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한국인만 제대로 된 '한식'을 내놓을 수 있는가?
해외에서 살다보면 한식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해외에 있는 한식당을 찾게 되고, 거기서 맛본 한식으로 잠시 향수를 달래곤 한다. 요즘이야 K의 힘이 강력하고, 여러 곳에서 한국 음식들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과거 뉴질랜드에 살았을 때는 한식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맛있는' 한식, 한식다운 한식을 맛보는 건 사치에 가까운 일이었다. 고급 레스토랑에 가까운 한식집을 찾더라도 무언가 한식답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고, 결국 한국에 돌아가서 한식을 먹는 게 맞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한국에 돌아와서 이런 경험을 이야기하면, 다른 이들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한식은 역시 한국에서 먹어야 한다. 해외에서 한식을 제대로 구현하는 곳을 찾기 너무 어렵다. 사실 재료를 생각해보면 해외에서 한식을 제대로 먹는 건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 등등. 간혹 제대로 된 한식을 맛본 이들은 꼭 그런 건 아니라면서 한국에서만 제대로 된 한식을 맛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항변한다. 제대로 된 한식집을 경험하지 못해서 그런거라는 이야기. 물론 틀리지 않다. 제대로 된 데를 찾는 게 정말 어려워서 그렇지 해외에서 맛있는 한식집을 찾을 확률은 제로가 아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해외의 한식 맛집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집이라는 것.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 '한국인'이 제대로 된 한식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른 국가 사람들은 한식을 재현할 수 없고, 오직 한국인 손 맛으로만 구현 가능하다는 이야기.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을 뿐더러 인종차별적 함의까지 들어간 발언이라 할 수 있다. 눈을 돌려 프렌치 퀴진을 생각해보자. 한국에서 활동 중인 프랑스 요리 전문가들은 굉장한 요리 솜씨를 뽐내며 프랑스보다 '더 프랑스'다운 요리를 선보인다. 본토 프랑스인들도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한국인 셰프가 만든 요리인지, 프랑스인 셰프가 만든 요리인지 구분 못할 정도로 말이다.
중국 음식은 어떠한가? 여경래 셰프나 후덕죽 셰프의 사례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장쩌민 같은 중국 고위층들도 엄지를 치켜들게 하는 중국 본토의 맛. 요리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중국 셰프들도 한국에서 만든 중화요리를 맛보면 충격에 빠지는 일이 많다. 중국보다 더 본토에 가까운 요리를 구현하는 요리사들의 노력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말이다. 셰프의 국적이 중요하지 않다. 결국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솜씨가 요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꼭 한국인 셰프가 아니더라도 한식의 맛을 구현하는 외국인 셰프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조셉 리저우드(Joseph Lidgerwood) 셰프가 대표적으로,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에빗(EVETT)의 소유자인 그는 한식을 제대로 구현하는 셰프다. 제육볶음, 간장게장, 고등어 김치찜 등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스럽게 요리를 만들어 낸다. 눈을 가리고 그가 만든 음식을 맛보면 한식 셰프가 낸 요리인지, 외국인 셰프가 낸 요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결국 '누가' 요리를 만드는 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요리의 정체성을 '핏줄'로 규정하는 것은 인종주의적 차별 의식을 드러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Project KOR' 프로젝트를 시도한 한국인의 행동에 많은 이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기획자인 김승현 씨는 "해외에서 한식을 찾는 과정에서 손님들이 어떤 식당이 실제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말하며 품질 좋은 한식을 외국인들이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차원에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을 기준으로 삼아,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한식당을 전수조사했고, 기준에 합당한 94곳에 Project KOR 스티커를 붙였다. 만약 프랑스 파리에서 누군가가 제대로 된 한식을 먹고자 한다면, 그가 붙인 Project KOR를 참고하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말한대로 K, 한국음식이 인기가 높다보니 중국이나 일본인들 가운데 한국 음식'스러운' 요리를 내놓고 판매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자신이 먹고 있는 한식이 정말 한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음식인지 아닌지 모르기 때문에, 불쾌한 음식 경험 하나로 한식이 '맛없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기획자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스티커를 부착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인종차별적인 의도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게 아니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가 운영하고 있는 인스타그램에서는 이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누군가를 차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그의 의도가 상관없이, 스티커 부착은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이 스티커는 '한국인'만 제대로 된 한식을 내놓을 수 있다는 인식을 은연중에 포함하고 있다. 한국인이 아닌 인종이 한식을 만들면 그 음식은 품질이 낮은 한식이 되는가? 그건 알 수 없다. 오히려 Project KOR 스티커 인증을 받은 업체에서 내놓은 한식이 더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 누가 만들든 한식의 요체만 제대로 담겨 있다면 그 음식은 한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꼭 '정통 한식'일 필요도 없다. 이미 여러 요리에 영향을 받아 새롭게 만들어진 한식이 존재한다.
양념치킨이 대표적이다. 전통 한식은 아니지만 이제 양념치킨은 '코리안 스타일 치킨'으로 세계 곳곳에서 판매되고 있다. 흑인들이 만든 후라이드 치킨에서 영향을 받아 한국식으로 변형한 요리도 엄연히 한식으로 인정받아 해외에 판매하고 있다. 여러 인종이 '한국식 스타일'로 만든 요리들이 어느 순간 '한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이는 한식의 외연을 넓히는 길이다. KOR 스티커를 붙이면 이런 외연의 확장 가능성을 스스로 닫는 길이 될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만이 아프리카 음식을 잘 내는 것도 아니고, 인도 사람이 꼭 인도 요리를 잘 내라는 법은 없다. 인종으로 기준을 삼은 이 프로젝트는 의도와 상관없이 굉장히 무례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음식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런 기준은 수정할 필요가 있다. 태국 정부에서 시행하는 '타이셀렉트(Thai SELECT)'가 좋은 선례라고 할 수 있다. 타이셀렉트는 '정통 태국요리의 구현'을 기준으로 심사하는데 특정 국적이 아니라 조리 방식, 재료, 메뉴 구성, 위생과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인증한다. '코리아 셀렉트(Korea SELECT)'처럼 기준을 선정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의도가 좋다고 해서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도를 방패삼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상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P.S. 결국 K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K팝에서 이미 제기된 문제로, 한국인 멤버가 포함되어야만 K팝인지, 아니면 한국인 멤버가 없어도 K팝의 독특한 성질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지 많은 논쟁이 있었다. '캣츠아이'의 등장으로 많은 제작자들이 고민하는 부분으로 알고 있다. 무분별하게 남용되는 K에 대해 내부적으로 정리가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