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이들이 없는 아침, 아내에게 내가 요즘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아내는 나와는 음악 취향이 다른 편이긴 하지만,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요즘 빠져있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 조웅의 김일뚜, 아내는 난 요즘 들을 노래가 없던데 대체 이런 노래는 어떻게 알고 찾아듣는 거냐고 물었다. 왠지 살면서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서 아내는, 근데 내가 좋아하는 노래든 이번 것도(조웅) 그렇고 지난번 것도(백현진) 그렇고 좀 술주정 같다고 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아름다운 곡은 아니고, 그래서 아내가 듣기 거슬려 해서 보통은 집에서도 헤드폰을 끼고 듣는다. 아내의 평가에 대해 난 그저 직관적으로 좋다고 느낀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묘하게 혹은 대놓고 음정이 안 맞는 부분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장황한 가사들이 정말 술주정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술주정을 좋아하네. 왜 그럴까, 어려서 티비에서 주인공 아버지가 술에 취해 퇴근하며 양념 통닭을 사 오는 장면을 보고는 저런 건 드라마니까 일종의 환상적인 장면 아닐까 생각했었다. 나의 아버지는 다소 다소 무뚝뚝한 편이다. 뒤이어 떠오르는 연상들이 있지만, 그것을 쓰기에 여백이 좁은 것도 아니지만 이만 줄인다. 여튼 최근에 떠오른 따뜻한 기억에 마음이 좋았다.
본가 안성에 오랜만에 갔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부터 결혼 전까지 계속 살던 곳. 이번에 리모델링을 하게 되며 내 방의 책장을 정리하러 내려갔다. 사서 모은 책들을 보다 보니 아마 고등학생 즈음부터 봤던 책들 같다. 정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맨날 책만 사서 읽었구나. 좀처럼 의대생 책장같이 보이진 않고, 소설이든, 미학이든, 심리학이든, 철학이든 시집들이 있다. 다시 볼 책 몇 권만 추려서 집으로 가져오고 나머지는 수레로 10번 넘게 분리수거장을 다녀오며 다 버렸다. 또 당시엔 CD를 한 달에 한 장씩 사서 듣는 것이 내 낙이었는데. 지금 집엔 CD 플레이어도 없으니 CD도 다 정리할 예정이다.
사실 고민이었던 건 책이나 음반보단, 일기장이었다. 1m 정도의 분량으로 쌓아둔 스프링노트들인데, 사실 요즘은 일기를 잘 쓰지도 않고, 결혼한 지 이제 곧 10년인데 10년 동안 한 번도 들춰보지 않았으니 큰마음 먹고 이참에 다 버리려고 다짐했다. 정말 버려도 될까 하고 일기장에 써 둔걸 좀 들춰보니, 당시 함께 술 마시던 선후배 이야기며, 꿈을 꾸고 나서 그 꿈이 대체 무슨 뜻일까 적었던 것들이며, 내 머릿속은 복잡한데 이 공부 하는데 방해만 되는 복잡한 생각들은 대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던 것들이 있길래, 한편으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구나 싶고 또, 어차피 나중에 어떤 방식으로든 분석가 과정 하겠다고 했겠구나, 차라리 빨리 시작한 게 다행이겠구나 하는 마음들이 들어서 나중에라도 열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큰 상자에 잔뜩 담아 병원으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