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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한 잠 Jul 29. 2024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이건 하고 싶어.

나는, 나를 이렇게  깨운다.

음....

그냥, 무기력 하다고 하자.


"우울하다"라고 하기엔 내 마음이 가볍고,

"아무렇지 않다" 라고 하기에 무겁고 답답했다.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어서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도 한다.

감기를 앓는 정도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어쨋건 나는 코막히고 목아프고 기침나고 열이나서 무언가를 하기 힘들 정도의 감기까진 아니었다.

펄펄 끓는 열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렇게 아파도 숨이 쉬어지는 게 신기할 만큼의 근육통에 힘들어 하며

누군가에게 약을 사다 달라는 부탁을 하기위해 전화기를 집어들 힘조차 없이, 아프다는 것 외에 어떠한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의 감기를 앓는 사람에게 "나도 감기인 것 같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니까.

몸이 조금 안좋네..

감기 걸릴거 같은데..

약 먹고 푹 자야겠다.

하고는 직접 약국에 가서 약을 사먹고 푹 잘 수 있는 상태에서

"나도 감기 걸려서 아파" 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의욕이 없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고,

좋은 것도 싫은 것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감정에 정전이 와 버린것 같은 느낌..

그런 상태가 가끔씩 불시에, 지금도 여전히 찾아오긴 한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나 스스로 그 상태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 방법을 찾기전에는

말이없었고, 표정이 없었다.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고,

짜증이 나지도 않고

모든 자극에 무감각했다.

눈을 떴으니 출근을 했고,

출근을 했으니 일을 했고,

퇴근해서 잠이 오니 그냥 잠을 잤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면 어느 새 "그 상태"는 내게서 빠져나가고 없었다.

빠져나갈 때 까지 그냥 있기만 했던 예전과 달리 뭐라도 하기 시작한 건 1년 쯤 전부터였다.


거창하게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대단한 무언가를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잠깐이라도 기분좋고, 흐뭇한 기분을 느끼는 순간순간 내 마음이 무언가에서

스르륵 풀리는 것을 느꼈고, 나는 계속 해나갔다.


                          "내가 알잖아."

이상순이 나무의자의 바닥면을 열심히 사포질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효리가 물었다고 한다.

"오빠, 거긴 아무도 안 볼건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해?"

그러자 이상순의 대답이 그러했다.

"내가 알잖아."


아무도 몰라도 상관 없었다.

볼 때 마다 내가 흐뭇했고, 스스로가 기특했다.

베란다의 바닥을 물로 깨끗하게 청소하고 나면 베란다 문을 열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하루에 한 번, 저녁식사를 한 후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과탄산소다 한 숟갈과 락스를 조금 부었다.

화르륵 소리를 내며 뽀얗게 올라오는 기포들.

그걸 보면 그렇게 개운하고 속이 시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묵은 때 없이 깨끗한 배수구는 씽크대 거름망을 비울 때 마다 나를 기분좋게 만들었다.

뜨거운 물에 담겨 기름때가 벗겨진 은색의 깨끗한 후드필터는 음식을 만들때 마다 일부러 쳐다고보 싶게 만들었다.

잠들기 전,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른 후 잠깐의 짬을 내어 정리정돈 하는 화장대는 정리하고 난 직후에 한번, 아침에 출근준비 하면서 한 번 더 나를 기분좋게 했다.


굳이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알고 있는 것" 들,

"나 스스로가 나를 기특하게 여기는 것"들의 힘은 작지만, 내게는 강했다.

움직이면서 몸을 깨우고,

말끔하게 정리된 집안을 보고 흐뭇해하며 감정을 깨우고,

이걸 내가 했구나 하는 뿌듯함을 느끼며 나를 깨웠다.


우울하다고 하기엔 가볍지만,

괜찮다고만은 할 수 없는,

"무기력" 한 것이라 이름붙인 그 상태를 이렇게 달래가며 보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또 다시 그 상태가 찾아온다면 나는 또 고무장갑을 끼고 세제를 뿌려대며 청소부터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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