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헛헛함은 왜 딸들의 숙제가 되었나..

오빠가 남기고 간 빈자리, 그 너머의 모녀 관계에 대하여

by 정은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 남편을 잃고 세 아이를 홀로 감당해야 했던 한 여자가 있었다.

글자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세상에 던져진 나의 엄마.

엄마는 우리를 굶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따뜻하게 품어주지도 못했다.

내 성적표가 어떻게 생겼는지 관심조차 없었던 무심함,

그것이 엄마가 거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선택한 '자기 방어적 이기심'이었음을 안다.



우리 집엔 유독 빛나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였던 오빠.

엄마의 무리한 요구도, 즉각적인 호출도 오빠는 묵묵히 다 받아냈다.

엄마의 세계는 오빠를 중심으로 돌았고,

덕분에 나와 언니는 엄마의 간섭에서 조금은 비껴 나

각자의 삶을 일궈낼 수 있었다.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우리 자매의 대학 진학을 막아버렸을 때도,

우리는 원망보다는 스스로 길을 찾는 법을 먼저 배웠다.

다행히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도 나왔고,

번듯한 직장을 갖고, 다정한 남편을 만나 평온한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평화는 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무너졌다.

쉰다섯, 너무나 젊은 나이에 췌장암으로 떠난 나의 천사 오빠는

엄마의 기둥이자 세계의 전부였다.

기둥이 뽑힌 자리엔 거대한 구멍이 생겼고,

엄마는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이제 나와 언니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문제는 엄마가 원하는 '효도'의 방식이 오빠가 하던 그것과 같다는 점이다.

작년 저녁 가족 모임, 일정 상 모시러 가기가 힘들어서

엄마가 잘 아는 곳이었기에 버스를 타고 오라는 말에 불같이 화를 내던 엄마에게 나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오빠 가고 엄마만 힘들어? 우리도 오빠가 하던 거 감당하느라 버거워!"

그날 이후 엄마는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운함은 자꾸만 다른 곳에서 새어 나왔다.



며칠 전, 엄마의 교회 명예권사 취임식.

시아버지 생신으로 참석하지 못한 나 대신 언니가 큰 금액의 헌금을 준비해 엄마를 축하하러 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고맙다는 인사가 아닌 꽃다발에 대한 타박,

헌금을 얼마 했느냐는 물음, 더 좋은 선물들에 대한 요구였다.

끊임없이 '더'를 외치는 엄마 앞에서 언니는 끝내 속상한 마음만 잔뜩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언니의 속상함을 전해 들으며 생각한다.

엄마는 정말 더 좋은 선물이 없어서 화가 난 걸까,

아니면 더 많은 금액의 헌금을 못해서 투정을 부리는 걸까.

아마 아닐 것이다.

엄마는 지금 무서운 것이다.

유일하게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주던 아들이 사라진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딸들의 지갑과 손길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의지할 곳 없는 엄마가 딸들에게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받아내며 헛헛함을 채우려는 그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헛헛함을 채워주기 위해 우리 자매는 어디까지 스스로를 깎아내야 하는 걸까.

사랑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간신히 덮고 일어선 딸들에게, 이제는 '아들만큼의 효도'를 바라는 엄마를 우리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아들을 잃은 엄마의 시린 가슴을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엄마가 이제는 '받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받으려 하기보다,

이미 충분히 잘 살아준 두 딸의 존재 그 자체에서 위안을 얻으셨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미안하고, 가엾고, 그러면서도 때론 버거운 나의 엄마.

모녀 관계라는 건 참으로 지독하다.

미워하자니 가엾고, 품어주자니 내가 숨이 막힌다.

그 팽팽한 줄다리기 사이에서 오늘도 나는 엄마를 향한 연민과 원망 사이를 위태롭게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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