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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우물 Oct 12. 2024

당신은 행복한가요?

당신이 짓밟은 작은 꽃잎

난.. 그때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아직 어리고 여린 아이였다. 내가 대체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했을까.


할머니와 큰 이모, 큰 이모부, 셋째 이모네 가족, 우리 가족은 다 같이 제주도 여행을 갔다.

어른들은 무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동물쇼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어린 난 인간에게 이용당하는 동물들이 불쌍해서 반대했지만 고작 9살밖에 안된 초등학생이 하는 말을

들어주는 어른은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고 자리에 앉았다. 엄마, 친동생, 사촌동생, 나 순으로 앉게 되었고 엄마가 내 오른쪽 자리는 큰 이모와 우리 일행이 앉을 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난 지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어떤 할아버지가 내 옆에 앉으셨다. 난 너무 당황해서 엄마한테 가서 “저 할아버지가 내 옆에 앉았어”라고 말했고 엄마는 나보고 할아버지한테 거기 자리 있다고 말하라고 했다. 그래서 “여기 자리 있어요”라고 했는데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기도 하고 뭐라 말하는 것 같기도 한데

못 들은 것 같아서 다시 한번 말했다. 그런데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내 말을 들었음에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엄마한테 가서 말하니까 엄마는 바쁜지 건성으로 대답했다.

“어쩔 수 없다. 큰 이모는 다른 자리 앉으라 해야지.” 난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낯선 사람과 나란히 앉는다는 게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엄마를 제외한 나머지 어른들은 다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동물쇼가 시작하기 한 십분 전부터 돌고래들이 물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너무 신기해서 사촌동생을 툭툭 쳤다. 돌고래들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그 할아버지가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좀 봐봐” 하면서 손으로 돌고래들을 가리켰다. 난 당황해서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하고 일부러 사촌동생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내가 반응이 없자, 다시 또 말을 걸었다. 돌고래 좀 보라고 하셨다. 나도 이미 다 봤는데 왜 자꾸 돌고래를 보라고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난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불쾌함을 애써 외면했다.


쇼가 시작되었다. 묘기를 부리는 원숭이들, 조련사를 태우고 물 위로 날아오르는 돌고래들. 불쌍해서 볼 수가 없었다.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난 웃을 수 없었다나만 웃지 못하는 것인지, 내가 이상한 건 아닌지 한참을 생각했다. 한창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그 할아버지가 내 다리에 손을 올렸다. 난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너무 당황해서 순식간에 몸이 얼어붙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파편이 되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엄마와는 멀리 떨어져 있고 사촌동생을 불러볼까.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날아오르는 돌고래와 함께 공중으로 분해되었다. 순식간에 머릿속이 엉망이 되어버린 와중에 할아버지가 이제는 내 허벅지를 쓸어만졌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이젠 새하얘졌다.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9살 아이가 간신히 쥐어짜 낸 생각은 할아버지의 손을 밀어내는 것이었다. 어렵게 짜낸 생각이었지만 행동으로

나오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자그마한 손으로 겨우겨우 커다란 손을 밀어냈는데 그 손은 날 가볍게 무시하고는 다시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두 번 정도 더 밀어냈지만 손이 계속

올라왔고 더 이상의 저항은 할 수 없었다. 체념하고 쇼를 보았다. 그러나 손뼉 치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사이에 낄 수 없었다. 그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 같았다.

이런 게 정말 재미있을까. 어떤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웃어보려고 하고 집중해보려고도 했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웃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던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엄마 쪽을 계속 보았다. 엄마는 나를 볼 듯 말 듯하더니 쇼에 집중했다. 쇼가 끝나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염없이 엄마만 바라보던 중 마침내 눈이 마주쳤다.

그때의 내 표정이 어땠는진 잘 모르겠다. 이상함을 느낀 엄마가 내 쪽을 계속 쳐다보더니 할아버지가 내 다리를 만지고 있는 걸 눈치챘다. 내 손을 잡고 일으켰다.

“우리 애 다리 만지지 마세요. “라고 말한 뒤에 아빠 옆에 앉은 이모부와 내 자리를 바꾸어주었다.


난, 그 상황을 벗어나기만 한다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분명 눈은 쇼를 보고 있는데 내가 보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생각이 사라졌다. 아빠가 옆에서 무슨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던 것 같은데.


쇼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자 햇빛이 눈을 부셨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예쁘게 피어있는 꽃들, 싱그러운 여름 풍경,, 그러나 난 이것들에게서 이질감을 느꼈다

나와는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난 즐겁지 않은데 이들은 보란 듯 즐거워했다. 엄마가 어른들에게 말했다. “아까 할아버지가 애 다리를 막 만지길래 내가 형부랑 얘 자리를 바꿨다.”

난 당황했다. 친척들이 아는 게 싫었다. 수치스러웠다. 당장이라도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이모가 괜찮냐고 묻길래 괜찮다고 대답했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그럴 땐 싫어요! 안 돼요! 제 몸 만지지 마세요!라고 해라.” 그제야 난 깨달았다. 그런 말들은 다 의미 없다는 걸.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진작에 했겠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대처하는 법을 알아도 행동할 수 없다는 걸. 가족들은 내가 괜찮다고 하니까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엄마는 괜찮냐는 말보다 내가 왜 그 상황에서 가만히 있었는지에 대해 물어본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았다. 그 뒤론 뭐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모르겠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억지미소를 띠며 박물관을 가고 기념품도 고른 것 같다. 여행 내내 누가 망치로 내 머리를 때리는 듯한 느낌이 계속되었다. 이 세상에 나만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아니면 이 세상에 나만 없거나.


집으로 돌아와서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거니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처음엔 밤이 너무 무서웠다. 다 자는데 나 홀로 깨어있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정말 나만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았다. 무서워서 밤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아침이 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났다. 오후쯤엔 곧 어두워질 거라는 생각에 잠깐씩 기분이 안 좋아지곤 했다. 밤이 찾아오는 걸 두려워하며 하루, 이틀, 사흘.. 여러 날을 보내고 나니 두려운 감정은 점차 분노로 바뀌었다. 자려고 하면 그 할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반 남자애들 몇몇이 하던 욕을 작게 내뱉으며 이불을 걷어찼다. 이불을 덮으면 자꾸 걷어차는 바람에 이불을 덮을 수 없었다. 욕이란 욕은 다하고 싶었다. 그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내가 죽고 싶었다. 경찰에 신고해서 감옥에 넣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런 상상을 하며 누워있는데 한 번은 엄마가 내 방문을 열어서 안 자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직까지 안 자고 있었냐고 화를 냈다. 밤이 더 무서워졌다.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점점 엄마, 아빠, 친척들을 미워하게 되었다. 그들도 내가 힘들 때 즐거워하고 있었던 관객들의 일부였다. 아무도 나를 구해줄 수 없었다. 그 사람들 탓은 아닌데 자꾸만 누군가를 탓하게 되었다. 탓하지 않는다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난 나를 탓하게 되었다. 난 원래 그런 일을 당해야 할 운명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9년이 흐른 지금, 난 정말 괜찮다. 단지 의문이 들뿐이다. 그 할아버지는 단지 어른이라는 이유로 한 아이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댄 것인가.

그 사람에게 난 한 마리의 돌고래에 불과한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돌고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돌고래를 가리키며 내 흥미를 끌려고 했을 때, 난 그때까진 몰랐다.

내가 그 돌고래가 될 줄은.


그날, 제주도에서 난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까. 어린아이가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나만, 나만 이런 것 같다. 그날 내가 그 자리에 앉지 않았더라면,

엄마가 나를 조금이라도 더 챙겼다면, 큰 이모가 그 자리에 앉았더라면, 동물쇼 보기 싫다고 한 번이라도 더 말했다면, 내가 동생으로 태어났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잘 모르겠다.


세상은. 어린 나에게 가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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