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 스피릿 뽀에버!

아들과 함께한 사십대의 끝자락에서

by 정은

사십대의 끝자락...

거울 앞에 서면 낯선 사람 하나가 서 있다.

눈가에 자리 잡은 잔주름과 예전 같지 않은 탄력. 분명 몸은 정직하게 세월의 풍파를 맞았는데,

이상하게도 내 안의 '나'는 여전히 서른 어디쯤, 혹은 그보다 더 젊은 날의 열기 속에 머물러 있는 기분이다.


세대를 넘어, 락(Rock)으로 하나 되다


얼마 전,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아들과
남편,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 거실에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스피커에서는 묵직한 베이스와 날카로운 기타 사운드가 흘러나왔다.
우리 가족을 하나로 묶어준 건 '락과 메탈'이었다.

내가 대학 시절 낡은 워크맨 속에서 마르도록 들었던 그 음악들을 이제는

장성한 아들이 신청곡으로 내놓고, 그에 질세라 나도 최애곡들을 들려준다.


"엄마, 이 곡 기타 진짜 예술인데요?"


내가 선곡한 메탈리카의 "ONE" 을 들으며 감탄하는 아들의 모습에서 스무 살의 내 모습을 발견한다.


아들이 좋아하는 곡에 내가 추억을 보태고, 내가 고른 올드스쿨 메탈 곡에 아들이 감탄한다.

남편까지 가세해 서로의 플레이리스트를 주고받는 시간.

그 순간만큼은 내가 곧 쉰 살이 될 '중년'이라는 사실도,

아들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라는 사실도 잊었다.



헤드뱅잉을 하던 그 시절의 뜨거운 피는 여전히 내 안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정신연령은 그대로인데 몸만 늙은 것 같아 서글펐던 마음이,

아들과 같은 박자로 머리를 흔드는 순간 묘한 해방감으로 바뀌었다.


'아, 내 안의 락 스피릿은 아직 죽지 않았구나.
단지 조금 더 깊은 울림을 내는 악기로 변했을 뿐이구나.'



즐거움이 커질수록 한편으론 가슴 한구석이 아릿했다.

내가 이 음악들을 처음 만났을 때로부터 벌써 30년이 흘렀다니.

세월은 어쩜 이리도 무심하게 빠른지.

하지만 그 빠른 세월이 선물해 준 것이 바로 내 곁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취향을 공유하는

이 '멋진 청년'이라는 사실에 다시금 행복이 밀려왔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했던 것들을 다음 세대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꾼'이 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혼자 이어폰을 끼고 몰입했던 음악이, 이제는 가족의 웃음소리와 섞여 거실을 가득 채운다.

쉰 살. 숫자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뻔한 말 대신,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의 청춘은 여전히 스피커 너머로 흐르고 있고,
이제야 비로소 아들의 손을 잡고
그 청춘의 페이지를 함께 넘길 수 있게 되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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