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이 끝나며 시작된 이야기
2025년 7월 6일
출발 전 계획했던 마지막 장소는 베이사이드 플레이스 하카타였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했지만, 토요이치에서 먹고 싶었던 카이센동은 이미 품절이었다. 직접 담은 스시 두 접시로 마음을 달래고 '절반의 성공'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언젠가 다시 와서 아쉬움을 풀고 싶었지만, '여기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남긴 채 베이사이드 플레이스에서 나왔다.
버스를 타고 오긴 했지만, 베이사이드 플레이스 하카타에서 기온역까지는 걸어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과거에 이벤트에 가기 위해 여럿이 함께 마린멧세 후쿠오카까지 걷던 기억을 떠올리며 기온역까지 혼자 천천히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마린멧세 후쿠오카나 후쿠오카 국제회의장, 더 안쪽에 있는 하카타 국제여객터미널 모두 하카타역에서 그리 멀지 않다. 배를 타고 후쿠오카에 도착해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하카타역까지 가다 보면, 길도 복잡하지 않고 생각보다 가깝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가는 길에 주택가 사이의 라멘집에 들렀다. 근처만 가도 느낄 수 있는 진득한 돈코츠의 향이 퍼지고 있었다. 네이버에서 검색해도 나올 만큼 유명한 곳이었지만, 일요일 저녁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이라 입장했을 때 손님은 한 명뿐이었다. 라멘은 명성이 그대로였다. 늘 맛에 대해 토론하는 친구에게 메신저로 국물에 대해 극찬을 늘어놓은 뒤, 다시 기온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뒤돌아본 도로 한가운데에는 줄지어 선 야자수들 위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2012년 5월, 후쿠오카에 처음 왔던 날에도 야자수들은 저곳에 있었다. 그때 느꼈던 묘한 이질감은 이 도시에 익숙해질수록 안도감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정확히 그 거리를 다시 걷고 있었다. 야자수들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았다. 나도 자리를 지켰다면 더 좋았을까? 묻고 싶었지만 대답해 줄 사람은 없었다. 그저 '다시 와서 좋다'는 마음속 대답만이 들려올 뿐.
오랜만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누구보다 잘 다닐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출발 전부터 촘촘한 일정을 짰다. 그렇게 세운 계획 이상으로 돌아다니며 3일 내내 먹고 또 먹은 기록을 SNS에 올리며 행복한 척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야자수 너머로 지는 저녁노을을 보며 이 도시에 스며든 여유로움을 마주한 순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했던 말을 다시금 떠올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고 싶다."
13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저 야자수들처럼.
후쿠오카에 방문을 거듭할수록 이 도시에 대해 호감을 말로 표현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여름이면 땀이 비 오듯 쏟아져 하루에 티셔츠를 두 벌씩 갈아입어야 했고, 동선은 중심 상권 텐진-하카타로 귀결되는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어쩌면 이 반복되는 흐름을 지루함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은 관점을 바꾸면 장점이 됐다. 겨울에도 춥지 않은 온화한 기후, 멀리 가지 않아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콤팩트함, 그리고 익숙함.
그렇다. 익숙함 때문이었다. 십년지기 친구 사이에서 서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오래 만난 연인들이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이곳을 자주 드나들며 그런 표현이 어색해졌던 것이다. 그리고 후쿠오카를 다시 만난 이 지점에서 처음 그날처럼 이곳에 대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출발 전에는 이번에 다녀오면 한동안은 후쿠오카에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많은 곳을 가서 더 많은 걸 먹고 기억과 배를 무리해서 채웠다. 그리고 계획한 모든 미션을 초과 수행한 여정의 마지막 밤, 다시 이곳을 향한 고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성적으로는 다시 올 명분이 없었지만, 어떻게든 다시 올 것이라 믿게 됐다.
그렇게 기온역을 거쳐 캐널시티 하카타로, 다시 기온역으로 돌아와 나카스카와바타역의 돈키호테로 향했다. 여행의 마지막 밤, 나는 처음 후쿠오카에 왔을 때의 동선을 따라가고 있었다. 지금은 공사가 한창이고 더 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그때와는 다른 풍경이지만, 기억을 더듬기에는 충분했다.
귀국 전날 밤은 보통 하나라도 더 보고, 더 사고, 더 느끼려 발버둥 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추억이 주는 포만감에 일찌감치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면 분명 발버둥 쳤을테지만 이 감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돌아간다면 결코 끝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 만들어갈 미래가 지금까지 쌓아온 추억만큼이나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분명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