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하게 온 전화

1일 1커밋 #128

by 김디트

회사 동료는 아이스커피를 쪽 빨아 마시면서 말했다.


"7월에 한 8일 나왔나?"


말해 뭐할까. 회사에 출근한 횟수를 의미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면서 재택을 택하는 횟수가 점차 많아지더니 어느새 관성이 되어버리고 만 그 재택 업무. 나는 웃음 지으면서 대답했다.


"저보다 두배는 많이 나오셨네요."


오늘도 정말 오랜만에 회사에 나온 참이었다. 일반적인 많은 것들은 짧은 자극만으로 아드레날린을 뽑아낼 수 있는 수많은 스낵 컬처들과는 다르게 진입점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책을 손에 쥔다거나 코딩을 하기 위해 IDE를 화면에 띄운다거나. 출근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시작하기 전에 상상한 수고로움은 실제 수고와 상당히 많은 괴리를 보인다는 점도 같았다. 막상 해보면 별 것 아니라는 뜻이다. 어젯밤에 '내일 정말 내가 출근을 멀쩡히 해낼 수 있을까' 하며 뒤척이던 것이 거짓말처럼 출근은 수월했다. 오히려 즐거웠을지도. 나는 출근 버스 안에서는 책을 꺼내 읽는 습관이 있었는데, 비록 오랜만에 탄 버스라 할지라도 습관은 어김없이 튀어나왔다. 아침에 읽는 책은 특별한 맛이 있었다.


버스 안에서 그렇게 한참 책에 빠져있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진동음. 전화였다. 시간 상으로는 아침 8시 15분경일까. 이른 아침부터 스팸 전화가 기승이구만 싶어서 괜히 짜증부터 났다. 난 집중이 흩어지는 걸 유달리 싫어하는 편이었다. 애인은 그 기질을 INSF의 특성들 중 하나와 매칭 시키며 꺄르륵 웃었고, 그 덕에 나는 내 짜증을 조금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자중해야지. 싶었달까. 그런 터였기에 짜증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며(효과가 있었든 없었든 노력했다는 그 포인트가 중요하.. 지 않을까) 폰을 집어 들었다. 례히 스팸 경고가 메우고 있을 줄 알았던 휴대폰 화면에는 의외의 이름이 떠 있었다. 엄마였다.


말했듯 무척 이른 시간이었기에 순간 걱정이 앞섰다. 아침부터 무슨 일일까. 뭔 일이라도 난 걸까. 아빠와의 불화? 엄마 가게에 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 일단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버스 안이었던 데다가 곧 회사에 도착할 터였기 때문에 '엄마 지금 버스라서 곧 회사 가면 제가 바로 전화할게요.' 했고, 엄마는 '그래 알았다.' 했다.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다시 책 활자를 하나하나 짚어보려 했지만 역시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책도 가방에 쑤셔 넣고 창 밖을 바라보며 다리를 달달 떨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엔진 진동 때문에 떨린 걸지도 모르겠지만.


회사에 도착한 나는 얼른 가방을 던져놓고 부리나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이야기했다.


"회사가. 요새 그렇게 위험한데 회사에 출근했나."


엄마는 꼭 하필 잘못한 순간만 보고. 아마도 모든 어른들의 어떤 기본적인 능력 같은 것일까. 나는 투덜거리면서 정말 오랜만에 출근한 거라고 대꾸했고, 엄마는 그랬냐면서 그래도 조심하라고 첨언했다.


아무튼 정말 큰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엄마의 목소리에 다급함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출근으로 슬쩍 운을 뗀 엄마는 은근히 본론을 끄집어냈다.


"오늘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네 생일이 지났더라."


아하. 그러니까, 올해 내 생일을 챙기지 못한 미안함에 급히 전화를 한 것이었다. 나는 겨우 안심하며 슬쩍 미소를 띨 여유도 가질 수 있었다. 별 거 아니었구먼. 하지만 엄마는 굉장히 별 것이었다는 말투였다. 어떻게 너의 생일을 잊어먹을 수 있었을까, 무지 원통한 투였다. 무지 원통할 것까지야 싶었지만 엄마의 심정은 아무래도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엄마는 동생까지 들먹이며 '네 동생은 니 생일인 줄 알았으면 나한테 말이라도 좀 해주지!' 분통을 터뜨렸다. 나는 나도 동생 생일 때 굳이 엄마한테 생일이라고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굳이 상기시켰고, 엄마는 머쓱한 말투로 그건 그렇지만.. 말을 줄였다.


아무튼 요는 미안하다. 돈을 조금 부쳤으니 맛있는 거라도 사 먹어라. 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조금 어이없었고 많이 고마웠다. 여러 세상을 경험하고 나니 엄마가 주던 이 관심과 사랑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얼마나 품이 드는 일인지, 그리고 얼마나 일반적이지 않은 일인지 좀 더 깊게 알게 되어서이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좀 더 많이 고마워하려 애썼다.


회사 동료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역시 무소식이 희소식이야.'라고 대답했다. 뭐야,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그게 아니라고,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 아침부터 나에게 생일 못 챙긴 거 미안하다고 전화했겠냐고, 뭐 그런 길고 긴 변명을 대고 싶었지만 조금 민망해서 짧은 변명으로 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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