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머리, 따뜻하지 못한 마음

겨울 바람이 유난히도 날 닮았다.

by space O

내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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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가출'이 마냥 즐거웠던 그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컸던 그 시절.
나는 인적 드문 길을 누비고 다니는 일을 즐겼다.
위험해 보이는 곳을 기어오르는 일은 나의 주특기였으며,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일은 나의 낙이었다.
그러나 한참을 호기심에 사로잡혀 걷다보면
어느 순간,
끝이 보이지 않는 골목길 한가운데에
홀로 서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걷잡을 수 없었던 호기심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나의 불안감은
가벼웠던 발길을 멈추게 했고,
서툰 솜씨로 기억을 되짚으며 돌아왔던 길을 내달리게 만들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사소한 가출'이 마냥 즐겁지 않는 지금.
미지에 세계에 대한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큰 시간.
호기심에 발걸음이 먼저 반응했던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 나는,

마음의 발걸음 조차 쉬이 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렸다.
호기심 뒤에 숨어있는 두려움이 머리 속에서 먼저 말을 걸어오고,
그 두려움은 항상 내 마음을 이겨버린다.


두려움에 진 것이 부끄러워 애초부터 호기심이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행동하는 것이 나의 주특기가 되었고,
쉽게 마음을 열어 보이지 않는 일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간혹 두려움을 이기는 호기심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 호기심 안에는 항상 '자기보호'라는 안전장치를 품고 찾아온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 그리고
두려움을 이겨보려는 수많은 호기심 앞에
나는 오늘도 차가운 머리로 따뜻하지 못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 어린 시절,
따뜻하게 품었던 '호기심의 감정'을 잊지 않고,
마음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
그 사실 하나가 나를 슬프게도 하지만,
희망이란 이름으로 자리잡아 나를 살아가게 한다.


차가운 머리가 아닌 따뜻한 마음이 이겨주길 바라는 오늘,
겨울 바람이 유난히도 내 머리를 닮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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