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 다 떨어진 자소서와 들였던 시간을 바라보며, 봄이 지나갔다.
지난 몇 달간 나름 열심히 이직을 준비했다.
지금의 답답함에서 일단 무엇을 바꿔봐야 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겠다.' 하는 큰 결정까지는 해내지 못했지만, 적어도 바꿔는 봐야 했다.
그래서 실천을 해 보았다.
약 20개의 자기소개서를 쓰며 고작 단 한 번의 면접의 기회를 얻었고, 그 마저 잡지 못했다.
어떤 게 부족한지 깨닫는 좋은 경험이 되었지만
이후 또 몇 달째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는 괴로움은 나 스스로를 지옥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나 부족한 점이 많았나 단점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자소서를 쓰느라 들인 퇴근 후의 고달팠던 시간이 참 아까웠다.
회사의 모든 것들이 더욱 부정적으로 느껴졌고,
이미 마음이 떠 버렸기에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나는 언젠가 이곳을 떠날 사람이라는 생각을 감추지 못했고,
나도 모르게 그 마음이 드러날 때마다 나에게 실망했다.
일을 적당히 하려는 나, 회사의 나쁜 점만을 쏟아내며 욕만 하는 나, 그럼에도 떠나지 못하는 나.
결국 떠나지 못했을 때 어떤 후폭풍으로 돌아올까 두렵다.
너무나도 큰 좌절에 한 헤드헌터님의 프로그램에 상담을 신청했다.
내가 잡은 방향이 맞는지, 내가 지금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상태인지, 붙으려면 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놀랍게도 결론은..
방향을 잘 잡았으며, 경쟁력이 아예 없어 보이지 않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계속 문을 두드리는 것뿐이었다.
솔직히 조금 더 막막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문을 두드리다 실패를 마주하는 것밖에 없다니.
경기가 안 좋아지고, 우리 회사에서도 인력 변동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정도로 변화들이 생겼다.
희망퇴직을 권유하기 시작한다거나, 문 닫은 지사에서 사람들이 옮겨온다거나.
취업시장은 얼어붙었고, 아마 앞으로는 더 얼어붙겠지.
그럼 내 좌절은 점점 더 커져만 가겠지.
벌써 20대 후반까지 내 인생을 그려왔다.
사실 지금은 내 현재가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주요한 신념 중 하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거니까 내가 책임질 것.
수많은 내 선택들이 내 현재를 만들었고, 아마도 지금 내 선택이 내 미래를 만들 것이다.
지금은 버티는 시간인가 보다.
내 선택들이 모여 또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 역경이나 기다림도 필요한 법이다.
언젠가는 잘했다고 나를 토닥이는 날이 오기를.
좌절해서 쓰는 이 글도 언젠가는 추억이 되어 읽는 날이 오기를.
갑자기 이렇게 그리면 틀린 거 같죠?
틀렸다고 생각이 들면 거기에서 다시 그려나가면 돼요.
그렇게 그렸다면 그 모양이 맞아요.
틀리는 건 없어요.
그런 색깔로, 그런 모양으로 살고 싶나요?
그럼 그렇게 살면 되는 거예요.
- 김민철 작가님의 파리 산문집 [무정형의 삶]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