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에 훌쩍 배낭 메고 홀로 떠난 행복했던 걷기 여행기
경로: Alesjaure 전방 10km 지점 -> Tjäktja 전방 4km 지점
걸은 거리: 22km (아이폰 건강 App)
걸은 시간: 6:20 ~ 16:00
난이도: 하
강평: 포기할 것은 빨리 포기하면 편하다. 안전에 대한 주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루의 생활이 극도로 단순해지고 있다.
피곤하기도 하고 저녁에 특별히 할 것이 없어서 저녁 6시 ~ 7시면 잠이 든다. 이렇게 일찍 자니 새벽 3시경이면 일어난다. 하루를 계획하고 아침을 지어먹고 짐을 정리하고 새로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게 아침 6시 ~ 7시이다. 거리에 따라 오후 4시 ~ 5시까지 걷는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오늘도 눈을 뜨니 새벽 2시 30분이다. 밤새 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는데 새벽에 좀 잠잠해진 듯하다. 새벽이고 비가 내리고 있지만 백야라 대낮처럼 환하다.
오늘의 아침 메뉴는 따뜻한 참치죽이다. 지금처럼 비 오는 날에 제격이다
따뜻하게 배를 채워 든든하기는 한데 비가 내려 살짝 우려가 된다.
출발을 하고 어느 정도 걷다 보니 안경을 안 쓰고 있음을 발견했다. 또다시 어이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눈이 그리 좋지도 않은데 안경을 안 쓰고 있음을 인식하지도 못했다니... 더 어이없는 것은 안경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걸으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어제 자기 전에 텐트 안의 물품 넣는 작은 공간에 안경을 두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십중팔구 안경은 텐트 안에 있고 아침에 텐트를 싸면서 안경은 텐트와 함께 둘둘둘 말려서 저 배낭 아래에 메어져 있다는 것인데...
상상이 되었다. 부러진 안경테, 으스러진 안경알. 텐트에 여기저기 흩어져있을 안경의 파편들... 으...
정말 안경이 텐트 안에 있는지, 부서졌는지, 산산이 흩어졌는지 궁금하여 걸음을 멈추고 짐을 다시 풀어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비도 오고 짐을 풀기가 너무 번거로워서 그냥 체념하고 걷기로 했다.
오늘 저녁에 텐트 칠 때 찾아보면 되겠지...
걷는 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한 발 두발 걷다 보면 어느새 풍경이 변해있고 좀 전의 풍경은 뒤쪽으로 까마득히 멀어져 있다.
안경을 안 쓰고 있지만 그리 불편함을 모르겠다. 공기가 깨끗하고 자연이 넓어 가까이 볼 일이 없어서 그런지 느낌상 안경을 쓰고 있을 때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래서 안경을 안 쓰고 있다는 것을 출발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인식한 것인지도...
지금까지 몇 번의 개울을 건넜다. 철 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나무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돌멩이를 밟고 건너기도 했다. 급류에 길이 유실된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우회하던지 하여 지금까지 신발을 적시지 않고 물을 건널 수 있었다. 그런데, 알레스야우레(Alesjaure) STF Hut에 도착하기 약 2km 앞에서는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몇 번을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하며 방법을 모색해보았다. 결론은... 발을 적시지 않고는 없다!이다.
마침 저 다홍색+노란색 텐트의 주인공이 양치를 하러 나왔길래 이 급류를 어떻게 건너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스웨덴 사람으로 강아지와 함께 아비스코(Abisko)에서 헤마반(Hemavan)까지 쿵스레덴 전 코스를 걸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어젯밤에 이곳에 도착해서 이곳에서 하루 자고 잠시 후에 이곳을 건널 예정이라 그도 아직 좋은 방법을 모른다고 했다. 그는 고맙게도 발을 적셔가며 얕고 폭이 좁은 곳을 찾아주었다. 그가 제시한 방법은 두 가지로 하나는 최대한 발을 안 적시고 중간까지 가서 배낭을 건너편으로 던지고 가벼운 몸으로 길게 점프를 하는 방법과, 또 다른 하나는 그냥 쿨하게 발을 적시며 건너는 방법이었다. 내가 봐도 그 방법밖에 없었다. 근데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만 이틀을 넘게 걸으면서 이렇게 발을 적시게 길이 되어있는 곳을 전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디엔가 제대로 된 길이 있을 것이라고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지만 결국은 포기했다.
이제 고민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건널 것인지, 아니면 그냥 신발을 신고 건널 것인가였다. 이 문제를 갖고 고민하고 있는데 전에 봤던 여성 여행객 두 명이 도착했다. 그들과 함께 셋이 다시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결론은 어쨌든 적시며 건너는 것뿐이었다.
물살도 약하지 않고 돌멩이는 미끄러워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건너는 것은 너무 위험해 보였다. 그냥 과감히 등산화를 신고, 물론 안에 양말도 신은 채로 물을 첨벙거리며 건너기로 했다.
내가 먼저 물을 건넜다. 나름 가장 폭이 좁으면서 얕은 곳을 찾아서 건넜다. 물은 살을 에일 듯이 차가웠다. 처음에만 망설이지 막상 첫발을 디디면 그다음부터는 어렵지 않다. 미련을 버리고 과감하게 물속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새로운 재미와 뭔지 모를 흐뭇함, 뿌듯함, 뭔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이 들었다.
급류를 무사히 건너 뒤를 돌아보니 그 두 여행객도 내가 건넜던 곳으로 함께 건너고 있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두 여성 여행객은 스코틀랜드에서 왔고, 아비스코 투리스테이션(Abisko Turistation)에서 니칼루옥타(Nikkaluokta)까지 여행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 셋은 급류를 건너고선 왠지 모를 즐거움에 깔깔대며 함께 웃었다.
그 둘은 등산화와 짐을 추스리기 위해 잠시 그곳에 머무르고 나는 먼저 출발했다.
그러다가 잠시 후에 다시 발을 적실 수밖에 없는 급류를 발견했다. 아까보다 훨씬 규모는 작지만...
어제 탤트래그렛(Tältlägret)에서 출발하자마자 5분 만에 돌을 밟고 중심을 잃어 크게 넘어졌었다. 오늘 알레스야우레(Alesjaure)에 도착해서 아~ 도착했구나~라고 속으로 되뇌며 등산 스틱으로 어딘가 땅을 디뎠는데 그 디딘 게 마침 어떤 돌멩이였고 그 돌멩이가 스틱에 밀리며 굴렀고 등산스틱은 툭하고 미끄러졌고 나는 정말 어~~ 어~~ 비명을 지르며 360도 회전을 하면서 돌과 풀이 뒤섞인 땅에 또 쿠당탕 넘어졌다.
또 역시 절로 'X 됐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얼핏 봐도 몸은 별 이상이 없어 보이는데 목에 매고 있었던 DSLR 본체나 렌즈는 깨졌거나 크게 손상되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어이가 없다. 거기에 있던 돌멩이가 그렇게 쉽게 튕겨나갈 줄이야.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중심을 잃고 대책 없이 빙빙 돌며 넘어질 줄이야. 그렇게 넘어졌는데 내 몸과 카메라와 렌즈에 전혀 손상 없이 멀쩡할 줄이야. 하늘이 도왔다. 바로 짐 싸서 한국으로 돌아갈 뻔한 또 한 번의 위기가 별일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
아까 급류를 함께 건넜던 스코틀랜드 여성 여행자들은 잠시 후 도착해서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알레스야우레(Alesjaure) STF Hut에서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나 홀로 여행이고 여행객이 많지 않아 남이 찍어준 사진이 별로 없는데 몇 장 안 되는 남이 찍어준 내 사진이다. 안경을 텐트 안에 넣고 짐을 싸버린 것 같다. 따라서 안경을 안 쓰고 있다.
알레스야우레(Alesjaure) STF Hut에서 잠시 쉬며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할 예정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