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그래서 떡볶이가 먹고싶어.

[푸드로지]‘만인의 솔 푸드’ 떡볶이…몸도 마음도 데워주는 ‘간식의 辛

by 이우석 더 프리맨

요즘처럼 몸도 마음도 추운 계절, 옷깃 세우고 고개 숙인 퇴근길. 별안간 매콤한 향기가 발길을 붙든다. 포장을 젖혀 보니 김 폴폴 나는 어묵(오뎅)꼬치 가득한 솥 옆에 새빨간 떡볶이가 가득 누운 철판이 곱게도 펼쳐졌다.

이제 하얀 겨울이 오면 더욱 돋보일 붉은 식욕이다.

떡볶이에도 제철이 있다. 햅쌀이 나는 가을이다. 도정을 마친 햅쌀로 가래떡을 뽑자면 향긋하기도 한 것이 그리도 차진 맛이 좋았다. 지금이야 밀떡, 쌀떡을 따지지만 원래 떡볶이(궁중떡볶이)는 쌀떡을 썼다. 쌀도 귀했지만 밀은 더욱 구하기 힘들던 시절이었다.

밀떡은 귀한 쌀을 쓰지 못하던 시절에 대용품으로 생겨났다. 막걸리도 쌀로는 빚지 못했다. 떡볶이집에선 저마다 밀가루 가래떡을 뽑아 썼다. 1970년대 생까지는 어린 시절 떡볶이라고 하면 당연히 밀떡이 익숙했다. 이후 쌀떡이 다시 돌아오며 떡볶이 양념 물결을 이끄는 쌍두마차가 돼 떡볶이 인기를 함께 누리고 있다. 지금은 밀떡·쌀떡파가 따로 공존한다. 마치 탕수육에 부먹(소스를 부어먹는 방식)과 찍먹(소스를 찍어먹는 방식) 마니아층이 생겨난 원리와 같다. 일반적으로 밀떡은 매끈한 목넘김, 쌀떡은 씹을수록 단맛을 내는 쫄깃함이 인기 요인이며 빨리 퍼짐(밀떡), 다소 묵직한 치감(쌀떡) 등이 기피요인으로 꼽힌다.



떡볶이는 오랜 역사를 지녔지만 지금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고기와 해물, 채소 등을 떡과 함께 간장에 조렸다. 떡만 해도 귀한데 고급 식재료가 한가득 들었으니 민가에선 엄두를 못 냈다. 궁중에서 수라상에 올렸다. 지금의 떡볶이는 다시 생겨난 것이다. 2009년 작고한 마복림 할머니가 6·25전쟁 직후인 1953년 처음 고안(?)했다고 알려졌다. 짜장면에 쓰는 춘장과 고추장을 섞은 양념에 떡을 조려 동대문 노점에서 팔았다. 인근 신당동이 떡볶이 골목이 되고 난 후, 1970년대부터 빨간 열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노점에서 떡볶이와 어묵꼬치, 튀김, 순대를 파는 것이 일상화됐다.

떡볶이 양념의 깊이는 바로 오뎅국물에서 나온다

지금은 수많은 프랜차이즈 브랜드와 레토르트 식품, 가정간편식(HMR)으로까지 번지며 이젠 남녀노소가 모두 좋아하는 한식 메뉴의 반열에 올랐다. 2000년대 이전까지는 아이들 음식, 여학생 간식쯤으로 여겼지만, 세월이 흘러 이들이 50세 나이를 넘어서면서 요즘 떡볶이집에선 많은 ‘아저씨’들을 찾아볼 수 있다. 외국인들도 떡볶이를 좋아한다. 서구권보다는 쌀 문화권인 중국,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대만 등 아시아 지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유튜브나 국내 드라마 등을 타고 퍼져 미국과 유럽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는 형국이다. 매운 음식에 초점을 두고 떡볶이를 소개하는 외국인 먹방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가히 주전부리의 황제라 칭할 만하다.


떡볶이는 간식이라지만 든든한 한 끼 역할을 충분히 한다. 치밀한 구조의 탄수화물로 밥이나 국수에 비해 거의 폭탄 수준의 열량을 섭취하게 된다. 여기다 물엿이나 설탕, 나트륨이 들어가고 튀김이나 라면사리까지 넣게 되면 하루 생활하기에도 충분한 열량이다. 다만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부족하니 단무지나 김치, 양배추, 소시지, 어묵, 만두사리 등을 곁들이는 것이 좋다.


떡볶이에 곁들이는 부재료는, 가히 ‘떡볶이 문화’라고 일컬을 수 있을 만큼 다채로운 요리로 발전한 지금의 떡볶이를 만든 일등공신들이다. 딱딱해서 그냥은 씹을 수 없는 떡볶이 전용 튀김만두, 국물에 적셔 먹는 것이 표준이 된 김말이 튀김, 탄수화물에 다시 탄수화물을 더하는 라면과 쫄면 사리, 부드러운 사각 어묵, 꼬마 김밥과 당면 순대 등은 무엇하나 빼기 어려울 정도로 잘 어울리는 부재료들이다. 심지어 고기육전이나 새우튀김처럼 고급 메뉴를 떡볶이에 넣는 경우도 있다. 어디 이뿐인가. 삶은 계란, 햄, 게맛살튀김, 모차렐라 치즈, 체다 치즈, 중국 당면, 오징어튀김, 고기완자 등이 화끈한 떡볶이 국물에 담겨 있기도 하다. 이만큼 포용력 있는 음식은 드물다. 동서고금을 통틀어도 훠궈(火鍋)나 퐁듀 정도밖에 없다.


추억의 음식이라서 50대 중년까지는 누구나 자신의 사연이 담긴 떡볶이가 있을 것이다. 동네마다 하나쯤 단골 떡볶이집이 있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학교 앞 떡볶이집은 주된 내용이 펼쳐지는 공간이 됐고, 주인(김부선 분)도 상당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쌍문여고 앞 브라질떡볶이도 마찬가지다.(실제 쌍문여고는 없고 브라질떡볶이는 정의여고 앞에 존재했던 상호다.)


예전의 맛을 살려보려고 집에서 떡볶이를 해먹을 경우, 대부분 가게에서 파는 떡볶이의 맛을 내는 데 실패한다. 결정적인 건 재료의 차이다. 대부분 떡볶이집에선 어묵꼬치를 함께 파는데 떡볶이 육수를 바로 이 국물로 낸다. 대량의 어묵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무, 대파, 조미료 심지어 꽃게나 멸치, 북어, 다시마 등으로 맛을 내는 까닭에 육수의 차이점이 떡볶이 맛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조리하는 양에도 차이가 있다. 집에선 떡볶이를 터무니없이 많이 할 수 없으니 대파나 양배추 등이 적게 들어가고 여기서 나오는 시원한 맛이 양념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밖에도 중탕 가열식과 조리 시간 등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떡볶이는 설렁탕처럼 밖에서 사 먹는 것이 낫다는 게 개인적인 의견이다.


<놀고먹기연구소장> www.playeat.net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윤옥연할매떡볶이 = 호사가들이 ‘전국 ×대 떡볶이’를 꼽을 때 늘 이름을 올리는 대구 윤옥연할매떡볶이는 매운 국물 떡볶이로 유명하다. 후추와 ‘땡초’(매운 고추)를 적절히 배합해 얼얼하고 매콤한 양념이 흥건한 국물 속에 녹아들었다. 주문이 마치 마법 주문처럼 알쏭달쏭하다. “이천, 천, 천.” 떡볶이 2000원(2인분), 만두 1000원, 튀긴 어묵 1000원이란 뜻. 추가 양념도 있는데 보통 다들 넣어서 먹는다. 매끈한 밀가루 떡을 쓰며 국물에 튀긴 어묵과 만두를 적셔서 먹는다. 대구 수성구 들안로77길 11. 떡볶이 2000원(2인분), 만두 1000원, 튀긴 어묵 1000원, 쿨피스 1500원.


◇부산 범일동 매떡 = 부산에서 ‘매운 떡볶이’로 소문난 집이다. 부산역과 가까워 떡볶이 마니아들의 순례코스에 들었다. 큰 가래떡에 끈끈히 묻은 양념은 국내산 고추와 후추를 섞어 경악할 만큼 매운맛을 낸다. 하나만 먹어도 온몸의 땀구멍에서 땀이 한 방울씩 돋아나는 느낌. 튀김과 어묵을 함께 곁들이면 그나마 덜 맵다. 얼마나 매운지 먼저 한 점을 시식시켜 준다. 일단 먹어보고 덤빌 만하면 주문하라는 뜻. 버석한 얼음에 달달한 팥과 미숫가루를 얹은 팥빙수는 추억 속 ‘B급’의 맛이지만 매운 혀를 다스려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부산 부산진구 골드테마길 52-2. 떡볶이 4000원, 만두·김밥·순대·팥빙수 각 3000원.


◇고양 어디로가든 = 일산 제니스 상가 내 주점 카페 ‘어디로가든’의 시그니처 안주메뉴. 최근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마라(麻辣) 양념이 적절히 녹아든 국물 떡볶이를 선보인다. 쓰촨(四川) 지방의 명물 마라 국물에 떡, 채소와 비엔나소시지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 있어 안주와 끼니를 동시에 해결하는 메뉴다. 여행을 좋아하는 부부가 각 나라의 음식과 식문화에 영감을 받아 손수 만든 음료와 음식이 수준급이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일현로 97-11 지하 1층. 1만2000원.


◇창원 6.25 떡볶이 = 마산 부림시장의 터줏대감으로 마산 떡볶이의 상징 같은 곳이다. 과거 시장 좌판에서 시작했는데 이때 손님들이 모두 신문지를 깔고 쪼그려 앉아 떡볶이를 먹는 광경이 꼭 6·25전쟁 당시와 같다고 해서 이처럼 독특한 상호가 생겨났다. 화분 받침에 담아내는 그릇이 특징이다. 건어물을 넣어 깊은 맛을 내는 육수에 칼칼한 고춧가루를 써 시원한 뒷맛이 난다. 떡볶이는 기본 쌀떡을 쓰며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를 넣어 양념이 진하게 묻어나진 않는다. 잡채도 따로 판매하는데, 참기름향 진한 잡채가 떡볶이와 잘 어울린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서북 12길 16-23. 떡볶이 3000원, 군만두 튀김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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