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로진 Jan 26. 2021

알코올중독자의 실패담

나는 또 실패했다

성공사례는 많다. 이렇게 힘든 상황이었지만 이겨냈다, 극복했다. 이제는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당신도 나와 함께 성공하자.


중독을 다룬 수많은 책을 읽었다. 중독은 내 삶의 과제고 내 뼈에 새긴 DNA이기 때문이다. 중독에 관한 글은 대개 중독 대상을 끊어버리고 난 후, 관조적 태도로 쓰인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일까. 


술에 관한 나의 실패를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다. 여기서 내가 자기연민이라거나 동정심을 유발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나는 실패했다.

알코올중독 치료도 실패했고, 우울증 치료도 실패에 가깝다. 나는 여전히 술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늘은 딱 3잔만! 이라고 약속을 해도 스스로 어겨버린다.


중독자들에게 합리화는 딱 맞는 옷 같. 불가능의 역사도 필요하지 않을까? 모두가 성공을 말할 때,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지만 아직 단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어쩌면 그 어떤 종류의 싸움에서도 이겨본 적 없는 사람의 역사.


나는 지금 맥주를 마신다.


잠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수년의 연구와 치료 끝에 나는 이제 잠이 오지 않는 이유가 술을 마시고 싶어서라는 걸 안다. 술을 마시면 잠을 잘 자는 게 아니라, 술을 마셨다는 만족감으로 잠든다.


오늘밤엔 술이 없었으므로 나는 잠이 오지 않고, 합리화를 하며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갔다. '다들 혼자 맥주 한 캔씩은 하잖아'


밖에 나가지 않는 일상이 이어지면서 이른바 '홈술'이 유행하고 있다. 그럴싸한 안주로 테이블을 꾸미고, 태블릿으로 넷플릭스를 보며, 가볍게 맥주 한 잔 정도 곁들이기. 인스타그램에 #홈술 을 검색해보면 9만 개가 넘는 게시물이 나온다.


그 해시태그로부터 나만 이러고 있는 건 아니라는 위안을 받는다. 그들과 달리 나의 테이블 위는 안주 하나 없이 휑하더라도. 이 재미없는 테이블에서 재미있는 건 나 하나인 듯 한데, 내가 재미있으면 된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도대체 무슨 재미가 있는가 하면...


결국 즐겁지도 않은 음주를 습관처럼 하고 있다는 답을 내릴 수밖에 없다.


알코올중독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사실 나 스스로가 그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소주 대신 맥주로 주종을 바꾸고, 정말 잠이 오지 않을 때만 딱 한 캔만 하자. 그런 부질없는 약속들이 넘쳐난다.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늘어갈수록 죄의식은 두터워진다.


나의 부모에 대해, 애인과 친구에 대해, 나에 대해, 지나가는 무엇인가에 대해, 밤늦게까지 불을 끄지 않는 것에 대해. 죄의식의 스펙트럼은 넓다. 내가 장녀라서,  내가 가난해서, 내가 회사에 취직하지 않아서, 그러다 보면 내가 나라서, 그래서 그렇다고.


나는 온갖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창밖을 내다본다. 창밖에 아파트가 보이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중 한 호는 언제나 한밤중까지 불이 켜져 있다. 맥주를 마시며 그 집 불빛에 초점을 맞춘다. 늦은 밤까지 뭘 할까, 혹시 저쪽도 혼자 술을 마시는 건 아닐까,


인간은 쉽게 중독된다. 우리는 나약하다. 술에, 스마트폰에, 커피, 담배, 탄수화물, 그리고 나쁜 관계에, 자신을 해치는 방식들에.


하지만 중독자들이 본인의 탓을 해서는 안 된다. (이것도 합리화일까?) 무언가에 중독되면 나약한 본인에게 화살이 돌아가기 마련이지만, 사실 중독은 유전적 형질을 갖는다. 내가 쉽게 중독된다면 내 조상의 조상의 조상들이 중독의 DNA를 가졌기 때문이다.


나는 술에 취약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내가 고른 건 아니고 태어나 보니 그렇게 됐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등등이 중독에 취약했다. 우리는 스스로 원하지도 않았는데 중독되었고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법도 알지 못했다.


그나마 나에게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중독자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 하나겠다. 나는 내 스스로 중독을 말할 줄 안다. 중독 유전자는 세대에 세대를 거듭하면서 드디어 자아를 갖게 되었다.


이 자아가 비대해져서 본체 자아의 자리를 넘보려 할 때,  어디에선가 문제가 스물스물 기어나온다. 대단한 빌런이다. 내가 만들고, 내 창조물에 전복당하는 형국이다.


어쩌다 보니 자기연민과 동정심 유발만이 남은 것 같다. 애주가들의 말과 글을 볼 때마다 나는 어떻게 술을 그저 사랑하기만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사랑에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술을 사랑하는 나에게는 불면과 불안과 부정기적인 심장박동과 히스테리와... 이루말할 수 없는 것들이 함께한다. 운명처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지쳤고, 술을 사랑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일은 아직 너무 어렵다.


어쨌든 나는 실패했다. 그러나 나의 실패가 누군가의 무력함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술 없이 못사는 것과 적당히 조절하는 방법을 언젠가 찾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것은 나의 평생 과제다. 지도교수가 누구인지는 몰라도(알 것 같기도 하다) 진짜 가만 안 두겠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다정한 중독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