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세계사를 읽다 보니 고대 로마에는 정부와 계약을 통해 세금을 징후를 대행하고 일정 이익을 받는 소치에타스라는 조직이 있었다. 이들은 로마 내에서 부유층이었고 국가 운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 윌리엄 매그너슨에 따르면 소치에타스 운영 방식은 오늘날 주식회사와 유사한 점이 많다.
기원전 1세기경 이들이 권력과 부에서 최고의 지위에 오른데에는 사업적 구조에 중요한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혼자 행동할 때 보다 뭉쳤을 때 훨씬 막강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개인의 힘으로 군대에 물자를 보급하고 사원을 지을 정도의 자금을 축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개별적으로 보면 이들은 질병, 부상, 죽음의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다. 다만 뭉쳤기 때문에 강해졌던 것 뿐이다. 로마정부의 입장에서 볼때 푸블리칸이 조직을 만들어 국가의 대소사를 책임진다는 개념은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어떤 한 푸블리칸의 사망으로 공공 서비스가 중단되거나 정부의 수입원이 차단되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특별한 권리와 특권을 가진 소치에타테스 푸블리카노룸이라는 개념이 발전했다. 이 단체는 오늘날의 주식회사와 놀랄 만큼 유사하다. 우선 소치에타스는 소유주와 별개의 독립체로 인정 받았다. 이는 다른 직원의 행동에 무한 책임을 지는 기의 로마식 파트너십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만일 어떤 직원이 기한 내에 대금을 지불하지 못하면 다른 직원이 농장을 팔아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소치에타스는 소유주가 아니라 조직의 자격으로 다른 사람들과 협상하고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즉 소유주와 별개의 독립체로 로마법대전이 규정하듯 법인으로 인정받았다.
소치에타스는 법인으로서의 지위도 가졌던 모양이다.
또한 소시우스라고 불린 구성원이 사망하더라도 소치에타스는 계속 존재할 수 있었다. 두번쨰 특징으로 소치에타스는 파르테스라고 불린 주식으로 소유권을 나타냈고 다른 소유주에게 주식을 사거나 회사로 부터 직접 구입하는 것이 가능했다. 주식의 가격에는 변동이 있어서 키케로는 지나치게 비싼 주식에 대해 글을 쓰기도 했다. 세 번째는 주주들이 직접 회사의 운여엥 관여하려 하지 않았기 떄문에 오로지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 계급을 별도로 만들었다.. 주주와 경영자의 분리로 이 둘의 관계를 규정하는 새로운 조치가 필요했다. 경영자들이 공금을 들고 도주하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수입과 지출을 알 수 있는 회계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심지어 주주와 경영자가 모여 회사의 사업 방향에 대한 토의를 하는 주주총회도 있었던 것 같다.
운영 방식도 주식회사와 유사한 점이 많다.
소치에타스의 계층 구조 역시 현대 기업의 구조와 비슷하다. 정점에는 '망켑스'가 있었다. 이들은 회사를 대표해 직접 경매에 참여하는데 보통 토지 같은 개인 재산을 담보로 제공해야 했다. 회사가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정부는 담보를 처분해서 부족분을 만회했다. 망켑스 외에 소치이라고 불린 파트너도 있었는데, 이들도 자금을 대고 때로는 담보 자산을 제공하기도 했다. 망켑스와 소치이는 공동으로 회사를 만들어 감찰관에 등록했다. 소치이는 오늘날의 주주처럼 회사 운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이사회에 해당하는 마기스트리에게 운영을 위임했다. 마기스트리는 매년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으며 교체되는 일이 빈번했다.
소치에타스의 고위직에게는 많은 특전이 따랐다. 엄청난 재산 외에 막강한 정치적 사회적 권력이 따랐고 이에 맞는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고위직들만만이 혜택을 누린 건 아니었다. 로마의 일반 시민도 국가의 수입 증가 뿐 아니라 직접적인 주식 거래로 이득을 보았다. 로마의 예산을 보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데 기원전 3세기 로마의 수입은 400만에서 800만 세스테리티우스 사이였으나 기원전 150년경에는 5000만에서 6000만 세스테리우스로 증가했다. 소치에타스의 전성기라고 할만한 기원전 50년경에는 무려 3억4000만 세스테리티우스로 치솟을 정도였다. 이렇게 국가의 부가 증가함에 따라 로마는 도로, 사원, 수도관, 하수로, 그리고 원형극장 등을 엄청난 규모로 건설하기 시작했다. 로마 시민들 역시 소치에타스의 주식을 소유하여 보다 직접적으로 이익을 보았다. 주식 보유는 로마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것으로 보인다.
주식 거래도 나름 자유롭게 이뤄졌다.
대개는 광장의 카스토르 사원에서 로마 시민들간에 자유롭게 주식이 거래되었다. 역사가 폴리비오스는 소치에타스의 광범위한 사업 영역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계약이 이루어져 공공 건물의 건설과 수리가 진행되었다. 그외에도 하천, 항구, 정원, 광산, 토지 등 로마의 영토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을 도급 계약을 받아 운영했다." 현대의 역사가 중에는 가용한 증거들을 확대해석하여로마에 진정한 의미의 자본 시장이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경제사가인 휠리엄 커닝햄은 거의 저서 '서양 문명 소고'에서 "대형 건물이 있는 광장은 모든 종류의 금융 투자가 이루어지는 거대한 증권거래소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라고 했으며 또 다른 역사가는 "수많은 군중이 징수대행사의 주식과 채권을 사고 팔았으며 외상이든 현금이든 여러 종류의 상품을 포함해서 로마 각 지역의 논장과 토지, 주택, 상점, 선박, 창고, 노예와 가축까지 거래하느라 부적댔다"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