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나의 덧니.
그가 언제 내 인생에 나타났는진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기억하실까?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내 입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아무리 어미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한들, 그런 것까지 상세히 알기를 기대할 수 없다. 덧니 하나가 나타나고 다른 쪽 덧니가 나타났는지, 아니면 동시에 같이 나타났는지. 왼쪽이 먼저 나타났는지 오른쪽이 먼저 나타났는지. 그런 건 아무도 모른다.
내가 아는 그의 첫 역사는 치과에서 돌아오는 길의 한숨이었다. 유년시절, 백화점 꼭대기 층에 있는 큰 치과에 갔다. 단순히 상한 이를 손 보려 들렀는데, 의사 권유로 엑스레이를 찍었다. 물가 따위 모르는 입장에서 헤아릴 수조차 없는 견적을 받았던 모양이다. 엄마 아빠는 한숨을 쉬었고, 나는 눈치를 보았다. 아, 이런 게 왜 내 안에 생긴 걸까!
다음 역사는 집안 어르신의 꾸지람이다. "아 이빨을 아직 저래 놓으면 어짜노." 지금은 돌아가신 큰 이모부께서 어머니를 나무라셨다. 나는 또 눈치를 보았다. 내 입 안 사정으로 인해 어머니가 모두 앞에서 혼나는 건 원치 않았다. 최근 이 마음을 털어놓았더니, 어머니께선 놀라운 말씀을 해주셨다. "그 양반도 치아가 고르지 못했으니 신경이 쓰였던갑지" 정말 사람은 타인의 치아 같은 것엔 관심 없다. 나조차도 그랬던 거다. 어쩌면 이모부께서는 그때 이미 내가 겪을 일들을 짐작하셨던 걸지도 모른다.
그 일이라 함은 놀랍게도 성희롱이었다. 일상의 평범한 순간이었다. 나는 그저 그런 통닭구이를 사 먹으려고 캠퍼스 앞에 종종 오는 트럭 앞에 서있었다. 아저씨는 닭 세 마리를 요상한 봉투에 담아주면서, 담지 않아도 될 농담까지 쥐어주며 낄낄거렸다. 나는 내 덧니가 보일까, 웃지 못했다. 닭을 사지 않고 트럭을 지나가야 하는 날에도 나를 알아볼까 목도리를 올려 입을 가렸다.
돌보아야 할 것이 아주 많은 시간들이었다. 무시하면 그만인, 겨우 두 개짜리 반항적인 치아보다는 무시무시하게 크고 곤란한 문제들. 그것들은 내 밖에서 당장이라도 우리를 덮칠 것 같았다. 그 사이, 나는 입을 가리거나 고개를 꺾어 웃는 습관, 웃는 얼굴이 나온 사진은 삭제해 버리는 습관을 키우며 동시에 이 작은 송곳들과 친해지는 법을 익혔다. 특이하잖아! 남들에겐 없는 것이지. 앙 하고 송곳니를 입술을 부딪으면 동물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친절한 사람들의 칭찬도 도움이 됐다. 귀엽다거나 트레이드 마크라니 하는 말들. 이가 뾰족하지만 귀여운 캐릭터들도 사랑하기 시작했다. 동질감이었을까, 이가 뾰족해도 귀여울 수 있다고 믿고 싶었던 걸까.
나는 말뚝처럼 깊게 박힌 덧니로 인해 알게 모르게 박인 상처들은 멀리하고, 최선을 다해 좋은 점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오늘, 덧니의 역사는 끝났다. 15분 만에 뽑혀나갔다. "우리가 어릴 때 손 봐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부모님의 죄책감도 빠르게 뽑혀나가면 좋겠다. 나는 한때 눈이 나빠 안경을 쓰는 것조차 나 자신을 구성하는 큰 요소라 생각했는데, 돈을 모아 라식수술을 하고 나서 깨달았다. 그건 내가 어쩌지 못했던 특성일 뿐, 나를 정의하지 못한다. 나를 정의하는 건 외적인 것에서 오지 않는다. 모든 것은 내 안에서 일어나고, 켜켜이 쌓인 나만의 역사들이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제 덧니와는 시원하게 작별이다. 잘 가, 나의 덧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