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 30분. 예쁜이 할머니께서 일어나셨다. 4.000보 운동을 나가시려는 모양이다. 5시가 되자 뽀글이 할머니께서는 기상하셔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로 가 변기물을 내리고 세수하는 소리가 들렸다. 휠체어를 타고 침상으로 되돌아 온 할머니는침상에 걸터 앉아 손바닥에 화장품을 짜서 얼굴을 탁탁 치며 발랐다. 탁탁탁, 분명 경쾌한 소리인데 이상하게 구슬프다.
6시 정도에는 누가 창문을 열었는지 6월에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바람이 좁은 병실로 들어왔다. 병원 앞 6차선 도로에서는 자동차들이 모든 차선에서 굴러가는지 자동차 바퀴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보이지 않는 모든이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도대체 차들은 어디를 저렇게 바쁘게 가는 걸까? 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은 발가락 수술을 안 한 거다. 건강한 것이다. 아침 일찍 갈 곳이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다들 분주한 아침을 보내는데 나는 뭔가 싶으면서 우울해졌다.
밤새 다른 환자분들의 코 고는 소리, 화장실 다니는 소리, 잠꼬대 등으로 잠을 설쳤다. 수술한 발가락도 한 번씩 아파 왔다. 수술하기 전에는 안 아팠는데 이상하게 수술하고 나니 통증이 느껴졌다. 머리를 3일이나 감지 않았다. 가려웠다. 침대시트, 이불, 옷에서 땀 냄새가 진동했다.
6시 30분 즈음에 목발을 짚고 화장실에 갔다. 세면대 앞에 포장마차 의자가 있었다. 의자에 수술한 다리를 니은자로 구부려 올리고 왼발로 섰다. 세면대에서 샤워기를 이용해 발가락을 수술 한 이에게는 아주 어려운 머리감기를 했다. 머리를 다 감은 후 수건으로 감싸고 침상으로 돌아왔다. 드라이가 없었기에 머리를 말릴 수 없었다. 할 수없이 앉아서 젖은 머리를 말렸다. 집에서 가져온 책을 읽다가. 빗 대신 열손가락으로 대강 머리를 빗었다.
식당에서는 압력밥솥 추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음식냄새가 났다. 무엇을 만드는지 대야 내려놓는 소리, 칼소리, 비닐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사소한 생활의 소리가 소음으로 들렸다. 둔감하기는 세상에 제 일인자인 내가 아무래도 수술 후 예민해진 것 같다. 이럴 땐 자야 하는데. 아주 깊게 자고 나면 무던해지는데 잘 수 없었다.
6시 30분 정도에 정수리에서 뒤통수 중간까지 닭벼슬 같이 괴상하게 머리를 리본으로말아올린 리본머리 간호사가 병실에 왔다. 간호사는 한 명씩 혈압을 재고 알려주면서 병실의 모든 사람들을 깨우고 나갔다. 병실을 나간지10분만에 간호사가 드레싱카를 밀고 다시 나타났다. 간호사는 약을 주고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수술하는 날 놓은 주삿바늘이 따끔거렸다. 피부는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간호사에게 말했더니 링거주삿바늘을 뺐다. 간호사는 팔꿈치에 고무줄을 묶었다. 간호사는 손바닥으로 내 팔을 두드려 혈관을 찾아 주사를 놓았다. 나는 주사가 무서워 눈을 꼭 감았는다. 바늘이 들어갈 때만 0.1초 정도 따끔거리고 말았다. 걱정했던 것보다 덜 아팠다. 정맥주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진통제, 항생제, 항염증제를 차례대로 엉덩이에 근육주사 했다. 역시 근육주사가 정맥주사보다 아프다. 간호사는 주사를 놓고 정성스레 마사지해 주었다. 주사는 항상 맞기 전이 맞을 때보다 더 아프다. 아마도 주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학교에서 보면 학생들도 상처 치료시보다 치료 전에 더 겁을 먹는다. 막상 하면 아무일도 아닌 것들이 하기전에는 언제나 두렵고 무섭다. 리본머리 간호사는 정말 백의 천사 같다. 어떻게 환자들에게 그렇게 친절한까? 이십오 년 전 난 환자들에게 투덜거리고 설명도 하지 않고 간호업무만 하는 악마 같은 간호사였다. 그때 만났던 많은 환자들에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사죄하고 싶다. 내가 담당하는 환자가 많았다. 업무도 미숙하고 바빴다. 환자를 사람으로 보지 못했다. 환자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던 그런 간호사. 디지게 싸가지 없는 일 못하는 간호사가 그 당시 나의 다른 이름이였다. 그때 그래도 그러지 말 걸. 후회된다. 간호사로서 제대로 일하지 못한 패배감이 아직도 내 안에 있었다. 한 번씩 훅 하고 튀어나와 날 괴롭힌다.
주사를 맞고 난 후 뽀글이 할머니의 농사이야기와 북한에서 날아온 오물 풍선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식당차가 병실에 도착했다. 오늘의 메뉴는 콩나물국, 고등어조림, 취나물, 김치였다. 내가 아닌 남이 차려주면 다 맛있다는 주부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병원식사가 증명해 주었다. 항생제 주사를 맞아서인지 속이 좋지 않아 두어 숟가락 밖에 밥을 먹지 못했다. 내 식판은 옆 환자분께서 배식구에 내주었다. 아프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유아보다 적었다. 작은 일도 타인의 도움이 받아야 한다는 게 또 서러움을 불러일으켰다. 다리 아픈 사람이 링거 맞으면서 3m 거리의 화장실에 가는 것은 다리가 멀쩡한 사람의 300m 달리기보다 부담스러운 일이다. 휠체어를 타고 링거가 매달린 폴대를 밀면서 화장실에 가서 이를 닦고 침상으로 돌아왔다. 한 발을 쓸 수 없는 환자인 나에게 이런 간단한 일을 완수했다는 것은 매우 뿌듯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세상 서러운 일이기도 했다.
의사 회진시간이 되자 모든 환자들이 단정한 모습으로 모두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수업시작 전 학생들이 교사를 기다리는 모습과 흡사했다. 의사는 다정한 교사처럼 몸은 좀 어떤지,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었다. 의사가 내 수술 부위를 보기 전에 간호사가 붕대를 풀어 수술부위를 노출시켰다. 엄지발가락 윗부분에 토끼 귀처럼 생긴 두 개의 철사가 보였다. 의사는 수술은 잘 됐고 골절된 발가락이 다른 곳에 부딪치지 않게 주의하라고 했다. 의사는 부딪쳐서 제수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절대 부딪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의사는 6주 정도는 부목을 하고 목발을 짚어야 한다고 했다. 의사가 가고 상처부위를 간호사가 소독했다. 간호사는 다시 발이 보이지 않게 붕대로 감아주었다. 잠시 후에 물리치료사가 와서 원하는 물리치료 시간을 물었고 나는 11시라고 대답했다.
10시 즈음 청소하는 분이 오셔서 병실 청소를 했다. 먼지를 피해 모두들 병실 밖으로 나갔으나 나는 발이 불편한 관계로 침대에 앉아있었다. 청소하시는 분에게 시트와 환자복 교체해 주라고 부탁드렸다. 환자복을 갈아입기 위한 화장실까지 대장정의 길을 또 떠났다. 목에 수건처럼 환자복을 걸고 휠체어를 탄 후 폴대를 밀면서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앉아 한발 한발, 한손 한손 헌 환자복을 벗고 새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느림보. 나는 느림보가 되었다.
어젯밤 잠을 설쳤기에 졸다가 다른 환자분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중간중간 깨어났다. 한 번은 119구급차량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기도 했다. 11시에 물리치료실에 가서 이름을 말하고 냉각치료를 받았다. 어떤 치료인지 물리치료사가 알려주지는 않았는데 차가운 바람을 수술부위에 쏘이는 것이 냉각치료인 것 같았다. 물리치료는 10분 만에 끝났다. 목발을 힘겹게 짚고 병실에서 은유작가의 해방의 밤을 집중해서 읽으려 했으나 병실이 시끄러워 그냥 잤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목발을 짚고 그 힘든 양치질을 또 했다. 다시 독서를 하다가 자다가를 반복하였다. 중간에 작은 아이와 큰 아이가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나의 안부를 물었다. 에어컨도 싫어하는데 계속 나오고 주변은 시끄럽고 뭐 하나 할 수 없는 이 환경이 싫었다.
4시에 오후 물리치료를 갔는데 물리치료사가 왜 왔냐는 반응이었다. 의사가 하루 2번 하라고 해서 왔다고 했다. 물리치료사가 아침에 누웠던 곳으로 안내하여 냉각치료를 받고 있는데 다른 물리치료사가 와서 이 치료가 한 번에 2만 원이라고 말했다. 나는 실비 안되냐고 물었고 물리치료사는 된다고 했다. 보험이나 돈 없으면 의사가 받으라는 치료도 받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돈 없으면 병원생활도 못하겠다 싶다. 환자는 많은 이의 도움이 필요한데 이 도움도 돈과 결부된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처량한 환자신세에 서러움이 복받쳐 눈물이 나오는데 참고 병실로 왔다.
4시 30분 즈음 남편이 병원아래 커피숍에 왔다며 내려오라고 했다. 커피숍에 가니 작은 아이기 안보였다. 남편은 작은 아이가 버스 타고 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난 집에서 당신은 기다린다고 했다. 작은 아이에게 아빠가 혼자 와버렸다고 전화하니 속상해했다. 버스에서 또래학생들을 보면 학교 다닐 때 생각이 나서 현타가 와 아빠차를 타고 병원에 오려고 했었단다. 그런데 아빠가 혼자 가버렸다며 훌쩍였다. 집에서 또 우울하게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슬퍼졌다. 오늘은 온통 서글프고 슬픈 일만 가득이다. 버스라도 타고 오라고, 같이 저녁 먹자고 했다. 병원식이 아닌 라면 먹자고 말하고 같이 얼굴 보며 웃자고 말하니 알았다고 했다. 5시에 잠깐 병실에 올라가 석식 두 숟가락을 먹고 남편이 있는 커피숍에 같다. 작은 아이가 커피숍에 남편과 있었다. 커피숍에서 우리는 소소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보니 서러움이 날아갔다. 셋이 김밥집에 가서 김밥과 라면을 먹었다. 병원밥 먹다가 분식을 먹으니 좀 살 것 같았다. 병실로 다시 올라가기 싫어서 우리는 커피숍에 다시 갔다. 7시 30분까지 또 소소한 이야기를 하다가 저녁 주사를 맞아야 했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숍에서 나와 걷는데 아동병원에 입원한 유아가 날 빤히 쳐다봤다. 유아는 엄마에게 "다리 너무 불편하겠다."라고 말했다. 나는 ""응. 불편해. 나처럼 다치지 마."라고 말했다.
작은 아이가 병실까지 나를 데려다 주기로 하고 남편은 주차장으로 갔다. 병실까지 가는 길에 작은 아이와 나는 새 집과 냥냥이, 큰 아이, 내일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었다. 아이가 집으로 가고 나는 병실로 들어갔다. 다른 환자분들은 없고 뽀글이 할머니만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큰 아이는오늘 수업이 늦게 끝나고 주말에 했던 과제를 다 엎어야 한다며 오늘은 병원에 못 간다며 서운해하지 말라고 했다. 큰 아이는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김밥과 라면을 사서 먹는다고 했다.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집에 있었다면 몸에 좋은 음식을 해줬을 텐데. 내 부주의함을 또 후회하고 후회했다.
연예인들이 시상식에서 상을 받으면 가족들이 있어 상을 받게 되었다며 영광을 가족에게 돌린다. 그동안 내가 밖에서 맘 놓고 일할 수 있었던 것도 가족 덕분이고 힘든 병원 생활을 이겨가고 있는 것도 모두 가족 덕분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원하면 더 가족들에게 잘 해줘야겠다고 다짐했지만 퇴원하고는 그때 그 생각을 잊고 평상시처럼 잔소리하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