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에 훌쩍 배낭 메고 홀로 떠난 행복했던 걷기 여행기
경로: 셱차(Tjäktja) 전방 4km -> 셀카(Sälka) (STF Hut)
걸은 거리: 22.1km (아이폰 건강 앱)
걸은 시간: 6:00 ~ 16:45
난이도: 상
강평: 셱차(Tjäktja)에서 언덕 오두막까지는 죽음의 눈 길. 먹은데로 기운이 난다. 셀카(Sälka) STF Hut은 이번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은 장소 중 하나.
어제 너무 피곤해서 타프도 안쳤고 밤새 간간히 비도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불어 두꺼운 겨울 침낭 속에 쏙 들어가 잤는데도 좀 추웠다. 봄가을 침낭이 아닌 두꺼운 겨울 침낭을 가져온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겠지만 텐트 위에 타프를 치고 안치고에 따라 텐트 안의 안락함에 많은 차이가 생긴다.
오후 6~7시쯤 자서 새벽 2~3시경에 일어나는 얼리버드(early bird) 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오늘도 새벽 2시 30분쯤 일어났다.
스웨덴 여름의 새벽 풍경을 다시 보자.
자고 일어난 텐트 앞의 새벽 풍경이다.
음식을 잘 챙겨 먹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혼자이고 귀찮고 날도 춥고 하니 그냥 간단히 라면을 끓여먹었다.
라면을 싫어하는 사람도 이런 쌀쌀한 날씨에, 게다가 야외에서, 특히 아침에는 라면이 생각날 거고, 그 맛이 어떨 것이라는 것은 잘 알 것이다.
정말 맛있었다. 정말 정말 맛있었다. 근데 라면은 영양가가 없다.
먹은데로 기운이 난다. 이번에 제대로 알았다. 라면은 영양가는 없다.
짐을 챙겨서 6시에 다시 오늘의 걷기를 시작했다.
일단 오늘의 목적지는 셱차(Tjäktja) STF Hut.
http://www.codyduncan.com/ebooks에서 구입한 ebook에 의하면 셱차(Tjäktja) STF Hut이 쿵스레덴(Kungsleden)에 있는 숙소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셱차(Tjäktja)에 가까이 가면서 날씨는 완전히 겨울 날씨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책에서는 알레스야우레(Alesjaure)에서 셱차(Tjäktja)까지 가는 길이 쉬운 편이라고 했지만 내겐 결코 쉽지 않았다. 그게 아마 라면 때문일 것이다. (영양가가 없어...)
길도 그동안 보지 못했던 돌길이 나타난다.
아침 6시에 출발해서 2시간 만에 Tjäktja 에 도착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어제 도착해서 하룻밤을 이곳에서 묵었을 것이다. 아침 일찍 도착한 나를 보고 다들 놀란다. 혹시 밤새 걸은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스코틀랜드에서 온, 전에 개울을 함께 건넜던 여성 여행객들도 어제 이곳에서 묵었나 보다. 도착한 나를 보곤 엄청 반가워하며 반겨준다. 생면부지인 곳에서 이렇게 반겨주는 사람이 있어 나도 엄청 반갑고 고마웠다.
STF Hut을 제대로 이용하는 것은 처음이다. 앞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시설과 사용 규칙에 대해 이곳 산장지기에게 설명을 들었다.
대부분의 Hut에는 건조실(drying room)이 따로 있다. 6월 한 여름에도 이렇게 눈이 많은 곳이고, 때로는 눈비를 맞아가며, 개울을 발 적셔가며 건너고 진창길도 걷고 하면 옷과 신발, 양말 등은 물 투성이, 진흙 투성이가 된다.
이렇게 젖은 옷가지, 가방, 신발, 양말 등을 벗어서 말리는 곳이 건조실(drying room)로써, 보통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있다. 건조실(Drying room)은 따로 난방을 하는지 열기가 후끈하고, 나름 질서를 갖고 여러 트래커들의 옷, 배낭, 신발, 양말 등이 매달려있기도 하고, 바닥에 놓여있기도 하다.
요리를 해 먹고 쉬기도 하는 주방 및 휴게소에는 취사도구, 식기, 포크 등이 구비되어있다. 물은 주변의 강이나 개울에서 양동이로 담아와야 한다.
Hut에서의 활동은 철저히 자율적이고 협동적이어서 누군가가 대신해주는 것은 없다. 양동이에 물이 부족하면 그걸 발견하거나 부족하게 만든 사람이 직접 물을 떠 와야 한다. 양동이는 보통 4개가 있어서 두 개는 깨끗한 물을 담고, 나머지 두 개는 설거지 등을 한 더러운 물을 담는다. 더러운 물은 slask라고 하고 별도로 버리는 곳이 있다. 물론 이 더러운 물을 버리는 것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데 트래커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다.
전에 호주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 얻은 문화충격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들의 설거지 문화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제가 입안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철저한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세제로 설거지를 하고 나서 식기 등을 흐르는 깨끗한 물로 여러 번 아주 깨끗하게 헹군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물이 묻은 채로 공기 중에서 식기를 말린다.
그런데 호주에서도 그렇고, 여기 스웨덴의 Hut에서도 설거지 방식이 우리와 사뭇 다르다.
아마도 물이 부족하거나 물이 매우 소중하다는 인식이 몸에 배어있거나, 자연의 물이 음용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 그리고 세제가 친환경 세제여서 먹어도 큰 상관이 없는 경우에 그렇지 않나 싶다.
(참고로 여기 스웨덴은 그렇지 않지만 유럽 대부분의 국가의 수돗물은 석회성분이 많아서 그냥 먹을 경우 탈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 여행의 경우 수돗물을 그냥 마시면 안 되고 대부분 생수를 사 먹어야 한다. 유럽의 생수값은 매우 비싸다. 그런 점에서 여기 쿵스레덴(Kungsleden)에서 물이 흔하고 깨끗한 것은 편의성에서도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큰 매력이다.)
호주 아델라이데(Adelaide)에서 앨리스 스프링스(Alice Springs) 까지 버스 투어시에 야외에서 식사 후 설거지 모습이다.
물이 담겨 있는 통이 3개 정도 놓여있다. 첫 번째 통에 세제를 듬뿍 풀고는 음식물 찌꺼기 등이 많이 묻어있는 식기나 수저 등을 그 통에 넣는다. 수세미로 대충 닦아서는 바로 두 번째 통으로 옮긴다. 일부 그릇 등에는 아직 음식물과 양념도 묻어있고, 대부분의 경우 세제가 듬뿍 묻은 상태로 옮겨진다. 두 번째 통에서는 통 안의 물로만 대충 닦아낸다. 그리고는 세 번째 통으로 옮긴다. 세 번째 통에서도 역시 그 통 안의 물만으로 대충 닦는다. 그리곤 꺼내서 천수건이나 종이 티슈로 물기를 닦아낸다. 어찌 보면 음식물 찌꺼기나 세제보다 물기를 더 정성껏 닦는다. 그리곤 찬장 등에 비치한다. 이걸로 설거지가 끝이다. 흐르는 물로 헹구는 과정이 없다. 설거지가 진행될수록 첫 번째 통속의 물은 정말 말할 수 없이 지저분해지고, 두 번째 물, 세 번째 물도 계속 지저분해지는데 별로 개의치 않고 이 과정을 반복한다.
문화적 충격이었다.
여기 쿵스레덴(Kungsleden)의 hut에서도 비슷한 설거지 모습이 펼쳐진다. 여기에서는 물은 (주변에) 풍부하고 깨끗하지만 제한된 양을 길어와야 해서 정작 설거지에 쓸 물이 풍부하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호주에서와 비슷한 방식으로 설거지를 한다. 세제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스웨덴에서는 물은 매우 아껴 쓰는데 종이는 별로 아껴 쓰지 않는 것 같다. Hut의 주방에도, 화장실에도 휴지는 아주 풍부하게 비치되어있었고 사람들도 적당량을 떼어서 쓰는 게 아니고 듬뿍듬뿍 풍부하게 쓴다. 그 티슈로 세제와 물이 묻은 접시 등을 닦는 것으로 설거지를 마무리한다.
나는 아무래도 적응이 되지 않아 hut에 비치된 그릇이나 컵 등을 쓸 때에는 깨끗한 물로만이라도 다시 한번 더 씻고 이용하곤 했다.
Google 등 검색엔진에서 '유럽 설거지', '서양 설거지' 등으로 검색해보면 비슷한 내용의 글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설거지와 비슷한 사례로 영화 등에서 보면 거품목욕 후에 거품이 몸에 가득한데 그냥 수건으로 감싸는 것으로 목욕을 마치는 장면을 종종 보았다. 그게 영화이기 때문이 아니고 이들의 목욕 문화가 그런가 보다. 즉, 세제를 흐르는 물로 헹군다는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설거지나 목욕을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 한국인이 엄청 깨끗하게 설거지나 목욕을 하는 것으로 보일지, 엄청나게 물 낭비를 하는 것으로 보일지 궁금하다.
위의 동영상을 보면 깨끗한 물을 스스로 담아오는 양동이, 설거지를 하는 통, 버너 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휴게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고, 대화도 나누고, 휴식도 취하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 각지에서 온 트래커들의 나라를 핀으로 표시한 세계지도가 걸려있었다. 유럽이 가장 많았고, 아시아에서는 중국, 일본도 있었는데 한국은 없었다.
산장지기에 의하면 작년(2015년) 일 년 동안의 기록이라고 했다. 설마 일 년 동안 한국인이 이곳을 안 왔을 리는 없는데라고 의아해하며 한국지도에 핀을 꽂았다.
Tjäktja Hut 지기(Warden)는 여성으로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 한국인은 드물게 본다며 나를 무척 반겨주었다. 시설 이용법도 자세히 알려주고...
이분이 하는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서 미안하다고 하니 자기는 스웨덴 사람이고 자기는 외국어인 한국말을 하나도 못하는데 그게 당연하지 않냐며, 한국인인 내가 외국어인 영어를 이만큼 하는 것은 정말 잘하는 것이라며 나를 독려해주었다. 크크크...
이곳에서 약 1시간 30분쯤 푹 쉬고 이제 다시 길을 떠나려 한다.
앞으로 어떤 길이 나를 맞이하고 있을 것인가.
자료에 의하면 Tjäktja에서 Sälka 까지는 Hard라고 쓰여있던데...
얼마나 힘들까.... 하... 하... 하...
To be continued...
<댓글은... 사랑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