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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Jul 07. 2024

내 남편 심드렁 씨

김이 쫙쫙 빠져! 아주 내가 그냥!

아프다.

몸도 조금 아프고, 마음은 무겁고, 의욕은 바닥이다.

어제까지 10k를 달리고, 20k 걸었던 사람이 오늘은 왜 이렇게 의욕이 없을까?

남편 때문인 것 같다.

예민한 사람,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 외로운 사람,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 심드렁 한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한 사람, 가족을 제일 아끼는 사람




요사이 주말엔 거의 혼자 뛰러 나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남편을 깨워보면 피곤하다고 못 일어나길래, 더 자게 두고

나는 내 페이스대로 혼자 뛰고 오면 서로가 편했다.

어제는 왜 그랬을까? 그냥 혼자 뛰지.. 평소처럼

웬일로 일찍 일어나 있길래 그냥 한마디 건네어 본 어제의 나 자신! 정신 차려!


"뛰러 나갈 건데 같이 갈래?"

"흠.."

원래 엄청 좋아도 표현의 강도가 "흠"에서 "험" 정도로 표현이 없는 사람이기에

심드렁한 남편의 반응에 혼자 뛰러 나갈 요량으로, 평소처럼 옷을 챙겨 입고 나왔는데 어? 이 사람..

손목 발목 등등 몸을 풀고 있다.

어? 나가려나 보군..

소소한 집안일들을 하면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데, 화장실에서 샤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달리러 나갈 건데.. 웬 샤워?

"난 운동하기 전에 샤워하는 거 좋아해"

"나 화장실 좀"

"아.. 비 올 거 같은데.."

5시 반에 일어났는데 결국 7시가 넘어서 집을 나섰다. (내 몸의 사리들이 오늘도 많이 생겼다)





끄물끄물한 날씨 때문에 차를 갖고 가자고 한다.

달리다가 횡단보도 때문에 한번 서게 되면 리듬이 끊어져서 본인은 힘들다고 한다.

뭐.. 사람마다 선호하는 달리기 코스들이 다르니 그의 의견을 존중해서

차를 갖고 가까운 트랙을 가서 뛰기 시작했다.

서로 한 시간 동안 각자 페이스대로 뛰기로 하고 잘 뛰었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집에서 한참 쉬고

오후엔 같이 왕복 20k를 걷기로 했는데, 평소 다니는 길이 아닌 내가 새로 발견한 그늘길로 걸었다.

 꽤 긴 코스인데 거의 80% 이상 그늘로 된 길이라 내 딴에는 그의 인정을 바랐던 것 같다.

"길 좋지?"

"아니 별로!"

김이 빠지는 그의 반응.. 사실 평상시와 별 다르지 않은 반응이라 타격이 크진 않다.

나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다 그렇다. ㅠㅠ

가끔은 그런 심드렁하고도 배려 없는 반응 때문에 크고 작은 트러블에 휩싸이기도 하는데

 참 대쪽같이 변하지 않는다.



한참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김호중 있잖아. 아버지가 새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소속사와 전혀 얘기가 없이 진행한 거래.  세상에 그게 친족관계면 가능하다네"

"확인해 본 거야? 그게 말이 돼? 하여튼 그런 애들 있어. 그저 누구 기자가 얘기했다 하면 철석같이 믿어. 근거가 뭐야 도대체?"

아니 연예계 대표기자 이진호 기자가 (ㅋㅋ) 법조항까지 얘기하면서 뉴스를  전하길래 그거 보고 얘기한 거라고 해도

"하여튼 큰일이야. 그게 말이 되냐고. 그럼 엄마가 또 선임해도 되는 거야? 그게 말이 돼?"

아니 지금 나한테 따질일이 아닌데.. 법조항이 그렇다는데 괜히 부르르 떠는 남편에게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지금 나 디스 하는 거야? 내가 지금 팩트체크도 안 해보고 얘기하고 있다고 말하는 거야?"

 평소와는 다른 나의 날 선 반응에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너한테 그러는 게 아니고, 요새 애들이 그렇다는 거야."

"지금 내가 얘기한 거 갖고 그러는 거잖아. 내가 무슨 큰 뉴스를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남편하고 연예인 가십거리 얘기하는데 그런 거 팩트체크까지 하면서 얘기해야 하는 거야?"

싸움이 커질 것 같아서 서로가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오늘 따라 유난히 더 심드렁하고 삐딱한 남편과 기나긴 시간을 걷고 먹고 마시고 얘기를 했더니

하... 집에 오니 몸도 피곤한데 마음은 더 피곤하다.

원래 하루가 지나면 다시 리셋이 되어 평소처럼 운동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는데

하루가 지나도 맥이 없다. 너무 많이 걷기도 했고, 심기도 아직 불편하다.


침대에만 누워있는 나에게(그래도 아침밥은 싹 차려놓았음)

"뭐야 왜 이렇게 뒹굴고만 있어"

"아파. 아프니까 그러지 왜 이러겠어!"

평소와 다른 나의 반응에 바로 꼬리를 내리며 심드렁한 반응대신

"약 먹었어?"로 태세전환을 하는 남편..


"나갔다 올게.." 마누라는 아프다는데 이놈의 인간은 혼자 어딜 나가겠다는 건지

화가 났지만 차라리 혼자서 속 편하게 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 묻지 않고 그냥 눈을 감았다.




카톡카톡

"에이.. 점심 먹으러 왔는데, 식당이 문을 안 열었네.. 넌 약 먹었어?"

남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피곤해서 그냥 쭉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한 시간 후에 다시 카톡이 울린다.

"회사 뒷 쪽에 문 연곳 있어서 밥 먹었어"

아픈 마누라 놓고 놀러 나간 줄 알았더니 주말에 출근을 했네..


그러고 보니

요사이 남편이 너무 바빠서 계속 야근을 했었구나..

그래서 더 심드렁했나?

에이.. 또 측은지심을 키우고 있는 나 자신! 정신 차리라고!

"내가 요새 좀 바빠서 피곤하네. 말이 좀 이쁘게 안 나와서 미안해~~"

이렇게 좀 차근차근 자기 생각과 마음을 표현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에혀... 다 가질 수 없는 거 알면서 가끔은 서운한 마음이 하루를 망친다.

푹 쉬고 내일부턴 다시 웃어야지^^

그래도 건강하고 성실하고 가족을 아끼는 내 사람이니까.. 내가 이해해야지 뭐..


글쓰고 나니까 마음이 정리되서 그런지

기분이 한결 나아져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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