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형 콘텐츠의 시대

'왕과 사는 남자'의 성공을 돌아보며

by 명지바람

<왕사남>이 1500만을 넘겼다. 상업적으로 뛰어난 성취를 거둔 왕사남에 대해 여러 평론가와 리뷰어들이 말을 얹었다. 어떤 이들은 '그럴만한 영화였다'고 진단하는 반면, 혹평을 남기는 이들은 '그 정도의 성취를 거두기에는 후진 영화'라는 평가를 남기기도 한다. 재밌게도 양 극단에 위치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요소가 있다면 왕사남은 '쇼츠형 영화'라는 지점이다. 보통 영화는 씬과 씬 사이의 유기성, 그러니까 정교하게 설계된 흐름을 잘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걸 잘 하기 위해 영화는 감독(연출자)의 역량을 강하게 요구한다. 그러나 왕사남은 그런 스타일의 영화가 아니다. 씬과 씬 사이에 연결점이 그리 명확하지 않다. 왜 이런 호흡으로 편집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씬과 씬 사이에 간극 - 혹자는 뜬금없다고 비평한다 - 은 일반 관객들도 쉽게 담지할 정도로 헐겁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쇼츠형 영화'라 폄하하며, 각 장면들의 도파민들은 살아 있지만 하나로 연결하면 괴상망측하다고 평가한다. 반면, 각 씬의 도파민이 확실히 보장되어 있기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지루하지 않게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긍정론자도 존재한다. 재밌게도 하나의 현상 - 쇼츠형 콘텐츠 -을 각각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건 비단 왕사남만의 현상은 아니다. 애니메이션 역시 이런 흐름을 타고 있다. 작년 한 해 각광을 받았던 '체인소맨 레제편'을 예로 들어보자. 영화의 이음새는 그렇게 탄탄하지 않다. 갑자기 나타난 폭탄 악마가 덴지(체인소맨)와 결투를 벌이더니, 갑자기 마지막에는 덴지에게 돌아간다. 물론 서사의 개연성을 챙기기 위해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끼어넣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조망해보면 분명 이상한 흐름이다. 초반 레제편을 비판하던 이들은, 콘텐츠 전개가 이상하다며 '쇼츠형 애니메이션'이라는 지적을 했었다. 분명 도파민 넘치는 부분 부분은 재밌지만, 이를 하나의 '영화'로 엮는 순간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지적. 물론, 레제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며 비판을 무시한 이들도 많았지만 개연성 차원에서 '쇼츠형'이라고 지적한 부분은 분명 의미심장한 지점이 있다.


이는 재작년과 작년,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진격의 거인'에서도 관찰된 지점이다. '땅울림'의 임팩트에 가려, 세세한 서사와 개연성은 뭉개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진격의 거인의 웅장함에 환호를 보냈고 서사보다 캐릭터, 그리고 이들의 향방에만 관심을 가졌다. '쇼츠형'이라는 게 원래는 멸시 혹은 비난의 용어로 사용되었지만 어느 순간 상찬의 언어로 바뀐 꼴이다. 전통적인 서사 방식이 소멸하고, 도파민을 확실하게 챙기는 전개가 더 중요한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30초도 길다고, 3줄 요약을 주구장창 부르짖는 이들에 맞춰 콘텐츠의 구조가 붕괴된 것이다. 짧은 단락의 도파민이 확실하다면, 전체 이야기는 '아무렴 어때'의 꼴이 된 것이다. '한잔해'라는 말로 대표되듯이, 무언가 전체적인 만듦새에 천착하는 이들의 행동이 '꼴불견'이 된 시대다. 오히려 이런 서사/구조의 내구성에 관심 갖는 이들을 고루하다며, 핀잔하는 게 요새 콘텐츠 시장의 흐름인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도, 애니메이션도, 만화도, 웹툰도 지금 '쇼츠형' 스타일로 변화하고 있다. 사실 변화는 필연적이다. 시장에게 선택받지 못한 상품은 철저하게 버려지고, 차가운 자본주의 아래에서 숫자가 진리이자 답인 가운데 이를 외면하는 건 '죄악'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쇼츠형 콘텐츠, 정확히는 도파민 넘치는 전개를 크리에이터에게 자꾸 강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적응한 자들은 쇼츠형 스타일로 콘텐츠를 만들고 있고, 반면 이에 저항하는 이들은 자연스레 소멸하거나 외면당하게 된다.


게임 영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관찰된다. '붉은 사막'의 경우가 그러하다. 분명 전체적인 만듦새는 조악하지만, 부분적인 콘텐츠에서 도파민을 채워주는 이 게임은 전통적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평론가들에게 외면당했지만, 게이머들에게는 지지를 받고 있다. 보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전통적인 구조와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외면하지만 찰나의 도파민과 재미가 더 중요한 이들에게는 칭찬을 받는 게 '붉은 사막'이다.


짧은 순간, 압축적인 그 '주목 시간' 내에 어떻게든 만족감을 주는 게 이제 크리에이터의 일이 되었다. 쇼츠와 릴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제 모든 크리에이터들은 이러한 형태의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 당연명제처럼 주어진 이 충격 속에서, 사람들은 변화의 흐름을 조금씩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AI 시대가 도래하고 나서 사람들이 AI 시대의 충격을 서서히 체감하듯이 말이다. 물론 여기서 서사의 종말을 이야기하며 '이러면 안된다'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변화의 적응에는 혼란기가 있고, 지금 이 혼란기 속에 사람들이 나름의 정답을 찾는 게 지금의 혼란이다. '쇼츠형 콘텐츠'가 지배종이 되어 사람들에게 퍼지는 지금, 내가 어떤 식으로 콘텐츠를 구성할 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선택압에 맞서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다. 변화의 물결에 저항하기보다 물결에 탑승해서 그 흐름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는 게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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