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나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게임을 만들고 싶은데, 그냥 평범한 게임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스토리가 있고(방대하다), 아트웍도 일일이 내 손을 거쳐야 하며(역시 방대하다), 아. 사운드도 빠질 수 없지(...) 이렇게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 계획을 세웠으니 이제 실행할 차례. 내가 제일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건 결국 코딩밖에 없으므로 자, 이제 시작해 볼까, 기지개도 쭉 켜고 어깨도 풀어주고 하면서 IDE를 켠다. 한 차례 코딩이 이어진다. 하지만 프로그래머로서는 가장 간단해야 할 코딩조차도 쉽게 풀리지 않는다. 왜냐면 직업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하드코딩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으니까. 뒤집어진 쓰레기통에서 뿜어져 나온 것만 같은 코드들을 주섬 주섬 챙겨서 깔끔하게 정렬하는데 몇 차례 힘을 빼고야 만다. 결국 이러다 보면 결국 내가 코딩을 하기 위해 게임을 만드는 건지,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코딩을 하는 건지 점차 그 경계가 희미해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 희미함을 얼핏 깨닫고 차가워진 머리로 코딩 외적으로 내가 해야 할 일들(스토리, 아트웍, 사운드)을 직면하면 에라 모르겠다. 코딩조차 그만둬 버리고 만다.
과대평가란 말보다는 과대망상이란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이 흐지부지 끝나는 경험들은 소리 없이, 하지만 무자비하게 쌓여갔다. 그리고 그 높디높은 실패의 경험들은 그대로 시작 허들이 되었다. 시작하면 뭐하나. 어차피 실패로 끝날 것을.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 마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실패로 끝날 것을, 하고 부정적인 스탠스조차 취하고 싶지 않아서 아예 게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그만둬 버리는 것이다. 생각조차 그만두게 된다. 좋아하는 일을 대하는 방식 중에는 정말 최악의 방식일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글 하나를 위해서는 그럴듯한 주제가 있어야 하고, 내가 정한 일정 분량만큼은 반드시 적어야 했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그런 잣대들이었는데도 나는 휘둘리고, 생각을 멈췄다.
오늘 힘겹게 위와 같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였다.
실패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원인은?
나만의 잣대를 깨뜨릴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성공의 경험들이 필요했다. 문득 떠오른 것을 아무렇게나 휘갈겨 쓸 수 있는 경험이.
그런 경험을 쌓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