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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Jan 08. 2021

나의 다정한 중독에 관하여

다시 시작하는 프롤로그

작년 겨울, 배민커넥트를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운동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은 것이었다. 하루에 한 시간씩 열심히 달렸다. 춥고 눈오는 밤마다 가방에 음식을 싣고 이 집 저 집 초인종을 눌렀다. 운동도 하고 용돈도 번다는 사실이 매일 밤 취해 잠드는 한심한 나의 밤들을 상쇄해주는 것만 같았다.


브런치에 배달과 관련한 글도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 해도 배민커넥트가 이렇게까지 많지 않았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조금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작년 봄, 배달을 그만두면서 브런치 글도 그만두었다.


완전한 타의였다. 나는 배달이 즐거웠고 배달의민족이 라이더들과 업주를 착취하는 구조 속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일이 재미있었고 구석구석 낯선 동네를 훑는 일이 좋았다. 자전거가 지나는 골목마다 그 동네만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느 날 밤이었다. 자전거 타고 골목길끼리 접하는 삼거리에서 또 다른 배달 오토바이와 부딪힐 뻔했다. 치킨 업체 배달부였는데, 오토바이는 속도를 줄이지 못했고(않았다, 고 말하는 건 그래도 한때 동종업계에 종사한 사람으로서 예의가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속도를 줄이지 않은 게 맞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잡았다.


자전거는 앞으로 굴러 고꾸라졌다. 바구니가 다 찌그러졌지만 나에게 내재된 낙법이 제법 훌륭했는지 나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 순간에는 하나도 아프지 않아서 그대로 자전거를 타고 4km를 달렸다.


결과적으로 나는 손목에 깁스를 한 채로 봄을 보냈다. 한동안은 손목에 힘이 안 들어가 자전거를 못탔다. 다치고도 자전거를 또 타냐, 할 수도 있겠지만 자전거란 그런 물건이 아닌가. 넘어지고 또 타고. 세 발에서 두 발 자전거로 업그레이드하던 시절부터 우리는 자전거 타다 엄청나게 넘어진다.


하여간, 그리하여 나의 짧은 배달부 인생은 끝났다.

그 뒤로 뭘 했는가 하면, 배달 없는 긴긴 밤을 술로 지새웠다. 매일매일 빠짐없이 술을 마시고 성실하게 후회했다. 술이 없는 밤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알콜중독 상담소에 내 발로 걸어들어갔다.


술과 중독에 관하여, 할 말이 많다. 나는 대대로 내려오는 중독자 집안의 딸로서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뮈듯 어떠한 금주의 유혹에도 꿋꿋이 술을 마시는 인간이다.


다시 시작할 힘을 주는 것은 또한 글이므로, 나의 치료는 어쩌면 글이 되겠다.


내가 좋아하는 번역가가 쓴 옮긴이의 말에서, "술을 끊은 뒤에 여성이 쓴 술 이야기를 술 없이 읽는 취미를 들였는데"라는 한 구절이 나로 하여금 다시 쓰는 인간이 되고 싶게 했다. 언젠가는 그 선생님과 술 얘기를 술 없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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