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뭔가 쓰지 않은 채 시간이 꽤 지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글이 9월 말이니 시기적으론 주 2회의 정신 치료에서 주 4회의 정신 분석으로 변경되면서, 무엇인가를 쓴다는 것에 대한 동력을 잃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내게 글을 쓰는 것은 비유적인 의미에서 술을 빚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던 것 같다. 어떤 곡물을 쌓아두면 발효되어 술이 되는 것처럼. 어떤 생각을 품고 있으면 어느 때에 문득 뭔가 적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것을 적당하게 글로 적어왔다. 나는 글에 있어서 전문가가 아니니 어떤 것을 만들어낼 역량은 되지 않고, 남은 쌀이 생길 때 어쩌다 술을 빚는 가정집처럼, 그 주기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되게 뭔가 써왔던 것 같다.
요즘은 술을 빚을 쌀이 없다. 쌓일 일 없이 그때그때 소비된다. 어떤 생각을 오랫동안 품을 새가 없이 분석에서 다루게 되니 남는 쌀이 많지 않다. 오랜 기간 동안 내게는 말하는 것보다 담아두는 일이 당연히 더 많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내게 익숙하지 않다. 나를 충분히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는 것, 당연히 그런 것은 불가능하고 또 어렵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어떻게든 남는 쌀을 술을 만들던 먹던 소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상당한 비용과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이야기할 충분한 시간, 또 나에 대해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분석가가 있는 환경이 주어지니, 조금 낯설기도 하고.
또 하나는, 난 쌀과 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그릇과 잔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4년간의 주 2회의 정신 치료는 적당히 무난했다. 주 4회 분석이 힘들다는 선배를 보고, 그때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막상 분석으로 변경하고 나니 아 나는 지금까지 적당히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왔던 것일까 싶다. 큰 무리 없이 잘 지내 왔다고 생각해왔는데, 나에게 이런 마음도 있었구나. 모든 곳에 흔적이 있는데도 애써 이렇게 보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내게는 고통스러운 일이었구나.
정작 내가 고통스러운 지점에 대해서는 분석 시간을 벗어나서, 아니 그 방을 벗어나서 말하거나 쓸 수가 없다. 어느 다른 먼 나라의 어떤 풍경을 설명하려는 사람처럼, 제게는 어떤 것과 관련된 이슈가 있어요. 그런데 그 이슈에 대해 계속해서 다루는 것이 힘이 드네요 하고 말할 뿐이다. 요즘은 혼란스러운 꿈들을 많이 꾼다.
수련 초기에, 아직 경험이 많이 없던 시기에, 정신증으로 입원한 환자를 맡았다. 10년 가까이 된 일이라 진료의 자세한 부분은 기억나지 않는다. 환자는 본인의 가정 환경이 어땠는지. 어떤 사정 때문에 가족이 나를 충분히 아끼면서도 나를 도와줄 수 없었는지. 하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어떻게 많은 부분을 혼자 감당했는지를 이야기했다.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에 조금씩 익숙해지던 때에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마치 친한 친구와 같은,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고 했다. 처음엔 환청이구나 싶어서 이런 게 내게 왜 들리지 의아했는데 나중엔 그 소리가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환청과 망상의 해결을 목표로 하는 입원치료가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환청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환자의 외로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환자 혼자 남겨져야만 했던 상황이 마음이 아프고, 환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뭔가 환자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화가 나고 그래서 가족이나 환경의 변화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몇몇 의국 선배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선배는 내 이야기를 듣고선 넌 아마 환자의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그런데 사람의 팔자를 고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아니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범위를 알려주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나의 한계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했고 또 묘하게 나를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 스스로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나도 모르게 선을 그어 왔던 것 같다. 아 저는 여기까지예요, 더 이상은 제가 못하겠어요 헬스장에서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호소하듯이. 제가 다룰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예요 하고. 이게 제 쌀과 술입니다 하고.
양 선생님은 얼마 전 분석을 받는 것은 팔자를 바꾸는 일이라고 했다. 분석을 받으면 신경증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난 그런 것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르겠는데, 분석의 시간이 내가 다룰 수 없는 것을 다루는 시간이란 것은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