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의 사치

골목 카페의 다정함

by 잰니

10월의 두 번째 대체휴일. 내게는 첫 번째 대체휴일이었다.

평일 야근만으론 도저히 처낼 수 없는 업무 탓에 황금 같은 대체휴일에 출근해야 했다.

남들 쉴 때 일해서인지, 평소보다 더 힘든 주 5일을 마감하고서 다시 월요일. 쉬는 월요일이다.


야근의 굴레와 바이러스 집단감염의 압박으로 무 약속으로 살고 있다.

약속이 없으면 주말엔 통 나가질 않고, 나가지 않으면 잠만 잔다ㅡ놀랍게도 어떤 방해도 받지 않으면 18시간 정도는 너끈하게 잔다ㅡ그러다 보니 정말 ‘나 - 일 = 0’이 됐다. 우울감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여, 집 근처 카페 투어를 시작했다.

가보지 않은 여러 카페에 가서 독서와 글쓰기로 다시 나를 오롯이 채우려고.


이번에도 알아둔 카페가 있었는데, 이런 웬걸! 월요일 휴무! 생각도 못했다.

허무한 것도 잠시, 집 근처 아담한 카페가 떠올랐다. 월요일 오전 9시부터 금요일 오후 6시까지.

정확히 내 근무시간에 맞춰 오픈하는 곳이었다. 얼마나 칼 같은지! 요즘처럼 개인 에스엔에스에 오픈 시간이나 급작스러운 휴무일을 알리는 트렌드와는 너무 동떨어져있는, 이른바 칸트처럼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래, 월요일. 대체휴일의 진가를 누려보자!

혹시 대체휴일이라 쉬시진 않을까 염려했지만, 역시나 문은 밝게 열려있었다.


카페 문 앞에는 항상 여러 종류의 화분이 진열돼있다. 오늘은 중년 남성 몇 분이 입구를 막을 듯 말 듯 서서, 화분을 하나하나 가리키고 있었다. 얼마 전 유행했던 ‘한사랑 산악회’ 같은, 친근하고 무해하지만 다소 시끌벅적한 목소리를 가진 무리였다.


‘혹시 영업을 방해 하시진 않겠지..?’

걱정하며 가게에 들어섰다. 주문을 완료하고 자리에 앉을 때까지도 남성들은 무슨 얘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뭐라 뭐라 소리 높이며 밖에서 대화를 나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가게는 몹시 아담해서, 작업하거나 독서하는 한두 명의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있곤 했다. 여느 교회 옆의 빵집처럼 예배를 마치고 잠시 친목을 다지러 온 어른들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야외의 중년 남성들은 더욱 뜻밖인 손님들이었다.




“아빠, 원래 그런 커피 안 좋아하지 않아?”


아… 사장님의 말이었다.

그 한사랑 산악회 아저씨 중 한 분이 가게 사장님 아버지였다.

친구들이랑 딸이 운영하는 카페에 와서 진열된 화분을 구경하고,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얘기해주며,

혹여나 가게 영업에 방해될까 가게 안에 들어오지도 않고

길가에 서있다가 커피만 테이크아웃 해가는 아버지!





4~5년쯤 전, 부모님께서 고향의 작은 바다가 보이는 길목에서 카페를 하신 적이 있다.

여러 가정 상의 문제로 길게 운영하진 못했지만, 모처럼 성공할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곳이었다.


가게는 반을 가로질러 한쪽엔 다양한 크기의 거울과 옷장 등의 앤틱 가구, 향초, 액자가 놓여있었고,

한쪽은 청록색 의자가 무심한 듯 놓인 카페 손님 공간이었다.

오늘 내가 들린 카페처럼 흥겨운 클래식이 흘렀고,

작은 체구의 어머니가 당신보다 몇 배는 큰 커피머신에 매달려 탬핑을 했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 같이 출근했다.

오전 커피를 취향대로 나눠 마시고 어머니는 주방을, 아버지는 화장실과 실외를 청소했다.

나는 테이블 몇 개만 닦고, 공간에 울려 퍼질 음악을 골랐다.


손님이 오면, 아버지는 채 문이 열리기 전, 주방 뒤 창고에 들어가셨다.

한 평도 채 안 될 공간이라 의자 하나 둘 여 유공 간 뿐이었는데

몇 시간이고 손님이 갈 때까지 그곳에 앉아계셨다.



“이런 데 늙수구레한 사람 있으면 보기 좋나.”


그런 이유에서였다.

확실히 아빠는 중년 부부가 오손도손 운영하는 작은 카페 이미지에 흔히 떠올릴 모습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뭐랄까… 항상 스포츠 브랜드 캡 모자를 쓰고, 폴로 반팔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덩치 좋은 아저씨.

큰 얼굴에 안경 낀 얼굴이 지적인 느낌의 중년이었다.

뭐, 카페를 운영하는데 안성맞춤인 이미지가 어디 있겠냐마는.


지금은 기억에만 남아있는 카페지만,

혼자 창고에 스스로를 감금했던 아버지 모습과 그 마음은 문득문득 떠오른다.

특히 오늘처럼 가게 사장님의 아버지를 만났을 때는 더욱.




“바닐라라테 따뜻하게 한 잔, 나왔습니다.”

카페 사장님 아버지와 친구분들이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사라졌을쯤.

사장님의 부름에 얼른 카운터로 갔다. 사장님은 밝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요전에 오셨던 분 맞죠?”


맞다. 요전에 한번 재택근무 중에 바람도 쐴 겸, 커피를 사러 들린 적이 있다. 반년 전? 아니 1년 전?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사장님은 밝게 웃으며 처음 오신 떠나며 인사를 건넸고,

내 금빛 안경테를 칭찬하며 어디서 살 수 있느냐 물었다.


“네, 맞아요! 근데 어떻게 기억하세요?”

“그때 안경 여쭤 봤었죠? 마스크 때문에 요즘은 얼굴은 몰라도 목소리로 알아요.”

“세상에, 그래도 어떻게 알아보셨지?!”


목소리가 특이한 편도 아닌(?) 데. 안경은 금빛 브리지 안경테기 때문에 다소 특이할지도.

동네 외출복도 거기서 거기니까 비슷하게 입고 왔을지 모르겠다.

동네 카페란 이런 정에 오게 되는 걸까?





사장님께 받아 든 바닐라라테가 따듯하고 달콤했다. 역시 최고의 선택.

평일도 아니고 업무를 봐야 하는 것도 아닌데 쓰디쓴 아메리카노는 좋은 결정이 아니었다.


늦은 공휴일 오후의 라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오토바이 여러 대가 붕붕거리며 골목을 누볐다.

동네 놀이터에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어머니, 할머니들이 가득했다.


대체휴일이지만 쉬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덕분에 누린 간만의 여유로움이

월요일의 사치가 아닐지. 생각해보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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