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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지식in Apr 30. 2024

달리기와 글쓰기 그리고 하루키

[월간에세이] 5월호 에세이


춤을 추는 거야. 음악이 울리는 동안 어쨌든.

- <댄스댄스댄스> 하루키     



일본의 한 세대를 풍미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화려한 커리어와 달리 하루키의 하루하루는 소박했습니다. 오전 4시에 일어나 책상에 앉고 정해진 시간 동안 원고지 20매를 채웁니다. 오전 10시까지 글쓰기에 매진한 후에는 10km를 달리고 한 시간 동안 수영을 하죠. <노르웨이 숲>으로 430만 부의 책이 팔렸을 때도, 타임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꼽혔을 때도 바뀌는 것은 없었습니다. 태엽에 감긴 새가 정해진 궤도를 반복하듯 하루키의 글쓰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하루키의 어투는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닌 일상적이면서, 구체적입니다. 단어와 문장에 묻어나있죠. 정결한 면 냄새가 나는 하얀 셔츠를 입고, 정갈하게 속옷을 고이 접는 것처럼요.


소확행입니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이죠. 하루키는 글쓰기를 통해 소소한 행복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루키가 걸어온 길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순탄할 것만 같던 하루키도 매너리즘과 일상의 부조리에 마주했습니다. 작가 데뷔 전에는 7년 동안 치열하게 일했습니다. 재즈카페 '피터 캣'을 직접 운영했는데, 당시의 힘든 육체노동은 글쓰기의 자양분이 됐죠. 그날 컨디션에 따라 하루 일과를 접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노동이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니까요.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변을 걷는 카프카가 될 때에도, 상실의 시대에 노르웨이 숲을 걸을 때에도 하루키는 주어진 직업과 소명 속에서 행복을 찾았습니다.



33번의 마라톤 완주...비관적 현실주의자의 글쓰기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하루키가 남길 묘비명입니다.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길 위에서 배웠다는 하루키. 달리는 도중에 수없이 사점(dead point)을 만났을 겁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폐가 심장에 흡착하는 기분. 신체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공포. 주변의 시야는 희미해지고 헐떡거리는 소리가 턱 밑까지 차오르는 올가미. 결국 나 자신만 남게 됩니다. 달리는 순간에는요. 자신의 끈을 놓을 때까지 뛰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살기 위해 뛰었죠. 하루키도 그랬을 겁니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위해.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달리고 또 달립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마라톤을 이어가는 원동력일 겁니다. 하루키는 30번 넘게 마라톤을 완주했습니다.


남들은 잘만 사는 것 같은데, 왜 여러분의 인생만 쉽지 않을까요. 모든 것을 다 가졌을 것 같은 하루키도 한때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글을 썼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모여 일 년이 되고, 인고의 세월이 흘러 지금의 하루키가 태어났습니다. 그 자리에. 이는 비관적 현실주의자가 펜을 잡은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하루키는 인생을 게임이라 말합니다. 어차피 지는 게임. 계속 무언가를 잃어가기만 하는 절망의 여정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듯이요. 그렇지만 하루키는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글을 쓰면서 음습하고 암울한 현실관을 또 다른 세계관으로 극복했습니다. 하루키 소설만 봐도 잘 알 수 있죠.


사랑에 대한 상실을 감내하는 <노르웨이의 숲>, 상실 이후의 상실감을 위트로 뒤집는 <댄스댄스댄스>, 운명에 대한 부조리를 극복하는 <해변의 카프카>까지 하루키에게 글쓰기는 직업이자 곧 소명입니다. 하루하루를 감내하는 용기. 여러분들의 소확행은 무엇인가요. 그 시작을 펜과 종이로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월간에세이 창간 37주년을 맞아 에세이를 한편 쓰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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