근거를 방대하게 발견했다. 일련의 연구에서 켈트너와 동료들은 가격이 낮은 차를 모는 운전자와 비싼 차를 모는 운전자의 행동을 비교해 보았는데 비싼 차들은 교차로에서 자기 차례가 되기 전에 다른 차 앞으로 끼어 드는 확률이 30%가 넘는 반면 비싸지 않은 차는 5% 정도에 불과했다. 보행자에 대한 행동에서는 차이가 심지어 더 컸다. 연구팀은 보행자의 역할을 맡아 차가 다가 올때 길을 건너려 해보았다. 가장 비싼 차는 45% 이상이 보행자보다 먼저 지나간 반면 가장 비싸지 않은 차는 그러는 법이 없었다.
실험실 연구에서도 더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을 수록 무언가를 옳지 않게 취하거나 주장하는 식으로 속임수를 쓰는 경향이 더 크다는 점이 발견되었다. 겔트너의 연구팀은 피실험자들의 자기 보고를 분석한 결과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의 답변에 이기적인 이익 추구를 암시하는 내용이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기 보고형 실험에서 뿐 아니라 피실험자가 속임수 등 비윤리적인 행동을 했는지 추적할 수 있도록 설계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더 놀랍게도 피실험자가 자신의 지위가 더 높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속임수 등 비윤리적인 행동을 촉발할 수 있었다.
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인 행동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일까? 켈트너의 연구는 무엇이 용인될 수 있고 그렇지 않은지, 또 무엇이 공공선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자기 설득이 중요한 요인임을 말해준다. 부유하고 저명한 사람들은 자산이 마땅히 가져야할 몫을 가져가는 것이라거나 심지어는 탐욕이 벗어난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1987년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부도덕한 은행가 고든 게코는 "탐욕은 옳고 탐욕은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켈트너의 연구팀은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도 탐욕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언명을 보여주는 식의 미세 조작을 통해 부유한 사람처럼 행동하게 끔 유도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앞에서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는 설득 권력이 사회적 권력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설득의 힘으로 당신은 당신이 옳다고 자기 자신을 설득하며 다른 이들의 소망, 이해관계, 고통에는 점점 민감도가 떨어지게 된다.
켈트너의 연구 결과는 테크 세계에서도 유효하다.
사회적 권력이 갖는 특징은 테크놀로지의 비전과 관련해서 특히 핵심적이다. 자연에 대한 인류의 지배력을 고양하는 방법에 대해 강렬하고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면 다른 이들, 그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 그 견해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옆으로 제쳐 놓을 수 있다. 그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립서비스 수준의 언급이 나올 뿐이다. 비전이 과잉 확신으로 이어지면 이러한 문제는 더 증폭된다.
이제 그 비전의 경로를 방해하는 사람이나 다른 경로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중요치 않거나 시대에 뒤떨어졌거나 틀린 견해를 가졌다고 여겨지며 따라서 무시되고 짓뭉개져도 괜찮은 사람이 된다. 비전은 모든 것을 합리화한다. 이기적이고 오만한 비전을 체약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책임 있는 행동이 저절로 생겨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