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하던 중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하지만, 게임이 게임인 이유는 이런 치명적인 실수들을 완전히 이전 상태로 돌이킬 수 있다는 데 있다. 그 안온함 덕분에 리스크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겠지. 뭐, 그런 단조로운 생각을 하면서 로드 메뉴를 눌렀다...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게임의 세이브 / 로드의 용법이겠지만.
사실은 실제로 게임을 할 때는 그보다는 좀 더 복잡 미묘한 생각의 뭉텅이가 뇌 속을 굴러다니게 된다.
지금까지 쌓아온 게임의 흐름 중 일부만 마음에 들지 않을 뿐, 나머지 일부는 참 마음에 든다는 점이 문제이다. 즉,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가서 재진행 한다는 선택지를 고르면, 나는 지금의 이 마음에 드는 부분들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게임은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확률과 함께 엮여 짜이는 복잡한 실뜨기 같은 것이니까.
물론 그 장점들을 안고 게임 오버라는 무덤 속으로 그대로 다이빙할 순 없는 노릇이므로 결국에는 로드를 누르게 된다. 내가 쌓아온 그 일부 좋은 것들은 역사 조차 되지 못하고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그 지점부터 전혀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게 된다.
그 고뇌에 포인트를 두고, 지금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선택지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나는 과연 거침없이 로드 버튼을 누를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많은 기억들이 없었던 일이 되고, 내가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잊게 된다. 다시 그 사람들과 지금까지의 것을 동일하게 쌓을 수 있을까 하는 작은 확률을 기대하고 과연 로드 버튼을 누를 수 있느냐 하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아니, 현 시점에선 아마 누를 수 없지 않을까 싶다. 내가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과거는, 그 소중함들은 그 시점에서 현실이 되어버릴 테니. 잘 되어가는 게임의 엔딩이 다가옴이 두렵다고 갑자기 이전 로드 파일을 불러오지는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