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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람 Feb 13. 2020

나는 공공기관 계약직 사무원이었습니다

수명이 다한 기간제 근로자이자 새로운 직장을 준비하는 취준생이 되었어요

바쁘게 쉼없이 달려가는 중인 2월이다. 낭만으로 가득할 줄 알았던 타국으로의 여행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고, 낯선 도시에서 정처없이 방황하는 20대는 홀로서기를 두려워하는 도시의 자화상이었다. 10개월의 계약기간이 끝났다. 나는, 이름 없는 도시에 또 다시 던져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또 다시 새로운 일을 구해야 했다. 생각을 정리하고자 떠난 여행이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다음 달에 통장에 꽂힐 확실한 급여가 없어서이기도 했고, 모든 일상이 그리 특별하지 않게 보이기도 해서였다. 공공기관에서의 나름은 그럴듯한 직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한 계약직 근로자였다. 그간 해왔던 일과도 전혀 상관 없었고, 결이 비슷한 일도 아니었다. 다만 남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직무의 일자리가 부러웠고, 그래서 그들과 함께 호흡을 하고 부대끼고 싶었다.


그렇게 10개월 뒤, 모든 한국의 일상이 똑같아 보였다. 이거, 매너리즘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

생각보다 공직은 재미없는 일자리였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일을 배우며 모든 게 신기할 몇 개월 동안은.


'계약'이라는 말은 참 달콤하다. 내게 주어진 계약 기간의 길이 만큼, 책임감의 무게도 적었다. 물론 일을 그만큼 많이 시키지도 않는다. 더불어 회의도 참석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 만큼을 일하면 되기 때문에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야근을 한다고 돈을 더 준다는 소리도 아니다.


그럼 계약 기간만 채우면 마음대로 하면 되냐고? 절대 아니다. '재계약'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나는 또 눈치를 보게 된다. 혹시나 실수를 하면, 나 대신 새로 뽑게 될 다른 지원자에게 자리를 줄까봐 되도록 일에 능숙하고 서툴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더불어 '내년까지 잘 부탁드립니다'를 티나지 않게 어필할 정도의 친분과 아양도 필수이다. 새로운 신입 계약 직원보다는, 1년을 일했던 직원이 좀 더 일을 잘할 것이 아닌가. 



직장이 안정적이고, 급여가 규칙적이라면 나머지 시간에 내가 할 일을 하면 된다. 오전에는 회사의 업무를 하고, 퇴근 후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재계약'이라는 말을 믿고, 그렇게 했다. 마치 그 자리가 영원할 것처럼. 그러나 12월이 지나고, 다시 찾은 직장의 동료와 상사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다. 사람의 직감이란 게 무섭다. 나는 무턱대고 내가 앉은 자리가 영원할 것처럼 말할 수 없었다. 1년도 채 안 된 사원이, '내년'을 기약하며 했던 말을 돌이켜보면 얼굴이 확 붉어졌다. 


최근 다시 취업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공기업 인턴 친구가 있다. '체험형' 인턴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고 했다. 조직 문화를 체험하고, 일을 배운다. 취지는 그럴싸하다. 그런데 인턴이 꼭 '체험형'일 필요가 있을까? 3개월 뒤에는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기간이 정해진 시한부일자리인 것을 알면서도, 많은 청년들이 직무와 연관된 일을 '체험'하고자 면접을 보고 지원서를 내며, 자기소개서에 자신의 역량을 그럴싸하게 어필한다.



그렇다면 내가 '체험했던' '그들'의 공간은 어땠냐고? 


처음엔 신선했다. 전에 다녔던 일반적인 직장에 비해서 책임감의 무게는 놀랍도록 적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형식적인 일만 무리없이 처리한다면 조직 생활을 유지하는데에 크게 무리가 없었다. 실적을 위해서 애쓰지 않아도 되었고, 반복적인 업무만 처리하면 되었다. 여유있어보이고, 말 그대로 안정적으로 보였다.


10개월 뒤의 일상은 조금 달라보였다. 매너리즘과 같은 일과의 반복이 연속극처럼 지속되었다. 이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특별할 것 없었고, 이러한 일이 밖에서는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것도 참 의아했다. 규칙적인 급여, 안정적인 일자리라는 것 외에는 반복적인 업무의 연속이었다. 아, 다만 일이 익숙해지고 조금 친해질 것 같으면 그들은 또 책상을 옮기고 인사하면서 떠나갔다. 철마다 인사발령이 잦아, 그나마 조직이 '고인물'이 되는 과정이 적었다. 그 뿐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다시 다른 기관에 지원하지 않았다. 


경력을 살려 정규직이 되고 싶은 마음보다는, 스스로의 것을 찾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을 감내할 자신도, 좁은 책상 안에 앉아 정체되어있는 흐름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다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곰살맞게 시간을 보낸다. 잘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매일 '열심'을 입고 벗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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